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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Jul 21. 2023

6. 첫 번째 여름(下)

빛이 서서히 자격을 잃어가는 일몰 시간.

  빛이 서서히 자격을 잃어가는 일몰 시간. 주현이가 저녁을 먹으러 가고, 센터의 아이들도 전부 식당으로 이동한 사이 나는 짐을 챙겨 센터를 떠났다. 센터 계단을 내려가는 내내 울리는 것은 나의 발소리뿐이며 종종 틱틱대는 나의 손톱 소리는 듣기 싫은 코러스다. 잠시 외로운 하강을 마치고 언덕에 발을 디디며 휴대폰을 켜니 휴대폰에는 몇 개의 알람이 떠 있다. 다시 나의 손톱은 분주해진다. 이번에는 코러스가 아니라 주제곡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휴대폰 잠금화면을 열었다. 화면이 사라지는 스크린 효과 뒤로 부재중 전화 한 통과 문자 메시지가 찍혀있었다.
  쌤이었다.
  “여보세요? 지금 끝난 거야?”
  전화를 걸자 신호음이 몇 번 안 가 쌤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위에는 웅웅 소리와 세찬 바람 소리가 들렸다. 이따금 쌤을 스쳐 지나가는 거대한 바퀴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내부 순환로인가, 아니면 고속도로인가. 어떤 도로 위에 쌤이 서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쌤은 자차로 퇴근 중인 것이 분명했다.
  “네, 방금 끝나서 언덕길 내려가고 있어요.”
  나의 발은 계단에서의 규칙적인 주제곡 연주를 이후로 언덕길에서도 연주를 이어가는 중이다. 이번 연주의 코러스는 고작 사람 간의 말소리가 되겠지만 상관없다. 사물로 가득한 연주회에 잠시 사람이 끼는 정도야 너그러운 사물들이 눈을 감아줄 것이다. 인간적인 인간은, 아니 어쩌면 사물적인 인간은 어서 말을 끊고 조용히 언덕길에서의 연주를 이어갈 예정이다.
  “지금 센터 근처야. 서점 갈래?”
  “어떻게 오셨어요?”
  아스팔트로 포장된 질서 있는 언덕길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하라는 시선을 보내는 것도 같다. 아니면 내 신발과 손톱이 조용히 하라며 손 모양을 만들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잠시 사물들의 교향곡을 망쳤지만 내키지 않고 조용히 전화를 이어 나간다. 아주 인간적으로.
  “가면 저야 좋죠. 광화문이요?”
  “그래, 언덕 밑에 차 있으니까 와서 타.”
  교향곡은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발소리는 이미 불규칙적으로 변했으며 이건 어쩌면 교향곡보다 블루스에 더 가까운 혼란이다. 나는 언덕을 뛰어 내려간다. 발이 황급히 교차한다. 신발 끈은 서로를 열심히 붙들고 있다. 인간적인 인간은 모든 사물의 도움을 받아 언덕 아래로 질주했다. 그러자 흰색 세단 하나가 후방 등을 깜빡이며 길을 막고 있었다.
  곧 조수석의 창문이 내려오더니 익숙한 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문을 열고 터질 것 같은 폐에 공기를 불어 넣으며 간간이 숨을 쉬고 있었다. 옆에서 쌤이 뭐 하러 뛰어왔냐며 나를 타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무심코 신발을 쳐다보니 저 질긴 것들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끈을 동여매고 있었다.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어 앞 창문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쌤 기다리고 계시는데 제가 설렁설렁 오면 안 되죠.”
  쌤은 뭐라 중얼거리며 웃더니 바닥에 실컷 달라붙은 차에 시동을 건다. 창문으로 사람들이 두 명, 세 명 떠나간다. 나는 숨을 고르고 쌤은 앞을 보고 있다. 나는 땅에 붙어있던 쌤의 세단을 기억하며 좌석 등받이에 나의 몸을 붙였다. 창문은 닫혀있지만 어디선가 바람이 부는 것 같기도 하다. 이상하게 힘이 없는 차창의 사람들이 기억 속을 스쳐 지나갔다. 꿈에서 저 사람들은 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꿈을 되새기며 눈을 감는다. 머리에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또 사람들이 지나가며 인산인해를 이룬다.
