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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Jul 21. 2023

8. 첫 번째 가을(下)

"여기야."

  “여기야.”
  나는 내 눈높이에 적당히 맞는 곳에 놓인 안치단을 바라봤다. 안치단에는 항아리 외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었다. 딸 사진도, 가족 사진도, 미니 꽃다발도 없이 홀로 놓인 항아리는 왠지 모르게 쓸쓸했다. 나는 안치단에서 고개를 바로 아래로 내린 다음 가져온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일정 기간이 되면 봉안당 측에서 꽃다발을 치운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일어서려 하자 쌤이 항아리에 눈을 고정한 채 말했다.
  “와이프랑 사이가 별로 안 좋았어. 정말 딸 크는 거 보면서 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너는 아직 겪지 않은 일이라서 모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쌤은 그 이후로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안치단을 빤히 바라보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 가끔은 침묵으로도 많은 말을 할 수 있다.
  “잠깐 밖에 나가서 전화 좀 받고 올게요.”
  쌤은 끄덕였다. 나는 조용히 바깥으로 나갔다. 왠지 쌤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아무리 속 이야기를 하는 상대라도 제자가 있으면 어른은 함부로 울기 어려운 법이다. 나는 삼 층에서 일 층까지 계단을 내려갔다. 일부러 계단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게끔 발소리도 평소보다 더 냈다. 나는 쌤이 편히 울길 바랐다. 쌤도 그 사실을 알 것이다. 속으로 이십 분 동안은 돌아오지 않겠다며 혼자 다짐한 나의 결심은 굳건했다. 저 멀리서 폭포수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인공 폭포 근처로 서서히 다가갔다.
  나는 내 감정을 파악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염없이 떨어지는 폭포수는 여전히 상쾌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폭포를 거슬러 물이 처음 흐르던 곳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감정의 연원은 대체 어디일까. 내 속에 깨진 부분은 얼마만큼 파편이 튀어있을까. 내부를 바라보자 안에서 타인이 보였다. 꼭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거울 같았다. 무한히 이어진 거울 속에서는 친구들이 잠깐 나타났다가, 학교 선생님들이 나타났다가, 드디어 ‘쌤’이 나타났다. 그다음에는 성인이 되자마자 고시원에서 학원을 다녔던 지난 일 년의 삶이 떠올랐다. 그러자 그다지 그립지 않은 사람이 나타났다. 호칭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을 ‘아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는 것을 보니 꽤 오래된 기억이다. 그 사람을 호칭할 때면 내 문장은 항상 발음하는 것이었다. 내 목소리는 조작된 것처럼 가늘었다. 나는 최대한 그 사람 앞에서 나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대화가 끊기고 나는 어릴 때부터 염원하던 독립을 했다.
  나는 아직도 본가에 가면 벽에 등을 붙이고 앉는다. 절대로 그 사람이 내 등을 만질 수 있도록 놔두지 않는다. 또, 나는 의자 근처에 앉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의자가 내게 날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멀리서 날아오는 의자는 간신히 피할 수는 있어도, 가까이서 날아오는 의자는 쉽게 피하기 어렵다. 기억과 경험에 따른 행동 강령이다.
  항상 별을 보고 살았다. 집으로 가는 언덕을 오를 때면 겨울철마다 시리우스가 빛나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 별이 정말 시리우스인지 몰랐다. 어릴 적 호기심에 깔았던 별자리 앱은 언덕 위에 뜬 별이 시리우스라고 말했었다. 이것 또한 기억이었다. 나는 기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기억 속의 시리우스는 내게 북극성과 같았다. 나는 항상 집으로 가는 길에 그 별을 보고 걸었다. 어쨌든 마음만 지옥으로 향하지 않으면 됐기 때문이었다.
  어떤 결여는 사람을 부순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부서진 나는 아득바득 이를 갈며 별에서 나오는 빛을 연고로 썼다. 연고는 가끔 밴드를 간신히 붙여놓곤 했다. 그러니까 시리우스는 내게 북극성이자, 좋은 연고이자, 본드인 셈이었다.
  나는 많이 갈라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별을 보고 걷기로 했다. 별을 향해 걷는 동안에는 부서진 사람을 몇몇 보았다. 그들은 함께 결여를 채울 동료가 되었다. 그들은 거울이었다. 그러니까, 한껏 부서진 내가 드디어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준 거울이었다. 물론 나는 이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모른다. 그 종류는 내가 자라나며 확립하면 될 일이었다.
  한껏 딴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 서서히 폭포가 멎기 시작했다. 인공 폭포 옆 스피커에서는 잠시 폭포에 떠다니는 쓰레기를 치울 시간이라고 했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아래 연못을 쳐다보니 이따금 사람들이 버린 음료수 캔이나 비닐봉지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는 쓰레기에서 순식간에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손목시계는 벌써 이십 분이 지났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차피 지금 느릿느릿 가도 쌤은 항아리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었다. 이십 분이면 울고 눈물을 말리는 데 충분한 시간이지 않을까. 순간 폭포에 오기 전 쌤에게 눈물을 손으로 닦지 말고 그저 흘려보내라는 말을 전해줬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을 흘려보내야 눈가가 많이 빨개지지 않는다는 말은 어디선가 들은 민간요법이었다. 어쩌면 눈이 빨개지지 않는 방법보다는 마음이 붉게 깨지지 않는 방법일지도 몰랐다.
  나는 서서히 봉안당 건물로 발걸음을 돌렸다. 큰 바람은 없었다. 단지 쌤이 마음 편히 울었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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