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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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짜 희곡 이야기를 해보겠다. <떡갈나무> 외에도 지난 몇 개월 동안 장막극을 썼다. 위에서 언급한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홍 씨네 집안의 비극적인 이야기다. 황소가 나오고, 황소는 귀신을 본다. 황소는 지난해에 죽은 홍 씨네 장남을 보고서 가족들에게 말을 해주고 싶지만, 가족들은 음메~ 소리밖에 듣지 못한다. 뭐 이런 식의 이야기다. 그러다가 사고도 나고, 누가 죽고, 또 누가 죽고, 또 누가 죽는다. 많이 죽는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산 사람은 줄고 귀신은 늘어난다. 근데 내가 죽였다기보다는, 인물이 능동적으로 알아서 죽었다. 나는 그를 따라서 글을 썼을 뿐.
―말도 안 돼.
내가 이걸 재밌게 읽었다고? 글 쓰고 나서 보름 정도 지났으려나, 다시 읽어봤다. 쓰레기도 이런 쓰레기가 없었다. 보름 전에는 나름 재밌다 싶어서 공모전에 접수도 했었다. 신청서와 원고를 제출하고 나서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없던 변비도 낫는 느낌이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없어서 치료된 적도 없던 변비가 다시 생기는 느낌이었다. 아주 꽉 막혔다. 혹시나 당선되면 소감을 뭐라고 하지? 무대화되는 거 아냐? 드디어 내 연극이! 하는 망상에도 잠깐 빠졌던 내가 기억났다. 한심한 새끼.
보통 집구석 작가는 돈이 없을 확률이 높다.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희곡을 쓰니까 누구라도 만나면 연극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별로 안 본다. 돈이 없으니까. 어쩌다 공연을 보면 기분이 좋다. 그러면서도 이런 이야기와 무대 상상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하는 건지 부럽고, 질투도 난다.
희곡을 쓸 때는 자연스레 무대를 상상한다. 그런데 곧 상상력은 한계를 부딪치고, 무대보다는 당장 눈앞에 글자들이 말이 되나, 재미있나 만 신경 쓰다가 가슴이 답답해진다. 커피도 마시고, 물도 마시고, 유튜브도 보면서 딴짓을 해보지만, 그 시간이 글의 분량을 채워주지는 않는다. 다시 마음을 잡고 글을 쓰면서 무대를 상상하려고 노력해 본다. 관객이 느끼는 감정도 상상한다. 웃을까? 울까? 심각해질까? 하품하려나?
―아, 쓰기 싫다.
나는 무얼 쓰겠다고 이러고 있는 걸까. 지금은 마땅한 경제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 실업급여는 끝났으니, 소득도 없고, 글을 쓴다고 하지만 별다른 성과도 없고, 백수도 이런 날백수가 없었다. 지금 이런 삶이 괜찮을까 걱정과 불안이 찾아왔다. 과거를 의심해 봤다. 지난날 나는 왜 연극이 재밌었을까. 고등학생 시절 난 이과생이었으니까 입시 준비 잘해서 컴퓨터공학이나 반도체공학을 전공하고 취업 준비 열심히 해서 유망한 IT 기업에 취업했으면 삶이 달랐을까. 돈은 좀 벌지 않았을까. 재물운이 없어서 어차피 못 벌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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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창작을 전공하지 않았으니, 내가 하는 글공부는 종종 글 쓰는 지인들을 만나서 연극 얘기, 글 쓰는 얘기를 슬쩍하는 게 다다. 그러면 뭔가 배운 기분이 들어서 다시 쓴다. 다시 또 쓰는 괴로움을 마주한다. 읽는 사람은 이 마음을 알까. 도무지 알 수 없는 늪에 빠져서 허우적허우적 뭐라도 쓰고 고친다. 그렇게 고치다 보면, 읽을 만한가? 싶은 마음도 든다. 그렇게 다시 또 환상에 빠진다. 그래도 돈 받을 만한 글은 꼭 써야지.
이번에 선정된 <떡갈나무>도 다시 읽어보니 참 아쉽다. 고치고 싶은 게 많다. 근데 작품이 선정되어서 못 고친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냥 끝이구나 싶었다. 지금 상태로 발표해야지 뭐. 다음에 무대에 올라갈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조금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계속 쓰고 고치는 게 작가의 일인가 싶다. 이번 선정과 발표를 시작으로 쓰기 싫은 마음을 잘 가꾸고 가꿔서 쓰고 싶은 마음과 사이가 좋아지도록 만들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