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반대 열심히 했는 새댁인데 일하게 해줘야지.
SO-SO 한 이야기(9)
사드반대 열심히 했는 새댁인데 일하게 해줘야지.
교육청화장실로 들어서자 남성용변기가 있다. 분명 바깥에서 여성화장실 표지판을 보고 들어갔는데, 남성용변기는 뜬금없었다. 인구4만5천명의 작은시골동네에 교육지원청 화장실이 색다른 이유가 뭔지 궁금했지만, 속시원한 대답을 듣기위해 시간을 쓸 수가 없었다. 소성리엄니들과 현선언니, 그리고 진석씨는 화장실에서 나와 현관로비에서 나를 기다렸다. 현선언니는 교육청입구에 피켓을 들고 선 노조사람들을 만나러 나갔다. 소성리엄니들은 나를 보자 밖으로 나가려고 했고, 나는 밖에서 혹시나 올라올지 모르니 기다려보자고 했다. 경임엄니, 상돌엄니, 금연엄니, 춘자엄니 모두 칠순도 넘었고, 팔순도 넘은 연로한 분들이다. 오래 서 있기 힘든 엄니들은 2층 올라가는 계단 한 칸을 차지하고 앉았다. 직원인 듯한 남자사람이 지나가다 우리를 향해 묻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 네에.. 저희 성주주민인데 교육청 구경왔어요”
하자 직원은 “네에” 하며 가던 길을 다시 간다.
금연엄니가 현관로비에 계속 있기가 쑥스러웠는지
“우리 새댁이 자르지 말라고 높은 사람 한번 만나러 가볼까?”
“교육장실이 어딨노? 아 2층에 있네요. 엄니 2층에 올라가면 만날 수 있겠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상돌엄니는 일어나 씩씩하게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오르신다. 금연엄니는 턱까지 숨이 찬지 “쌕쌕”거리시면서 오르신다. 천천히 올라가 2층복도에서 왼편으로 꺽으면 ‘교육장실’이란 표지판이 나왔다.
‘똑똑똑’
“누구십니까?”
“네에. 교육장님 뵈러왔습니다”
비서가 문을 열자 기함을 한다. 문밖에 할매들 서너이가 꾸부정하게 서있고, 그 옆에 폭탄맞은 곱슬머리의 가수 정진석씨가 긴다란 롱패딩을 입고 서있다. 그리고 내가 문앞에서 큰 덩치로 버티고 섰다. 비서는 무슨일이냐고 묻기를 반복하고 교육장을 만나게 해줄 생각은 없어보였다. 소식을 전해들은 교육청 남자직원 여럿이 교육장실로 다가왔다. 나는 비서에게 할매들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말했다. 바로 문앞 비서책상앞에 긴 대기의자가 있었다. 비서는 내게 다른 회의실로 장소를 옮겨드리겠다고 했다. 우리는 반쯤 열려진 문을 살짝 밀고 들어가 비서책상 앞 긴 의자에 엄니들을 앉을 수 있도록 안내했다.
경임엄니, 상돌엄니, 춘자엄니, 금연엄니 네 분이 나란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자, 피부가 뽀얗고 덩치가 크며 능글능글맞지만 거만한 인상의 과장이 엄니들 앞에 섰다.
“할매들 뭘 알고 오셨습니까?” 엄니들을 바라본 과장의 첫마디였다.
“우리 아들, 딸래미 다 그 학교 다녔소. 그 학교에서 쫓겨난 새댁이 우리마을 사람이라”고 경임엄니가 허스키하면서 텁텁한 목소리로 말씀하자. 과장도 질세라
“오해가 있으신가본데, 쫓겨난 게 아니고 계약기간이 만료된 겁니다. 작년 9월부터 2월말까지 일하기로 계약하고 들어온거거든요. 그래서 계약기간이 만료되셨으니까 일은 그만하게 된거지쫓겨나거나 그런거 아닙니다.”
