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O한 이야기(8)

by 시야

SO-SO한 이야기(8)

- 나 박규란이 집에 두부하나 갖다주고 올께요. 신랑이 입맛이 없다고 하는데, 두부한모 먹으면 좀 나을라나? -

부녀회장님은 자신이 힘들여 해온 두부 한모를 비닐에 싸면서도 내게 돈 오천원을 주신다. 안 받겠다고 하는데도, 장사하는데 돈을 안 받으면 안된다며 한사코 내 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어주신다. 토요일 밤, 소성리촛불문화제가 한창일 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를 세판 들고 오셔서는 한모를 40년 단짝친구였던 규란엄니에게로 맛을 보이고 싶었나보다.

문 앞에서 두부를 받아든 규란엄니는 부녀회장님의 등 뒤에 대고 손을 흔들면서 “내 모가치까지 더 팔 흔들면서 해래이” 눈물을 훔치면서 말하셨단다. 부녀회장님은 규란엄니의 청승맞은 눈물바람이 보기싫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와버렸다고 한다.

소성리에 사드가 들어온다고 하고부터 마을회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때, 밥먹을 곳이 마땅찮은 소성리에서 밥시간만 되면 곤욕이었다. 마을회관 부엌에는 늘 규란엄니와 부녀회장님 그리고 몇몇 부녀회원들이 모여서 밥을 해대고 상을 차리고 사람들 밥먹이기 바빴을 때, 그 자리를 지켜주셨던 규란엄니였다. 바쁜 농사철에도 부리나케 마을회관에 와서 일을 해놓고 밭으로 가곤 하셨던 엄니는 추수철에는 도무지 짬이 나지 않았는지 회관으로 발길이 뜸했다. 규란엄니의 남편분인 용각어른께서 관절연골이 다 닳아서 걷기도 힘들 정도라고 했지만, 사드가 어제오늘 하고 있을 때, 바쁜 추수철도 겹치면서 금방 병원을 가보지도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었다. 어느날 갑자기 규란엄니 아들이 허리디스크 수술을 해 고생을 하게 되었다. 아들은 부모님 걱정할까봐 알리지도 않고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았나본데, 수술이 잘못 되어 생고생을 하게 되는 바람에 또 규란엄니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아들이 어느 정도 회복해 가고 있을려니, 용각어른의 병세가 더 심해져 거의 거동이 어렵다고 할 지경이 되었고, 그제서야 병원으로 무릎관절 수술을 받을어 떠나셨다.

집안에 성한 사람없이 지병하나씩은 달고 있으니 규란엄니의 마음이 뒤숭숭했을거다. 나와있어도 편하지 않고, 집에서 가만히 있어도 편치않고, 속이 속이 아니었을거다. 자식들 보면 어렸을때부터 아무것도 못해줘서 저렇게 병이 왔나 싶어 죄스럽고, 남편을 보면 젊은시절 너무 일을 많이 해서 골병이 든게 아닌가 불쌍한 마음에 속이 쓰라리고 아프다. 규란엄니는 한참동안 소성리야간시위도 나오시지 않으셨다. 그래도 젤 마음편케 이야기할 사람이 부녀회장님일텐데, 얼굴만 보면, 목소리만 들으면 울먹거리는 규란엄니가 부녀회장님도 보기 힘드셨을거다. 용각어른은 무릎수술을 잘 하고 지팡이 짚고 걸어다니셨다. 이젠 살살 운동하면서 근력을 키우면 될거 같았는데, 안 좋은 일은 예고도 없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건지, 용각어른은 무릎관절 수술 이후에 속이 아프다고 호소하신다. 음식을 제대로 못 드시는가보다. 용각어른은 또다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부녀회장님이 갓 만들어 뜨끈뜨끈한 두부로 입맛이라도 돌게 했으면 바라는 바람처럼, 용각어른이 아프면 우리 규란엄니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을텐데, 제발 아무일도 아니길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없다. 대형병원에 검사받으러 가는 날, 입원실이 없어서 왔다갔다, 몇날 며칠을 기다려서 검사받기 위한 입원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희망적이지 않은 듯, 어른들은 모두 목소리를 죽이면 걱정스럽게 말씀하신다.

우리 규란엄니 눈에 눈물 맺히는 일 없기를 바란다. 착하디 착한 규란엄니, 내게 무주고 싶어서 그렇게 안달이었는데, 어제 무를 받아서 왔다. 규란엄니가 주신 무로 김치를 담았다. 뭐든 퍼주고 싶어하는 규란엄니 마음에 웃음 깃들날 빨리 오길.. 2018년2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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