  “자는 거야?”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그렇지만 눈은 지그시 감고 빛이 스민 깜깜한 시야를 바라보고 있다. 부분부분 빛으로 얼룩진 시야는 기하학적 패턴 같기도 하고 어지러운 조명 쇼 같기도 하다. 나는 다시금 생각한다. 왜 센터장은 나를 주현이에게 데려다줬을까? 주현이는 학습에 부진한 아이가 아니었는데도 센터장은 내게 주현이의 한글 공부를 봐줘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주현이는 왜 나와 ‘안녕하세요’ 놀이를 했을까?
  나는 주현이를 바라본다. 주현이는 이미 센터에서 저녁을 먹느라 내 곁에 없지만, 다시금 주현이의 눈빛을 똑똑히 기억해본다. 밝은 장난기가 서린 눈빛은 드문드문 차갑게 얼어있다. 주현이의 눈빛은 꼭 얼음 속에 든 불과 같다. 아이들은 분노를 감추려 들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의 광활한 눈빛에서 분노는 차갑게 새어 나온다.
  얼음 속에 갇힌 불. 그것은 꼭 균열같다. 빨간 균열은 얼음의 틈을 벌린다. 얼음은 뜨겁게, 곧 차갑게 녹아내린다. 좁은 균열은 어느새 결여가 된다. 어떤 시선은 결여에서 나왔고, 어떤 시선은 결여를 만들었다. 얼음을 녹이는 마음속에 갇힌 불처럼.
  “그냥 이런저런 생각하는 거예요. 쌤 근데, 세상에 결여 없는 사람이 있나요?”
  잠깐 쌤이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앞 차를 보며 조용해진다. 우리는 한없이 조용한 자동차의 진동 위에서 각자의 생각을 했다. 나는 눈을 감고 베트남에서 온 주현이가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하다가, 무작정 차별받을 걱정부터 하는 내가 부끄러워져 잠시 생각을 멈춘다. 그 애에게는 그 애의 세상이 있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처음 만날 순간들은 차별이 아니라 고귀한 추억일 수도 있을 것이다. 순간 나는 내가 하는 생각이, 그리고 이 모든 걱정이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내가 주현이에게 휘두르는 강압이 아닐까 생각했다. 정확히는 주현이의 미래에 대한 강압과 예측에 가까웠다. 생각은 점점 많아지고 서서히 눈을 뜨니 차는 광화문 대로에 서 있다. 조금만 더 가면 차를 바칠 주차장이 있다.
  “우리는 그 결여를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닐까?”
쌤은 조용히 말한다. 이 조용한 울림은 나를 향한 답변이 아니다. 이 말은, 그러니 쌤의 입에서 나온 이 문장은 차의 앞 유리창을 향해 있다. 답변인 동시에 물음인 조용한 문장은 얼마 안 가 차의 엔진 소리에 묻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동묘지에 묘비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어떤 장소에는 특정한 소리가 살아 있어야 한다. 유리창이 전부 닫힌 자동차 안에서 나무가 부러지는 것처럼 엔진 소리가 울렸다. 나는 그 소리가 심장이 터지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뒷길로 먼저 가 있어. 차 조심하고.”
  나는 부러지는 엔진 소리보다 작은 인사를 건네고 차 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여러 번 와 본 이 외부 주차장은 인심 좋은 경비 아저씨께서 관리하는 모 통신국 회사의 주차장이다. 쌤의 지인이 다닌다던 이 주차장은 우리에게 있어 단지 차를 바칠 잠깐의 공터일 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꿈의 기업일지도 모르는 대기업의 주차장도 나와 쌤의 유희에는 종종 도피처로 사용되곤 했다.