“그런데 왜 학교에서는 일해달라고 했다면서, 새로 사람 뽑을 거면 일하던 사람 계속 일하게 하면 되지 와 사람을 쫓아내고 또 뽑는다고 하요?” “우리는 학교에서 법에 따라서 절차를 잘 지켰나 안 지켰나만 보지 다른 건 알 수가 없습니다. 학교가 법을 어기면 우리가 뭐라카겠지만, 학교는 법대로 절차대로 신규채용공고내고, 면접도 보고, 저 선생님보다 훨씬 자질도 있고, 능력있는 사람을 뽑았으니까 우리가 뭐라할 수가 없습니다. 법대로 다 했기 때문에 법을 어기라고 할 수는 없지요”
그 때 마침 교육청 문앞에 모였던 사람들이 교육장실로 어느새 몰려왔다. 교육장실 바깥 복도에는 초록조끼를 입은 노조사람들의 항의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주로 중년의 여성들이었다. 여기저기서 “부당해고자나요. 계약기간이 만료된다고 사람을 다 쫓아내지는 않아요. 어차피 사람을 써야 하는데 일하던 사람을 계속 일하게끔 해야지요. 이렇게 해고하는 건 부당합니다.” 여러사람들의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복도에 크게 울렸다.
금연엄니의 키보다 높은 의자는 금연엄니의 발을 바닥에 닿지 못하게 만들었다. 발은 허공에서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발뒤꿈치를 쿵쿵 차던 금연엄니가
“저 안에 한 사람만 나오면 될 일을 이 좁은데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서있게 만든다”
금연엄니는 사람들이 서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나보다. 앉을 의자도 없이 사람들은 좁은 복도에 답답하게 서있었다.
비서실에 있는 우리는 교육장을 면담하러 왔으니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하자, 과장은 자신이 책임자라며 교육장면담을 가로막았다. 사람들이 쉬이 나갈 생각을 하지 않자 당황한 기색이었다. 과장이 교육장실로 들어갔다 나와서는
“옆에 회의실로 장소를 옮깁시다.. 거기서 이야기를 하입시더” 한다.
우리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답했다. 교육장을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높은 양반한테 우리마을 새댁이 일하던 대로 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러 왔응께 얼굴볼때까지 여기서 기다릴끼요. ” 소성리엄니들은 입이라도 맞춘 듯이 똑같이 말씀하셨다.
그러자 과장은 연극대사를 외우듯 계약기간 만료로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이지, 해고는 아니라고. 학교는 교육청지침대로 공개채용원칙을 지켰고, 절차대로 신규채용절차에 따라 면접을 보고 점수가 제일 높은 사람을 뽑은거라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학교 측이 잘못한 게 없는데 교육청에서 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딱 잘라서 이야기했다.
그러자 춘자엄니가 불쑥 “그래도 우리는 안 갈거예요. 우리 새댁이 일하던 대로 일하게 해줘야 가지 그냥은 못가요” 하신다.
듣다 듣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내가 말을 거들었다.
“과장님.. 계약기간이 정해진 비정규직인 것도 맞고요. 올 2월말까지 계약기간이란 것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사람이 취업할 때 딱 5개월만 일하고 그만두는 일이면 처음부터 그 자리에 갔겠어요? 전임자가 그만두면서 우리 언니를 추천했고요. 그 전임자도 일 년씩 계약직이었지만, 매년 계약을 갱신해서 그 학교에서 5년을 근무했다고, 우리언니한테 계약기간 끝나도 그만두지 않고 계속 근무할 수 있다고 말했으니까 그 시골골짜기에 교통편도 안좋은 학교에 쥐꼬리만한 월급받아서 기름값 써가면서 일했지요.
만약에 올 2월말로 일이 끝나면 12월말이나 1월에 다른 학교 일자리를 알아보고 찾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어요. 학교에서 선생님 올해 더 해주셔야 합니다 라고 몇 번을 간곡하게 부탁을 해서, 다른 학교 찾아서 옮겨다닐 바에야 다니던 곳에서 더 있어야겠다고 다른 일자리를 안 알아봤다고요. 그러면 당연히 우리언니를 계속 일하게 해줘야 하는 책임이 학교에 있는거 아닙니까? 이제 와서 법대로 했으니 아무문제 없다고 하는 건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닙니까? 진작에 2월말로 끝이라고 했더라면 이런 사단이 벌어지지 않았겠지요. 처음부터 그 학교에서 일도 안했을겁니다.” 하고 항의했다.
