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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Aug 08. 2022

7. 첫 번째 가을(上)

그날은 쌤과 납골당에 간 날이었다.



  그날은 쌤과 납골당에 간 날이었다.
  나는 연한 화장을 끝마치고 저절로 켜지는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지금 혜화 쪽으로 출발한다는 쌤의 연락이었다. 조금 돌아서 가는 길이지만 어쨌든 우리의 목적지는 납골당이었기에 쌤은 기꺼이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안 그래도 교통이 불편한 곳에 있는 곳인데 괜히 내가 버스니, 지하철이니 갈아타며 시간만 낭비해봤자 체력만 고갈된다는 게 쌤의 주장이었다. 나는 쌤의 제안을 듣자마자 기꺼워했다. 안 그래도 약속을 잡을 때 지도 앱을 켜 납골당의 위치를 확인해보니 보통 체력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외진 변두리에 위치한다던 납골당은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탄 다음에 사십 분 간격으로 오는 버스를 다시 한번 갈아타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바로 쌤의 의견에 동의를 표하자 우리는 양측의 반발 없이 원활한 협의를 끌어냈다. 남은 건 길을 찾아가는 일뿐이었다.
  나는 간만에 저승사자가 되어봤다. 아래는 검은 슬랙스를 입고, 위에는 적당한 흰색 셔츠에 짙은 남색 카디건을 걸쳤다. 왼손 손목에는 시계만 겨우 찼고, 가방은 무늬 없는 버킷 백을 챙겼다. 책장 한 편에는 목걸이가 바닥에 쓸쓸히 누워있었지만, 오늘 같은 날에는 화려한 목걸이와 시선을 교환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놀러 가는 자리도 아니었다. 나는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 멍을 좀 때렸다. 눈앞에는 아침에 사 온 꽃다발이 책상 위에 고이 놓여 있었다. 하얀 안개꽃이 바깥쪽을 둘러싸고, 노란색과 주황색 메리골드는 가운데에 적절히 섞였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꽃다발에 흐트러진 부분이 없는지 점검하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나는 쌤이 납골당에 같이 가자는 제안을 할 줄 몰랐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지는 않을까 홀로 망상에 빠진 적은 있으나 쌤이 이렇게 빨리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예상 밖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작년 끝물의 상담 시간을 떠올렸다. 이 주에 한 시간씩, 우리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중에는 서로의 신뢰가 쌓이고 난 뒤 뱉어낸 속 이야기도 포함이었다. 쌤이 우리를 앞을 향해 나아가는 실패작들로 정의하고 난 뒤에 쌤은 하나씩 과거사를 꺼냈다. 나의 공부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의 이야기였다. 대부분은 쌤의 취미와 대학 시절 이야기였지만 이따금 쌤의 현재 상태도 내게 털어놓았다. 평소 잠에서 잘 깨며 항상 긴장한다던 이야기도,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모두 그때 들은 내용이었다. 당시 나는 ‘지금은’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쌤에게 무슨 사연이 있으리라 예상했으나 과도한 추측은 삼갔다. 왠지 타인의 상처를 함부로 추측하면 실례일 것 같았다.
  어느새 휴대전화가 다시 켜졌다. 도착하기 오 분 전이라는 쌤의 연락이었다. 나는 휴대전화 충전기를 뽑고 가방과 꽃다발을 챙긴 뒤 자취방을 나섰다. 문자와는 다르게 자취방 앞에 쌤의 차가 서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해서.”
