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아르코문학창작기금 희곡부문 선정작
수환, 고개를 돌려 준성을 바라본다.
준성 저, 박수환 어르신 댁 아닌가요?
수환, 고개를 끄덕인다.
준성 박수환 어르신 맞으세요?
수환, 고개를 끄덕인다. 손짓으로 평상에 앉으라고 한다.
준성 아, 네 감사합니다. (평상에 앉는다) 저는 읍에 있는 노인복지관에서 나왔어요. 혼자 살고 계시는 어르신들 현황 조사 중입니다. 시간 괜찮으세요?
수환, 다시 앞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준성 (서류를 뒤적거리고 바라보면서) 그··· 저··· 박수환 어르신 맞죠? 지금 혼자 살고 계신 거 맞나요?
수환, 고개를 끄덕인다.
준성 (계속 서류만 바라본다) 그럼 몇 가지만 여쭐게요. 음, 자녀분들은 몇 분이나 되세요?
수환 자식? 아들은··· 일본에 갔다.
준성 아, 아들 한 분 계신 건가요?
수환 작은놈은 서울서 일하고 있고.
준성 아들 둘?
수환 막내는 병원 신세 지고 있지.
준성 아··· 아들 세 명인 거죠?
수환 큰 딸내미는 동남아··· 필리핀 가서 살고.
준성 아이고 딸도 계시구나. (계속 서류에 체크한다)
수환 작은 딸내미는 부산서 장사한다.
준성 딸 둘?
수환 다들 제 삶이 바쁜 게 못 와. 안 와야지.
준성 아, 연락은 자주 하시고요?
수환 아무도 없어.
준성 (서류를 보면서) 명절 때는 한 번씩 들르시나요? 자녀분들이?
수환 없지 아무도.
준성 (서류에 체크하면서) 그럼, 왕래가 없으시고··· 아들 셋, 딸 두 분이 계시고··· 혹시 경제 활동 같은 건 안 하시죠? 일하는 게 있으세요?
수환 없어. 몸이 이래가꼬.
준성 (서류에 적으면서) 없으시고··· 그럼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에는 자주 가세요?
수환 몸이 이래가 뭘 하겠나.
준성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가세요?
수환 안 가. 가서도 재미도 없고. 몸이 이래가 움직이는 것도 귀찮다.
준성 아··· 아예 안 가시는 걸로··· (서류에 적는다) 그럼 이웃분들이랑은 자주···
수환 어디서 왔다고?
준성 아, 저 읍에 노인복지관에서 왔습니다.
수환 어디?
준성 노 인 복 지 관에서요.
수환 복지관. 거서 왜 왔을까.
준성 그게···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 설문조사 나왔어요. 이제 막 복지 서비스 대상 연령이 되신 분들도 있으셔서 전체적으로 조사도 하고 나라에서 다른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찾는 거예요.
수환 조사? 내 조사해서 뭐 할라고. 가끔 도시락 차가 저 마을회관 앞으로 오는데, 그 도시락이나 좀 자주 나오게 해 주라.
준성 아, 그게 대상자 조사 중이라서 확인되면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있을 겁니다.
수환 도시락이나 넣어 줘.
준성 네, 그럼요. 도시락 준비도 될 것 같아요. (서류를 보며) 그러면 이웃분들이랑은 자주 만나세요?
수환 누구?
준성 주변에 이웃 분들이요. 집 근처나 아니면 회관에 가서 만나거나. 자주 얼굴 보세요?
수환 내 여서 산 지 칠십 년이다. 그만치 살았는데 그동안 내한테 해꼬지한 놈들, 흉보던 놈들, 시시덕거리던 놈들, 다 명 끊기고 이제 내밖에 없어. (자리에서 일어난다) 지하 밑에서 허풍이나 늘어놓고 있겠지. 지겨운 놈들. (무대 앞 텃밭을 살핀다)
준성 네. (서류를 쭉 살펴본다) 그러면, 저, 어르신 도장이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도장 있으세요?
수환 (고개를 저으며) 내도 살믄 얼마나 살겠나. 됐다.
준성 네?
수환, 상수로 천천히 퇴장.
민영, 차를 마시고 키보드를 두들기다가 수환이 퇴장하면 하수로 퇴장.
준성 (상수 쪽 바라보며) 어르신···? 혹시 도장을 찍을 수 있을까요?
수환 (무대 바깥에서) 됐다 고마 가라. 내 도시락 필요 없다.
준성, 수환이 나간 방향을 바라보다가 포기하고 천천히 하수 쪽으로 걷는다. 무대 중앙에 가만히 서서 민영 쪽을 바라본다. 핸드폰을 꺼내고 전화를 건다. 민영의 책상 위 전화기가 울린다. 전화기가 세 번 울리고 나면 전화를 끊는다. 한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