과장은 귀찮고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또 했던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자 안팎으로 원망과 분노, 항의가 빗발쳤다. 과장은
“당사자가 누구십니까? 당사자가 직접 말씀을 좀 해보세요.” 하자 현선언니가 복도에서 비서실 쪽으로 들어와서 “제가 당사자입니다” 하고 나섰다.
“과장님, 저는 계약직으로 들어온 거 맞지만, 올 초에 학교측에서 몇 번이나 올해 더 해주세요.라고 부탁했었고요. 그러다 일주일만에 학교측에서 말이 바뀌었어요. 무학분교 폐교되면서 학교에 예산이 너무 많이 배정되서 방과후수업을 만든다면서 돌봄교실은 없애겠다는 거에요. 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방과 후 수업을 하더라도 어린학생들이 이 수업 저 수업 옮겨다니는 와중에도 안정된 돌봄을 베이스로 깔아야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말씀드렸고, 돌봄교실은 없애면 안된다고 했어요. 제 얘기때문은 아니겠지만, 학교는 돌봄교실을 유지하겠다고 하면서 일하던 저를 놔두고 새로 사람을 뽑겠다고 공개채용을 한다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갑자기 공개채용을 한다고 서류를 내고 면접을 보라고 하는거에요. 학교는 공개채용이라는 형식을 빌어서 저를 쫓아냈다고 생각합니다. 공개채용 면접을 보고 합격했다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제가 오기 전에 이 학교에서 돌봄교실했던 전임교사에요. 그 사람이 저를 여기 소개시켜줘서 제가 일하게 되었는데, 제가 노조에 가입해서 그런지 학교가 그 사람을 불러서 면접을 보게 해놓고는 합격발표하자마자 계약서를 바로 썼더라구요.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좁은 시골바닥에서 한동네 사람끼리 일자리 때문에 원수지게 생겼어요. 학교가 처신을 잘못하는 바람에 저는 피해를 본겁니다. 제가 일하던 자리로 돌아가서 일하고 싶습니다”
현선언니는 아주 또렷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고, 지금 이 사태가 학교측의 잘못이라고 분명하게 항의 했다. 부당해고에 대해서 책임질 것을 요구했다. 노조사람들 뒤로 마을주민들이 점점 불기 시작했고 교육장실 앞 복도는 소란스러웠다. 그때 금연엄니가 적절하게 또 한마디“ 저 안에 있는 사람 하나 나오면 해결 될 낀데, 이 많은 사람들 세워놓고 뭐하는 짓이고?” 툭 던지자 과장도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교육장실로 들어갔다 나온다.
그제서야 교육장님 면담을 이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할 수는 없다고 했고, 우리는 모두 다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며 몇몇 사람을 대표로 해서 면담을 하자고 요구했다.
당사자인 현선언니는 당연히 들어가야 하고, 노조의 대표 한분과 소성리엄니들 중 부녀회장님이 들어가는 것으로 해 과장이 세명만 들어오라고 했지만,
“무슨소리고 소희씨 들어가라. 우리는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께” 하면서 엄니들이 나를 떠밀어넣어서 과장생각과 달리 나까지 네 명이 교육장 면담을 하게 되었다.
키가 작고 왜소한 덩치에 말수가 적어보이는 교육장은 굳은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넓직한 교육장실에 원형탁자앞에 우리는 마주보며 둘러앉았다. 교육장을 보는 순간 나는 흥분했나보다.
“교육장님, 우리 언니요 나이 이십대ㅡ초반부터 공장에 출근하는 맞벌이 부부 아이들 돌봤던 훌륭한 보육교사출신입니다. 삼십년 경력의 전문가입니다. 결혼하고 애낳고 월급은 적어도 가사일과 병행할 수 있는 일자리 찾아서 쥐꼬리만한 월급 같지도 않은 월급 받으면서 일한다고 여러분들이 막 무시해도 되는 사람 아닙니다. 학교에서 올해 일 좀 더해달라고 여러 번 부탁을 했는데 이제와서 사람을 자른다는 게 말이 됩니까?”