  쌤의 변명이 이어졌다. 나는 고개만 살짝 숙여 인사한 뒤에 쌤의 옆자리에 앉았다. 가는 길은 조용했다. 나는 꽃다발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옆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밥은 먹었냐는 둥, 어제는 하루는 어땠냐는 둥 기본적인 인사조차도 꺼내지 않았다. 꼭 차에 올라탄 이 두 명의 여행객은 익숙한 사람과 익숙한 차를 타고 낯선 길을 찾아가는 일에만 매몰된 사람들 같았다. 어차피 우리는 수도 없이 메일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일상을 다 꿰고 있었기에 물어볼 것도 없었다. 특별한 일이 있었으면 진작 어제 메일을 보내 알렸을 것이었다. 나는 꽃이 상하지 않게 양손을 오른쪽에 옮겨두고 괜히 차 시트만 만지작거렸다. 벌써 여름은 가고 가을이 왔는데도 자꾸만 내가 술에 취해 쌤에게 전화를 걸었던 일이 생각났다. 과거의 전적이 떠오르니 괜히 공기는 텁텁하고 호흡조차 인위적인 일로 변해버렸다. 나는 꼭 편안해야 한다는 의무 아래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았다. 최대한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나의 의무, 그 광경을 눈치챘는지 삼십 분 만에 쌤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잘 잤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아직 정오가 되지 않았는데도 오늘 하루를 벌써 다 산 것 같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쌤의 눈을 바라봤다. 또 실핏줄이 터져있었다. 아마도 쌤은 잠을 잘 자지 못한 것 같았다.
  “쌤은 잘 못 주무신 것 같은데요.”
  “응, 그랬지.”
  다시 또 침묵이 이어졌다. 최소한의 인사는 삼십 분만에 시작되어 일 분도 채 되지 않고 끝이 났다. 다시 조용한 자동차의 울림만 전해질 뿐이었다. 앞창을 보니 흰색 범퍼 앞으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어디론가 향하는 자동차들이 가득했다. 꼭 개미가 본능에 이끌려 어딘가로 걸어가는 것처럼 차들은 하나같이 어딜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순간 나는 의문이 들어 쌤에게 질문했다.
  “쌤, 길을 찾아가는 건 본능일까요?”
  “그 ‘길’이 진짜 ‘도로’할 때 ‘길’일 리는 없을 테고. 삶의 길 말이지? 내가 이해한 게 맞나?”
  “음, 맞을 거예요.”
  쌤은 잠시 침묵했다. 아마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둘 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고, 그 사실을 서로 잘 알았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상대방이 말을 멈추면 우리는 항상 조용히 상대방의 대답을 기다려주곤 했다. 나는 다시 앞창을 보며 내비게이션을 따라 이동하는 자동차와 목적지 없이 흐르는 자동차를 구분해보려 애썼다. 당연히 구분될 리 없었다.
  “왠지 그 말은 예전에 내가 했던 말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은데. 언제 내가 우리는 결여를 채우기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지 않았었나? 계속 너한테 하려던 말이었는데, 그때 딱 네가 물어봐서 기억하고 있지.”
  “그거 꽤 괜찮은 우연이네요.”
  “그치. 사람들이 결여를 채우기 위해 살아간다면 그건 본능 아닐까? 나도 모르게 더 편해지고 싶고, 끝없는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고 싶고, 마음 편히 긴장을 풀고 잠을 자고 싶고. 사람은 항상 변하지. 그렇게 방향을 찾고 나아가는 게 우리의 본능 아닐까.”
  “쌤 맹자세요? 성선설 미는 사람 같아요.”
  쌤이 흐드러지게 웃었다. 나는 오늘도 쌤을 웃게 하는 데 성공했다. 괜스리 아랫배에서부터 기분 좋은 느낌이 울렁이는 것 같았다.
  “가끔 갱생이 불가능한 사람들도 있지.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말 괜히 나온 게 아닌 것처럼.”
“이번에는 맹자가 슬퍼할 것 같아요.”
  나는 또 실없는 말을 했다. 쌤이 뒷말을 덧붙일 걸 알았지만 나는 쌤의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일단 장난기 가득 서린 말을 좀 던져봤다. 결과는 성공이라서 좋았다.
  “아, 그리고 오늘 가는 길에 또 하려던 말이 있어.”
