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아르코문학창작기금 희곡부문 선정작
장수, 상수에서 등장. 평상 주위를 한 바퀴 천천히 돈다. 자리에 앉는다.
준성, 하수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민영, 하수에서 등장. 자리에 앉는다.
준성, 민영 앞에서 멈춘다.
준성 안녕하세요.
민영 예, 오셨네요. 일은 어떻게 잘 돼 갑니까?
준성 뭐 그냥···.
민영 (테이블에 놓여 있는 서류를 보면서) 요 다른 분들은 벌써 이만큼씩 했는데.
준성 아, 벌써 이만큼이나···.
민영 통장 사본이랑 신분증 사본 준비하셨어요?
준성 아, 네 여기 있습니다. (서류를 뒤적이면서 꺼내 준다)
민영 (서류를 살피면서) 준성 쌤, 이게··· 일자리 만들겠다는 사업이라. 저번에 얘기하긴 했을 텐데, 사실 이미 복지관에서 올 초에 싹 다 전수조사를 했어요. 그래도 고용을 했으니 억지로, 억지로 일을 시키는 거긴 한데. 이게 좀 그래요. 내가 생각해도 이게 뭔 짓인가 싶네. 돈을 써야 한다고는 하는데, 뭐 너무 갑작스럽게 위에서 옛다 예산, 이러면서 사람 뽑아서 일 시키라고 하니까··· 시키는 저희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에요. 원래 계획에 있던 일도 아니고 갑자기 팀 만들어서 진행하는 일인데, (준성 보면서) 나라가 이러면 안 되지. 그렇잖아요, 언제부터 나라에서 노인들 먹여 살렸다고.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컵을 들고선 책상 주변을 걷는다) 아, 물론, 물론 노인복지도 물론, 중요한 문제긴 한데, 이··· 이게 권리와 의무가 같이 가야지. 나도 얼마 안 있으면 노인이지마는,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수준인 거라 이거요. 여기 지역 살림도 다 노인들한테 뿌려 놓고··· 돈이 있으면 육아에 쓰고 청년들 일자리 만드는 데 써야 이 촌구석에서도 미래를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거예요. 근데 정치인들이 그라겠어요? 싹 다 노친네들 표밭인데? 이게 이러면 진짜 미래가 없어요. 근데 뭐 나 같은 사람이야 뭐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사이)
준성 여기저기 다니면서 보면 노인 분들이 참 딱하기도 하더라고요.
민영 그래요···. (자리에 앉는다) 이거 끝나면 기초조사 명단 나올 겁니다.
준성 예···. 알겠습니다.
민영 신속하게! 부지런히!
준성, 민영에게 인사하고 상수로 천천히 걸어간다. 조금 힘겨워 보인다. 무대 중앙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걷는다.
준성 (서류와 대문 주소를 살핀다) 45번길 17-2. (평상에 앉아 있는 장수를 발견한다) 안녕하십니까.
장수, 못 듣는다.
준성 실례합니다. 어르신?
장수 (준성을 보고) 뭡니까?
준성 안녕하세요. 저는 읍에 노인복지관에서 나왔습니다. 혼자 살고 계신 어르신들 기초조사 나왔어요.
장수 아 됐어요.
준성 네?
장수 필요 없으니 가시라고.
준성 아, 그게···.
장수 내는 받을 것도, 줄 것도 없다 이거요. 그러니까 그냥 가쇼. (일어나서 평상 뒤쪽으로 간다)
(사이)
준성 저 어르신, 그러면 혹시 서명만 하나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