순간 내 속에 분노가 치밀면서 눈물이 확 쏟아졌다. 내 목소리는 어느새 울부짖음으로 변해있었고, 과장과 교육장은 완전히 굳어있었지만, 내 눈물에 동요한 것은 아니었다. 과장은 어느새 말을 낚아채서 학교는 잘못이 없고, 계약기간이 만료된 것이지 해고가 아니며, 학교측에서 일을 더해달라고 했던건 사담이지, 공식적인 건 아니었다고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현선언니는
“사담 아닙니다. 교장과 교감이 거짓말 하는 겁니다. 교육공무원이란 사람들이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다니면 부끄럽지 않습니까?”하며 항의했다. 말은 길어졌다 똑같은 말이 수없이 되감겨지듯이 되풀이되었지만, 지칠 줄 모르고 대화를 했다. 과장은 자신들은 어떤것도 해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고, 우리는 해줄 수 없는 사람은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교육장과 대화하겠다고 끼어들지 말라고 했다. 과장은 자신의 말이 곧 교육장의 말이라고 항변했고 우리는 교육장입으로 듣겠다고 하자 교육장은 과장과 똑같은 입장이라고 한마디 덧붙였다. 과장은 교육장에게 할말 다 했으니 우리는 퇴근하자고 말했지만, 교육장은 꼼짝하지 않고 앉아있었고, 과장은 교육장실을 나섰다.
우리는 기다리겠다고 했다. 해결방안을 찾을 때까지 교육장실에서 기다리겠다고.
밖에 나갔던 과장이 금방 되돌아와서는 호들갑을 떨어댔다.
“아.. 내가 오줌싸다가 좋은 생각이 났어요. 좋은 방법이 있네.. 여러분, 부당하게 생각되면 여기서 이럴게 아니고 소송을 거세요. 소성하면 됩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리는 불같이 화를 내야했지만, 순간 웃겼다. 오줌싸다가 생각이 났다는 그의 말이 코미디다. 그리고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여겼으면 중년의 여성들이 앉은 자리에서 그런 상스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을까? 웃겼다. 그런 후부터 나는 과장이 입만 뻥긋하면 몰아부쳤다.
“당신 해결할 능력 없다며, 교육공무원 40년 경력이라면서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이런 문제 하나 깔끔하게 해결 못해서 이렇게 시끄럽게 만들고, 실무책임자가 무능하니까 이렇게 된건데 입이 열 개라도 당신은 할말이 없습니다. 당신하고는 이야기 나누고 싶지 않으니까 나가던지 조용히 임을 다물고 있으시오. 우리는 교육장에게 직접 해결방안을 들을어니까. 과장님은 말하지 마세요 ” 그렇게 몰아칠수록 과장의 수다는 점점 더 많아지고, 쓸데없이 반복되풀이되는 말잔치로 피곤했다. 거기다 옆에 지키고 섰던 직원들까지 한마디씩 끼어들려고 할 때면 “교육장과 대화하는 데 어디 끼어듭니까? 다 조용하세요. 교육장님 말씀만 하시게” 하면서 몰아쳤다. 퇴근시가은 한참 지났다. 바깥에서도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며, 큰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바깥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갑갑했지만, 교육장실에서 자연스럽게 해결방법 찾을 때까지 우리는 이 안에서 기다리겠다고 으름장을 넣은 마당이라 바깥이 어떻든 우리는 교육장실에서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엉덩이를 들썩거리던 과장은 여전히 해결방법없다고 큰소리를 쳤고, 나는 과장에게 ‘그 입다물라’고 성질을 냈다. 노조의 사무국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논리정연하게 교육장에게 돌봄전담교사들의 처우와 고용보장을 위해 어떤 조치들이 있어왔는지 설명했다.
