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야간시위>
2017년 11월 18일
가는 길에 평화현수막이라도 한 장 선물로 챙겨드릴 것을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문경 희양산에서 온 마을주민들이 소성리주민들 힘내라고 쌀이며 막걸리를 챙겨서 먼길, 밤길을 달려오셨다. 토요촛불문화제에 풍물공연이며, 노래공연도 준비해서 마을주민들이 마음 단디 먹고 오신 듯 했다. 사람들의 몸에 흥이 많아 가락이 흘러나오는 동안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엉덩이를 실룩실룩, 어깨를 흔들흔들, 손과 발은 아귀를 딱딱 맞춰 리듬을 탄다. 보는 이도 흥겨워 나도 모르게 어깨가 절로 덩실거린다.
성주촛불이 낳은 개사곡의 황제, 김경철가수님이 오랜만에 무대에 오를 때, 우리 측 빽댄서들은 범상치 않았다. 내가 본 촛불 중 김경철님 무대가 가장 빛나는 날인 듯 하다. 성주촛불이 시작되고 도로로 쫓겨나갔을 때, 촛불발언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부탁했었다. 많은 사람들을 알지 못했을 때라 안면이 있거나, 촛불에서 눈에 띄었던 사람들을 우선으로 부탁할 수 밖에 없었던 때였다.
김경철님이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것이 언제적 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평화나비광장으로 옮기고 나서 부터였던 거 같다. 노래공연이 가능한 시설과 음향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노래신청을 받았던 거 같다. 읍에 사는 윤미양이 과감하게 도전했었다. 촛불은 어느 누구라도, 무대에서 어슬픈 몸짓과 노래에도 결코 실망하거나 비난한 적 없었다. 오히려 함께 호흡해 즐겼다. 받아주고 환영해주었다.
김경철님이 트롯트 노래를 개사했다며 노래신청을 하는 소심한 문자를 받았다. 촛불에 선보이기 위해 몇날 며칠동안 노래를 반복해 부르면서 사드반대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 머리를 쥐어짰을 그를 상상해보았다. 한곡 두곡의 개사곡은 촛불의 회수만큼 늘어갔다. 한곡의 개사가 완성되면 노래를 신청해서 선보였던 김경철님의 노래공연도 어느덧 횟수로 2년을 맞이한다. 성주촛불 가수 생활 2년차가 되었다. 처음엔 노래만 부르는 것도 버겁게 보였던 그가 어느날부터 발바닥을 비비는 동작을 하더니, 노래 중간중간 구호를 외치면서 촛불님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여유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제 그는 아마츄어가 아니라 프로의 여유를 보여준 셈이다. 이젠 팔과 다리를 동시에 움직이면서 댄스를 겸비한 가수로 무대를 흔들어대는 진정한 촛불가수가 된 듯 했다. 지상파방송에 나오는 트롯가수 못지 않은 실력을 보여준 것이다.
안해분의 말씀에 따르면 일하는 작업장에서 기계 돌려놓고는 작업시간동안 노래를 목청이 터져라 불러대는 데 안 늘겠냐고 할 정도이다. 노동시간만큼 노래를 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 같다. 노동시간 만큼 가사를 개사하기 위해 노력했을 거 같다. 이미 득음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의 김경철님 무대는 범상치않은 빽댄서들까지 융합해 완벽한 무대를 보여준 거다. 그리고 내일은 김천촛불로 순회공연까지 가신다고 하니, 성주촛불 가수로선 경사롭지 아니한가? 드뎌,, 전국 촛불무대로 데뷔하는거 아녀?
오랜만에 받는 흥겨움과 주는 흥겨움이 모두 고르게 잘 조화된 소성리토요촛불을 맞았다. 소성리의 골바람에 천막이 휘청거리며 날라갈 거 같은 매서운 추위에도 촛불문화제를 치뤘다.
비닐 지붕에 구멍뚫리지 않도록 단도리 해가면서 장작떼는 난로를 중간에 넣어서 추위를 좀 피해보려고 매우 애쓴 티도 난다. 몸에는 담요를 덮어쓰고 있으니 어찌 추위는 조금 면할 수 있었다. 발시려운 건 어찌 방법이 없었다. 다음부턴 신발무장을 단디해야겠다.
민중대회 올라간 성주, 김천 사람들의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난로를 지켰다. 해남에서 고구마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보내주셔서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난로마다 고구마를 올려서 굽는다. 확실히 해남고구마가 맛있다고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거든다. 문경 희양산주민들이 선물로 주신 막걸리를 뒤늦게 돌리면서 안주를 어찌할지 고심하다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낸 것이 사다리타기다.
소성리 마당에 하우스설치공사 중에 남자 한분이 사다리에 올랐다가 넘어져 피 흘린 사건이 있었다. 사다리는 타면 안 된다는 강력한 저항이 있었으나 일절 무시하고 스무개의 사다리를 만들어서 그어보았다. 천원에서 만원까지 두 번을 돌렸다. 이래저래 사다리 탄 금액이 114,000원이 나왔다. 매주 토요촛불 때마다 모인사람들 사다리 한 번씩만 타도 투쟁기금 모으는 데는 아주 좋은 방법인 듯했다. 평화장터 보다 수익성이 훨씬 나은 듯 했다.
서울에서 고생한 우리 소성리 엄니들과 연대자들 올 때까지 사다리계금으로 편의점 강사장님께 오뎅을 주문해서 뜨끈한 국물로 소주안주를 삼았다. 그렇게 먹은 오뎅이 150개다. 안 먹을 거처럼 해도 시켜놓으면 다 먹어낸다. 참으로 놀라웁지 아니한가?
뒷풀이 하는 동안 복어집 사장님을 무진장 꼬드겼다. 다음 주 뒷풀이 안주로 복껍질회를 강력 추천, 사장님은 복어육수로 오뎅을 하시겠다고 하는 의사를 보였으나, 우리는 수용할 수가 없었다. 다음주 토요일에 만나요. 복껍데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