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아르코문학창작기금 희곡부문 선정작
장수 뭐?
준성 아, 그 제가 여기 조사 나왔다는 확인이 필요한데 괜찮으시면 서명을 좀 해 주실 수 있나 해서요.
장수 (준성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어디 사람이요? 서울?
준성 아, 네. 서울에서 내려왔습니다. 반년 정도 됐어요. 내려온 지.
장수 촌구석엔 뭣 하러. (서류를 달라고 손짓하며) 어디다 쓰면 된다고요?
준성 아, 여기.
장수 젊은 사람이 이게 뭐 하는 거야 여기서.
장수, 평상에 앉아서 서명을 하고는 준성에게 넘겨준다.
장수 내 큰 아들놈도 서울서 일하고 있는데, (준성 살피며) 그 젊은 사람이 여서 이러고 살면 못써요.
준성 아, 네···. 그런가요.
장수 조금이라도 젊을 때 나가서 일하고 이런저런 다양한 사람들 만나면서 진짜 사는 걸 배워야지, 이런 데는 노후 보내려고 오는 거고. 남은 생 마무리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와야지. 이 촌구석에 젊은이들이 봤어? 일자리가 있어요? 없지 다 없어. 결혼은 했고?
준성 아, 아직···.
장수 계집도 없는데 짝이나 찾겠나?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죽어 가는 동네라 이거요. 여기 삶은 젊은 사람들이 절대로 이해 못 한다 못해.
준성 하하, 그래도 얼마 안 됐지만 여기 사는 거 좋습니다. 자연도 좋고.
장수 하이고, 늙으면 알아서 좋아진다. 내가 젊었을 적에 서울에서도 살고 부산에서도 살아 보니까 여기 같이 완전히 촌구석은 사는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 이거야. 도시처럼 살려면 못 산다. 아무것도 없다. 됐고, 그만 가소.
준성 아,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장수, 평상 뒤로 가서 나무 장작을 정리하고 상수로 퇴장.
준성,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걷는다.
민영, 전화기를 들고 준성에게 전화를 건다.
준성, 핸드폰이 두 번 울리면 전화를 받는다.
준성 네 여보세요.
민영 다음 주 목요일에는 시스템에 입력해야 하니까 화요일에 들러서 서류 전달 부탁드려요.
준성 아, 알겠습니다.
민영 수고하세요.
준성 네 수고하세요.
민영 아아, 잠시만요.
준성 네?
민영 추가 명단은 옆 마을에 돌아다니는 분 있죠? 그분한테 전달했으니 받으면 됩니다.
준성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민영, 전화를 끊는다.
준성, 전화를 끊는다. 하수 쪽으로 걷는다. 천천히 걷는다. 민영 앞에서 멈춘다.
양희, 상수에서 등장. 평상 뒤 나무 장작을 정리한다.
준성 안녕하세요.
민영 아이고, 고생하셨네. 많이 도셨어요?
준성 네, 뭐 그냥 도는 거죠. (서류를 건넨다)
민영 왜 이것밖에 안 돼? 요기 어머님들은 이만큼이나 했는데.
준성 아, 다들 많이 하셨네요···.
민영 요 분들은 막 하루에 사십 명도 뽑던데요. (전화가 온다) 분발하셔야겠네. 잠시만요. (전화를 받는다) 네, 전민영입니다. 예. 아, 예예. 그랬어요? 제가 담당자님께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예예, 수고하세요. (전화를 끊는다) 그래서··· 뭐 필요한 거 있습니까?
준성 아, 아니요. 오늘 이거 전달해 달라고 하셔서 왔어요. 그럼 가 보겠습니다.
민영 준성 쌤. 이게 지금 두 달짜리 일이지마는 열심히 해 주셔야 우리도 더 챙겨 드릴 수 있어요. 지금 내부적으로 선생님이 제일 느린 거 아시죠? 물론 많이 하는 것보다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지만. 그래도 보이는 게 그거다 아닙니까? 어제는 한 분이 그··· 일하는 속도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나가는 월급은 다 똑같다 아닙니까? 불만이 생기죠. 그런 불만이 생겨도 결국 돈은 그대로 지급되긴 합니다만··· 그게 우리 입장에서도 좋아 보이지가 않은 게··· 무슨 말인지 알죠?
준성 네. 그럼요. 알겠습니다.
민영, 자리에서 일어난다.
준성, 천천히 상수로 이동한다. 천천히 발걸음 주변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걷는다. 숨을 고른다. 닫혀 있는 대문 앞에 선다.
민영, 하수로 퇴장.
준성 (서류를 본다, 문을 두드리며) 실례합니다. 계십니까. (문을 다시 두드리며) 누구 안 계세요. 김양희 님 계십니까. (더 세게 문을 두드리며) 안에 누구 안 계세요. 김양희 어르신 계신가요.
(사이)
준성, 돌아가려고 몸을 돌려 걷는다.
양희, 평상 뒤쪽에서 계속 듣고 있다가 문으로 온다.
양희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