문정권이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을 없애겠다고 하면서 무기계약직 전환을 실시했는데, 일하던 사람이 해고를 당했다. 일하던 자리가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일했던 사람은 쫓겨나고 신규채용을 한거다. 이번에 신규채용 된 사람은 계약직이 아니라 무기계약직으로 채용된 거다. 일하던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져야 할 기회를 교육청지침이라고 내려온 공문서 한 장에 의존해 공개채용원칙을 지켰다는 것 해고자를 발생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것만이 문제였을까? 학교는 현선언니에게 돌봄교사로 올해 더 일해달라고 부탁한지 일주일만에 돌봄교실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었다. 앞뒤가 안 맞는 학교정책에 현선언니는 돌봄교실은 자신의 일자리 뿐 아니라 저학년어린학생들의 정서적인 안정과 안전한 학교생활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고 설득하였고, 학교측은 돌봄교실을 폐지할 수 없음을 뒤늦게 알게 되어 유지키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현선언니가 노조에 가입하고 항의한 것이 괘씸죄에 걸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상식에 어긋날 정도로 주20시간도 안되는 시간임금 일자리에 공개채용이라는 면목으로 그만두고 나간 전임자를 불러서 면접을 보게한 것이다. 석연찮은 부분이 한 둘이 아니었다.
현선언니에게 돌봄교사로 올해 더 일해달라고 했던 사람은 교무부장 뿐 아니라 교장과 교감이 번갈아가면서 부탁했었다. 가촌의 시골초등학교에 학생수도 적지만, 근무시간도 짧아서 월급 80만원을 받지 못하는 직장에 무슨 사명감으로 찾아올까? 어떨때는 30만원 월급을 받을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매년 직장을 알아본다고 옮겨다는 것 보다야 적은임금이지만 아이들과 알콩달콩 재미나게 생활하는게 훨씬 나을거라 생각했던 현선언니는 당연히 가촌초 돌봄교사로 계속 일할 계획었던 거다. 한 개인에게 아주 큰 꿈도 아니고, 정말 소박하기 그지 없는 계획을 학교는 온갖 거짓부렁으로 속이고, 무참히 짓밟았다.
교육장실에서 한참을 실랑이 하던 중에 노조의 조직국장이 오셨다. 교육장과 과장은 노조가 상대하도록 맡겨놓고, 나와 부녀회장님은 교육장실을 나와보니 바로 옆 회의실에 엄니들이 앉아계신다. 교육청에 우리 주민이 해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주민들이 하나 둘 늘어났고, 노조조합원들도 일을 마치고 하나 둘 성주교육지원청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왜관에서 오고, 구미, 안동에서 돌봄교사 조합원들이 달려온거다. 이들은 다들 이런경험을 했던 사람들이고, 여전히 무기계약직이 되기전까지는 매년 학년이 바뀔 즘에는 계약만료시점에 해고당할까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던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누구보다 현선언니의 아픔을 잘 아는 당사자들인거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회의실에는 음식이 쌓이기 시작했다. 엄니들도 요기를 하고, 앉아서 기다리신다. 상돌엄니가 하품을 하는 모습이 눈에 걸려서 엄니들을 소성리로 모셔다드릴려고 하자 “우리 여기 있을거에요. 해결되야 가지요. 오늘 여기서 자고 가야지 그냥은 못가요” 하며 춘자엄니가 강력하게 남아있자고 하신다. 옆에 앉았던 경임엄니도 상돌엄니도 “우리 괜찮아, 가더라도 다 같이 가야지, 우리만 가면 되나. 우리 신경쓰지 마. 해결되고 가야지” 하면서 피곤한 내색을 숨기시려고 애쓴다.
계속 교육청에 있다고 사람들에게 알려서인지, 마음이 씌인 사람들은 바로 귀가하지 않고 교육청을 들르고, 올때마다 양손을 무겁게 먹을거 사들고 오셨다.
교육장실에는 여전히 고성이 오고가고, 똑같은 말은 다섯시간 동안 되풀이되었다. 교육청 직원들은 퇴근하지 못했다. 퇴근해 술마시던 성주경철서 정보과형사들은 교육청으로 호출되어 술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달려왔고, 사드반대 촛불집회에서 만났던 정보과형사들을 교육청에서 다 만나게 될 줄이야.