  우리의 유희는 고작 서점과 맛집이 다였다. 물론 이따금 들리는 경기도의 호수공원과 다 낡아 쓰러져가는 홍제동의 유진상가, 사람 많은 대학로의 한적한 길도 우리의 산책로가 되어주곤 했다. 그렇지만 그게 다였다. 구질구질하게 하나 추가하자면 한적한 공원에서 마시는 보리 맛 센 맥주 한 캔도 종종 우리의 유희를 위한 음료 중 하나였다.
그게 다였다. 그날 우리는 광화문 길 산책을 하고, 대형 서점의 시그니처 향을 맡았다. 나는 내가 만나는 아이들과 나의 이야기를 종종 늘어놓았고, 내가 늘어놓은 이야기 사이사이로 쌤의 대학 시절과 현재가 밀푀유처럼 겹쳐 등장했다. 다른 사람들은 서점의 타일 바닥을 밟으며 책을 구경했지만 우리는 이야기로 만든 길을 걸으며 중간중간 새로운 타일을 끼워넣곤 했다. 나의 이야기는 대부분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였고,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이야기를 나누다 J 구역에 발을 멈춰 소설책을 둘러봤다.
  쌤이 신간 소설을 뒤적거리고 있을 무렵. 나는 J 구역을 빙글빙글 돌며 일 년 전 쌤이 내게 선물했던 소설책을 찾아 헤맸다. 내가 헤매던 길에는 책을 찾을 수 있는 컴퓨터가 있었고, 대개 사람들은 컴퓨터 앞에 줄을 서 타자로 책 이름을 치곤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는 책을 찾는다는 구실로 이리저리 길을 헤매며 생각을 정리했다. 다른 사제관계도 이렇게까지 자주 만나는 걸까? 아니면, 우리만큼 다른 사제관계도 서로에게 의미 깊을까? 대체 어떤 의미가 우리를 친구로 묶어놓은 걸까. 나는 오크 색 나무로 된 바닥에 구두 소리를 내며 책장을 이리저리 살폈고, 그때마다 나를 흘긋 돌아보는 쌤의 시선을 인식했다.
  어쩌면 이것은 부모로부터 발현된 관계가 아니었을까? 나는 어느새 쌤에게서 멀어져 인문학 구역으로 발을 디디고 있었다. 눈앞에는 프로이트 책이 두껍게 나열되어 있었고, 이따금 사람들은 프로이트의 책을 한 권 꺼내어 몇 장을 넘기다가 다시 책장에 책을 꽂아 넣곤 했다. 어쩌면 나는 아버지의 사랑에 결핍을 느껴 쌤을 사랑받아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 관계는 사제관계에서 더 발전하여 결여를 채우기 위한 수단적 관계로 발현한 것이다. 나는 여러 가설을 세우며 다시 J 구역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발은 엉키고 생각은 실타래처럼 꼬이는 어스름한 저녁, 노을 따위는 보이지 않는 지하 1층의 서점에서 나는 석양을 삼킨 쌤을 봤다. 쌤의 눈은 제법 불그스름하게 물들어있었고, 백색의 안광은 자줏빛으로 변해있었다. 항상 눈에 실핏줄이 터져있던 쌤은 지금도 꽤 피로해 보였다. 아마도 쌤은 오늘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어쩌면 결여에서 시작된 관계일지도 모를 일이다. 쌤이 들고 있는 책은 최근 트렌드에 올라가 있는 가족 간의 사랑을 다룬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앞부분부터 주인공의 사적인 이야기가 풀리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는 책이었다. 어쩌면 쌤은 공감을 보내는 부류 속에 속해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모종의 이유로 힘겨운 결혼생활 중 딸을 잃고 이혼까지 해 독신이 된 쌤은 결여가 가득한 사람이었고, 어쩌면 나 또한 결여로 점철된 사람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결여를 가득 가지고, 또 결여를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를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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