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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c Apr 24. 2018

바닷가 조약돌

9월도 중순이 지나 이제 가을이 깊어가는 가 싶더니 섭씨 28도를 넘는 날씨가 지난주에 계속된 덕분(?)에 아들이랑 올해 들어 처음으로 차로 한 30여분을 달려 Long Beach라는 바닷가를 다녀왔다. 보통의 뉴저지 해변은 모래사장만 대서양을 따라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부산의 동백섬과 같이 웅장하지는 않지만 제벌 넉넉하고 모양이 날카로운 갯바위들이 해변가 한가운데 위치해 있었다. 

급히 길을 나서느라 파라솔도 준비 않고 옷가방만 덩그러니 모래사장에 두고서 파도치는 푸른 바다를 행해 돌진할려니 유독 부드러워야 할 모래사장이 바다로 대닫을수록 거칠게 맨발 바닥에 밟혀 왔다. 문득, 짠 바닷물에 몸을 담그다 말고 발밑을 내려다보니, 10센트짜리 동전보다 작은 조약돌들이 촘촘히 모래 사이에 박혀 파도의 움직임에 맞춰 그 모습을 용기 내어 보였다 수줍은 듯 숨겼다 하면서 끊임없이 춤을 췄다.

색깔도 검은색부터 투명에 가까운 흰색까지 다양해 나도 모르게 바닷물 속으로 손을 넣어서 그중 하얗게 빛나는 둥근 조약돌을 집다가 문득 큰 갯바위가 다시 눈에 띄었다. 이 손톱보다 작게 빛나는 조약돌도 필시 원래는 어마하게 큰 바위였었고, 그게 무수한 세월을 지나오면서 험한 태풍에 부서지고 깨져 돌이 되고, 다시 거친 파도에 밀리고 씻기기를 반복하며 반들반들하고 둥근 조약돌이 되기까지 묵묵히 인내하면서 참고 참았을 거란 생각을 해 보았다.

때 마침, 그날 저녁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어린 딸을 데리고 의료선교사역을 하고 계신 "이라합" 선교사님의 귀한 간증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2011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남편과 같이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갔지만,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남편은 카불에서의 자살 폭탄 테러의 희생자가 돼 사랑하는 가족들을 두고 하늘나라에 먼저 안기고 말았다.

자신을 과부로 만들어버린 하나님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고 자신이 있는 그 아프간 땅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그제야 알고서는 짐을 싸고 그 나라를 떠나기 전에 행여나 싶어 당시 8살이었던 큰딸에게 너는 아프간에 있고 싶냐고 물으니, "엄마, 아빠가 묻힌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아..."라는 딸의 눈물 섞인 애원에 다시 용기를 얻고 지금까지 여성 사역하기를 올해로 7년째.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외국인이라 편견으로 만 바라보던 현지의 아프간의 여성들 중에 특히 남편들을 전쟁터나 테러로 잃은 이들은 이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동병상련의 마음이 생기자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씩 들으면서 마음 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의사를 보내달라는 현지에서 보낸 선교 편지 한 통이 청소부의 실수로 옆방 슈바이처 박사의 편지함에 잘못 배달되는 바람에 그가 그 편지를 우연히 읽고 아프리카 선교사역을 결심한 것처럼 운명론자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일에 우연은 없다는 법칙이 이 50을 넘긴 중년의 여의사 선교사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을까....

돌이켜 남편을 하나님이 거둬감으로써 자신도 같은 처지에 있는 억압받는 아프간 여성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긍휼의 마음을 품게 되었고, 그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꿋꿋이 감당할 수 있었다는 그 선교사님의 입술 떨리는 간증을 들으면서 낮에 바닷가에서 주워 온 조약돌을 호주머니에서 다시 꺼내 만지작거려 보았다.

검은 저녁이 벌써 찾아온 그 바닷가에는 낮에 본 조약돌이 여전히 거치게 덮쳐오는 파도에 몸을 맡기며 이 깊은 밤에도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 다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조약돌처럼 이 선교사님의 앞으로의 현지에서의 사역 가운데 엄청난 환란과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오히려 이를 통해 정금 같은 믿음으로 맑고 영롱한 영혼의 조약돌을 만들어 가시기를 바라며 내 삶의 어려움도 이와 같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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