나는 소성리엄니들의 건강이 걱정되어 몸둘바를 몰라했고, 엄니들을 설득해 집으로 보내드리고 싶었다. 춘자엄니는 매우 단호했지만, 다른엄니들은 또 사정이 다르니 마냥 기다리시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11시에 강장로님이 소성리로 들어가신다고 하니, 엄니들도 강장로님차로 돌아가시는걸로 약속했다. 부녀회장님은 더 있고 싶지만, 엄니들이 가시는데 혼자 남는다고 하면 또 엄니들이 못 가실 수 있으니 돌아가시기로 했다. 다들 소성리에 사드반대하러 열심히 왔던 고마운 새댁이가 직장에서 얼토당토않게 쫓겨난다고 하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날 밝아도 해결안되면 마을 사람들 다 델꼬 오시라고 부탁드리면서 집으로 보내드렸다.
12시가 되도록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교육청 공무원들의 태도는 변했다. 절대로 안된다고 했던 과장은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뜻을 비쳤고, 방법을 찾는 정도가 아니라 이 자리에서 해결방안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서 밤을 지새우겠다고 했다. 실제로 교육청에서 농성을 해야 할 거 같았다. 다음날은 토요일이고, 그 다음날은 일요일, 교육청에서 농성을 하면 이틀 동안 할 수 있는게 없기도 하지만, 교육청 공무원들도 집에서 편하게 쉬지는 못할거니 서로 긴장은 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래도 빨리 해결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12시가 넘어서자, 교육청이 좀더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나보다. 교육청과 노조는 잠시 정회를 하고, 각자 자기그룹 회의를 하고 있었다. 썩 만족할 만한 답변은 아니지만, 교육청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면서 몇가지 방안을 낸 것이다. 현선언니는 자신이 다니던 학교인 가촌초등학교에서 돌봄교사로 일하지 다른 안은 받지 않겠다고 명백히 입장을 밝혔고, 교육청은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것으로 처음 만났을 때 팍팍한 관료들의 태도에서 고개를 앞으로 조금은 휘어져있는 것은 분명했다. 노조는 회의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성주주민들과 조합원들에게 경과를 설명하고, 부족하지만, 농성하기보단 교육청과 다음 대화를 기약하면서 마무리하자고 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소기의 성과를 얻었다. 물론 강하게 밀어붙이자는 주장도 있었다.
새벽1시가 넘어서 우리는 모두 교육청을 나올 수 있었고, 현선언니는 자신을 위해서 달려온 조합원들과 소성리엄니들, 그리고 성주주민들에게 환하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느날 갑자기 불어닥친 해고통지에 피 마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월급이지만, 분명 자신에게는 소중한 일자리였고, 자부심을 가질만한 일이었다. 어린아이들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기여하는 역할을 하는 돌봄교사라는 슬픈 자부심. 삼십년경력의 보육교사로서의 자긍심. 현선언니는 엄청난 경쟁력을 뚫고 시험에 합격해서 학교에 취직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보다 전문가다. 우리는 그걸 잘 알고 있다. 그 경력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결국 우리는 이겼다. 완벽하게 이겼다. 교육청은 토요일과 일요일 발빠르게 움직여 학교교장을 설득하고, 채용된 사람을 설득해서 현선언니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것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서 가촌초등학교 돌봄교사가 된거다. 이젠 매년 2월말 계약해지의 두려움에서는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그만둬야 할 이유가 있을 때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존중되는 것이 아니라 쫓겨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젠 쫓겨나지 않아도 될테니 현선언니의 얼굴에 만발의 꽃이 활짝 피었고, 이 소식을 들은 소성리엄니들도, 성주의 이웃주민들은 너도나도 갓만의 승리에 큰소리로 웃을 수 있었다.
우리가 얼마나 자랑스런 사람들인지 그들은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필요할 때 쓰고, 필요없을 때 함부러 버려도 되는 일회용품이 아니듯
우리는 성주의 들판에 피어난 들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리가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존중의 기본에서부터 학교교육은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교과서로만 암기할 것이 아니라 현실사회에서 실천해 교육답게 만들어야 한다.
비정규직 없는 학교, 쫓아내지 않는 학교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