평사시와 같이 정우를 학교로 들여보내고 정우 엄마는 돌이 막 지난 둘째 아들 정환이를 유아차에 태우고 산책을 했다. 유아차에 얌전히 누워 옹알옹알 세상 구경을 하느라 바쁜 둘째가 마냥 예쁘고 귀여웠다.
물론 육아는 "예쁜 건 잠시, 힘든 건 오래"라고 하지만 정우 엄마는 워낙 아기들을 예뻐했기에 힘든 것을 이겨낼 수 있었다.
정우 엄마가 정우를 낳고 5년이 지나 남편에게 둘째를 낳자고 이야기했을 때 정우 아빠는 당황했다.
정우를 낳고 자녀 계획은 그걸로 끝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우 엄마는 누구에게 말을 하진 않았지만, 늘 마음속으로 둘째를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직장 생활과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는 것이 버거워서 시기가 늦어진 것일 뿐이었다. 이제 정우가 먹고, 씻고, 자는 것을 대충이라도 스스로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정우 엄마는 더 늦기 전에 둘째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오래 지나지 않아 임신이 되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얻은 아기라서 힘에 부친 것은 사실이었지만 늦게 얻은 자식이라 그런지 더욱 예뻤다. 그렇게 해서 정우, 정환이 형제는 나이 차가 여섯살이나 났다.
정우네는 지금 사는 이곳으로 정우가 7세가 되던 해에 이사를 왔다. 정환이를 낳기 석 달 전이었다.
전에 살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이지만, 동네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전에 살던 곳이 온갖 편의 시설로 가득한 도시였다면, 지금 사는 곳은 푸른 녹지가 가득한 시골 같은 곳이었다.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으로 이사를 오고 싶었던 정우 아빠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였고 정우 엄마도 처음에는 가까운데 굳이 이사까지 가면서 지역을 옮길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이사 오고 나서 공원과 도서관이 가까이 있는 한적한 이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집 크기였다. 이전 동네보다 집 값이 비싸서 정우네는 집 평수를 좁혀야 했다. 좁은 집에서 정환이까지 태어나 식구가 늘어 조금만 정리정돈이 안돼도 금세 집이 더 좁아 보였다. 정우 엄마는 원래도 깔끔하게 살림을 해 왔지만, 이사를 오고 나서는 더 깔끔을 떨었다.
아기 키우랴, 정우를 돌보랴, 살림하랴, 정우 엄마는 개인적으로 볼 일이 있는 게 아니면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없었다. 근처에 사시는 친정 엄마가 아니었다면 아마 밥 한 끼도 못 챙겨 먹을 정도로 육아와 살림에 전념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우 엄마는 몸이 힘들어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성실함, 책임감, 완벽주의 성향으로 모든 것을 잘 해냈다.
정우 등교 준비와 함께 돌쟁이 정환이 외출 준비까지 동시에 하는 것은 마치 100m 달리기를 쉬지 않고 뛰는 것과 같았다. 육아는 단거리와 장거리에서 모두 소질이 있어야 했다.
짧은 시간 내에 할 일들을 끝까지 완벽하고 정확하게 끝내고 집을 나서는 정우 엄마는 오늘도 자신이 세운 계획대로 일처리를 진행했고 뿌듯함을 느꼈다.
계획을 세워 정해진 시간에 일처리를 완벽하게 해내고 성취감을 느끼는 성향은 정우 엄마의 직업병이기도 했다.
정우 엄마는 시정표대로 하루를 살아가는 선생님이었다. 지금은 정환이 때문에 육아 휴직을 내고 집에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여러 아이들과 많은 일을 겪다 보니, 정해진 절차나 계획에 따라 일처리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만에 하나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까지 미리 예측하고 준비해 두는 철저한 안전지향주의 성격으로 굳어졌다.
학교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선생님으로 통했다.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자상하게, 일관성있으면서도 융통성 있게 아이들을 대했다. 정우 엄마는 인기많은 선생님은 아니었지만 학생들은 정우 엄마의 말과 행동을 믿고 따랐다.
물론 정우 엄마도 저경력 때에는 서툴러서 아이들이나 학부모와의 갈등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범위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능력이 다져지면서 정우 엄마는 베테랑 선생님이 되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10시가 되었다. 벌써 2교시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정우 엄마는 빨리 복직하길 바라며 학교를 그리워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아직도 시정표는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학교로 돌아갈 때를 대비한, 회귀 본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