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문학창작기금??
(2)
아, 쓰기 싫다. 입 밖으로 속마음이 들렸다. 물론 술술 써질 때도 있다. 등장인물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가 알아서 말하고 움직이는 걸 따라가면서 의문이 들면 질문한다. 왜 욕했어? 화난 거야? 뭐 때문에? 그러면 인물은 또 알아서 대답하고 행동한다. 이 능동적인 인물이 어느 순간 껌딱지처럼 한 장면에 딱 붙어서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않는 때, 아무리 다그쳐도 일시 정지된 바로 그런 때에 나는 말한다. 아, 진짜로 쓰기 싫다.
―고려시대 배경의 역사극을 써보려고.
―갑자기? 무슨 내용이야?
친구와 조용한 전집에 앉아서 툭 얘기를 꺼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건 중요하다. 새로운 의견이 이야기 속 인물들을 움직이게 할 수도 있으니까.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시고서 현재 쓰고 있는 이야기를 요약해서 들려줬다. 가뭄과 기근으로 괴로운 비극적인 가족 서사, 기후 위기 시대에 한반도가 안전할 거로 생각하는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 천 년 전 고려인의 고통과 고뇌로 이 시대의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키겠다는 따위의 말을 해댔다. 머릿속이 복잡했었는데, 별다른 정리도 없이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 줄거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말들이었다. 친구는 술잔을 들고서 멍한 표정이었다.
―재밌네. 재밌는데….
항상 '는데' 다음의 말이 진짜다. 진심이 나오기 전 그 짧은 침묵의 순간이 뭐라고 나는 긴장이 됐다. 그는 지금 들려준 얘기로는 비극이라고 하기에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인물 간 갈등도 잘 안 드러나고, 주제 의식도 안 느껴진다면서 비판 아닌 비판인 것처럼 매서운 비판을 해댔다. 가만히 듣던 나는, 내 연극은 넷플릭스에 올라오는 싸구려 시리즈나 영화가 아냐, 하고 성질대로 말하려다 말고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셨다. 고려시대 사람들도 막걸리를 마셨으려나? 해물파전이 맛있어서 입에 욱여넣었다.
(3)
같이 사는 친구와 밥상을 차리고서 아이패드를 식탁 위에 올렸다. 우린 점심을 먹을 때마다 넷플릭스를 본다. 넷플릭스 말고도 유튜브, 왓챠 등 콘텐츠 미아가 되어서 눈을 붉히고 여기저기를 헤맨다. 얼마 전에는 '흑백요리사'를 아주 신나게 봤다. 전 국민이 괜히 난리 치는 게 아니다.
밥을 다 먹으면 영상 시청도 멈춘다. 그리고 소화할 겸 핸드폰 게임을 켠다. 요즘에는 '풀팟홀덤'이라는 이름의 텍사스 홀덤을 했다. 몇 판을 돌다가 지루해지면 꼭 올인을 하는데, 그러면 지금까지 모은 돈을 다 잃었다. 내 사주에 재물운이 없다고 하던데, 돈 벌 운명은 아닌가 보다. 그래도 돈 받을 만한 글은 써야 할 텐데. 얼추 소화가 다 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나만의 비겁하고 비루한 글쓰기를 시작하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았다. 소설을 쓰면 희곡이 쓰고 싶어지고, 희곡을 쓰면 에세이가 쓰고 싶어지고, 에세이를 쓰면 소설이 쓰고 싶어진다. 이렇게 세 개를 돌려가면서 파일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이거 이래서 글쓰기로 돈 벌겠냐, 어이?
―아, 쓰기 싫다.
이래도 계속 쓰려는 의지는 도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쓰기 싫어서 딴생각을 계속했다. 10년이 흐르면 나는 어떤 상태일까? 의지로 사는 삶이 데려갈 곳에는 행복이 존재할까 모르겠다. 내 삶이 행복해지려면 글과는 멀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그것대로 불행할 것 같다.
행복과 불행에 대해서 깊은 사유를 해보려고 시도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나이가 들었나 머리가 잘 안 굴러간다. 이미 20대를 지나오면서 생각할 만큼 한 건데 뭘 또 하냐면서 박약한 의지를 합리화하고서는, 인스타그램을 켰다. 팔로잉하는 사람들의 스토리를 툭툭 넘겼다가 피드도 쓱쓱 보다가 시시하고 재미도 없어서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글을 쓰려고 집중해 본다. 희곡, 희곡에 대해서 할 말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나는 희곡을 잘 모르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식어서 미지근해졌다. 뜨거울 때보다 맛이 더 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