  나는 고개를 돌려서 쌤을 봤다. 쌤은 운전 중이었으므로 고개는 돌리지 않았지만 나를 흘긋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궁금하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내가 너희 학원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앞으로의 상담은 전부 녹음한다고 했었잖아.”
  “네.”
  “그거 왜 그랬는지 알아?”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쌤의 눈을 직접 쳐다보니 생각보다 눈이 더 붉었다.
  “네가 오기 삼 년 전에 내가 맡은 반에서 좀 일이 많았어. 아이들끼리 일이 생기면 중재하면 되는데, 어떤 학생 한 명이 내가 상담 시간에 이상한 말을 했다고 학부모님께 말했나 봐. 단순히 시험에 관한 악담이 아니라 정말 안 좋은 말들.”
  “중재하는 것도 쉽지 않으셨겠지만 그건 더 그렇네요.”
  나는 그 학생이 학부모에게 이른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쌤이 안 좋은 말들이라고 칭하는 건 단순한 욕이 아니었을 것이다. 쌤은 여전히 앞창을 보며 말했다.
  “학부모님이 학원에 전화를 거셨어. 학원이 뒤집어지고 난리였지. 그런데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어. 기껏해야 무슨 과목 몇 점 더 올려야 한다는 말이 전부였어. 그 말에 화가 났는지 말이 완전히 이상하게 변해버렸더라고.”
  나는 조용히 있었다. 뭐라 답할 말을 고르기가 어려웠다. 내가 조용히 앞창을 바라보고 있자 쌤이 말을 이었다.
  “해명할 방법이 없었어. 녹음된 것도 없었으니까. 정말 학생들이 그럴 줄은 몰랐어. 방법이 없으니 그냥 그 학생을 불러서 따로 상담했지. 계속 말했어. 내가 잘못한 말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학부모님과도 계속 전화했어. 처음에는 내가 말로 많이 맞았지. 발뺌한다고 많이 그러셨어. 그래서 학부모님과 학생하고 계속 일대일로만 말했어. 그러더니 나중에 학생이 울면서 말하더라. 죄송하다고…….”
  나는 그제야 쌤이 상담할 때마다 녹음 앱을 키던 이유를 알아차렸다.
  “그 학생이 죄송하다고 할 때는 상담이 잦으니까 내가 학생을 압박한 게 아닌지 다들 많이 물어봤었어. 나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지. 이제야 진실이 드러났는데……. 결국에 학생이 다 실토했어. 성적 올리라는 말이 너무 싫어서 말을 불린 게 맞다고. 사실상 불린 게 아니라 거짓말이었지만……. 내가 너희에게 많이 방어적이었던 이유가 그거였어. 학생들마다 성격도 말투도 맞추면 나만 피곤한데 그냥 어쩔 수 없었어.”
  “고생하셨어요.”
  나는 고생했다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그 학생을 욕하자니 괜히 당시 기억만 되살릴 것 같았다.
  “그래서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이제야 너를 데려오게 된 게 너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는 거야. 그러니까……, 물론 우리 둘 다 서로를 완전히 믿지는 못하지. 그건 가족도 어려운 일인데.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너라면 알아들을 것 같았는데.”
  나는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조차도 나를 믿지 못할 때가 있는데 하물며 어떻게 타인을 완벽히 신뢰할 수 있을까. 수능이 끝나면서 나는 같은 반 학생들과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았지만, 쌤은 이 사실을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걱정마세요. 이런 식으로 쌤이 말하는 설명이 한두 가지도 아니고. 이해해요. 어차피 저도 그런 거 쌤도 아시지 않나요?”
  저 멀리서 제법 깨끗한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 분이면 도착할 것 같았다. 쌤은 내 말에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쌤이 내게 현실을 자각시키기 싫어서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 같다고 판단했다. 나는 슬슬 안전벨트를 풀고 가방을 정리하면서 꽃다발을 다시 안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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