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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Jul 26. 2018

그 흔한 들꽃도 공단에서 피우기 쉽지 않다.

     그 흔한 들꽃도 공단에서 피우기 쉽지 않다. 


공장의 담벼락

구미공단을 향해 달렸다. 차안의 에어컨은 차가웠지만 공단의 아스팔트는 엄청 달궈져있겠지. 뜨거운 태양열을 받은 자동차가 쌩쌩 달리면서 흘리고 간 열로 달궈진 아스팔트는 폭염의 체감온도를 더 높여주겠지. 죽을 각오까지는 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해질녘이 되어서 구미공단의 어딘가로 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살짝 시원한 감이 느껴지는 바람이었다. 천막농성장의 주방천막에는 짬장님의 저녁준비가 한창이다. 짬장님 목에 걸린 수건은 이미 땀에 쩌려 있었다. 짭쪼름한 고추장 양념의 볶은고기로 요기를 했다. 

들꽃미사를 시작하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다. 

삿갓을 쓰고 담벼락을 따라 길을 걸었다. 긴 담벼락 너머의 언덕은 점점 낮아져서 공장굴뚝이 보이고, 공장안 주차장에 듬성듬성 세워진 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정씨가 입사해 첫 출근했을 때 10분을 걸어서 점심을 먹었다는 정규직원들의 식당은 어디쯤일까? 궁금했다. 10분을 걸었던 거리가 내가 걷는 담벼락을 사이에 둔 공장안 도로였을까? 점심을 먹기 위해서 걷고 있는 세정씨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 날 이후로 노조를 만들고 해고가 될 때까지 정규직원들의 식당에서 밥을 먹을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하청노동자들이 애용하는 휴게실에서 도시락업체에서 배달한 도시락을 먹었다.     

공단의 들꽃

공장과 공장 사이에 작은 도로와 좁은 인도 틈새마다 잡초들이 살아내기 위해서 고개를 내밀고 키를 키워왔다. 걷는 동안 들꽃 한 송이 만나지 못했다. 

제 이름이 불려 지지 못하고 들꽃이라고 통칭되어 온 흔하디 흔한 꽃이라 알려져 있지만, 공단에서 들꽃을 피우는 일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무더운 폭염에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꼿꼿이 버텨내는 잡초들도 샛노랗게 색깔이 변색되어가고 있었다. 곧 말라 비틀어져서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공장담벼락에 걸려있는 간판에는 ‘아사히초자화인테크노한국(주)’라고 상호가 적혀있다. 유해물질 취급 사업장이라는 표지판이었다. 담벼락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게 사진촬영을 하지 말라고 경비는 경고했다. 갓 스물이나 넘었을까? 앳되 보이는 청년이 낡아빠져고 칠이 벗겨져서 녹슨 고철이 다 드러난 컨테이너에서 나왔다. 내게 몇 마디 한 그는 다시 낡아빠진 컨테이너로 돌아갔다. 그 안에 에어컨은 있겠지. 그도 어느 경비용역업체에 소속된 하청노동자이겠지. 그는 공단의 들꽃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    


들꽃미사

스스로 목숨을 끊어 고인이 된 노회찬의원의 살아생전 명연설로 알려진 ‘6411번 버스 이야기’로 고인에 대한 추모와 삶의 공간에서 노동을 이야기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라는 신부님의 말씀은 내 가슴에 크게 울렸다. 하늘의 햇볕을 볼 수 없듯이, 흐르는 물이 눈에 보이지 않듯이, 살랑 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눈으로 볼 수 없듯이, 세상을 이롭게 하고, 세상을 이끌어가며, 세상에 꼭 필요한 노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고귀한 행위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생각해 보았나? 갑자기 방금 전에 먹었던 볶은 고기를 요리하기 위해서 목에 둘렀던 짬장의 수건이 떠올랐다. 쉴 새 없이 흐르는 땀줄기를 연신 수건으로 닦아대면서 요리했을 짬장의 얼굴도 함께. 짬장의 옆에서 보조를 맞춰주고 있던 정태씨의 더위에 지친 표정도. 


이야기손님. 

쌍용차의 해고자이자 노동운동가인 이창근씨가 이야기손님으로 오셨다. SNS를 통해서 만났던 사람이고, 굴뚝 농성 중일 때 몇 번 쌍차 앞으로 갔었지만 굴뚝 위에 있는 그와 대화를 해 볼 일은 없었다. 책표지에 나온 모습과는 완전 달라서 조금 놀랐다.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걸까? 

살짝 흥분한 톤의 목소리는 아사히비정규직 천막농성장이 있는 구미공단의 공기를 긴장시키고 있었다. 

서른 번째 죽음이다. 분명 아프고 슬프다. 

이 지긋지긋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이 사회는 끔찍하다. 비정하고 잔인하다. 자본과 임노동의 관계로 규정된 사회에서 임금노동자들의 현실은, 특히나 공장에서 쫓겨나서 임노동을 해지당한 노동자들의 현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절망이 분노로 변할 수 있지만, 분노가 사회를 변혁시키지 못하는 현실에서 노동자들에게 희망이 존재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놓을 수가 없다. 

서른 번째 죽음이 말해주는 이 절망을 뒤바꾸지 못한다면 죽음은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두렵다. 

국가는 왜 폭력을 민중을 향해 휘두르는가? 

용산 철거민 학살에서 보여주던 국가폭력도, 밀양과 청도 삼평리의 초초고압 송전탑공사를 밀어붙이면서 자행했던 폭력도, 소성리에 사드를 배치하기 위해서 계엄령의 사태로 몰고 엄청난 경찰병력을 동원해서 성주 소성리 일대를 고립시켰던 박근혜나 문재인이 행했던 국가폭력의 본질이 쌍용차 완성차 구조조정을 완성시키기 위해 동원한 국가폭력과 다른 본질일 수 있을까?

국가가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가를 몇 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너무나 명백히 알 수 있는 사건들이었다. 강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총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권력을 사용할 줄 아는 국가에게 민중들의 삶을 위해 다른 태도를 취하라고 아무리 강요하더라도, 본질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것이 속성이다.  

국가폭력으로 보여준 국가의 본질이 뭔지에 대해 정확하고 날카롭게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책임을 추궁하면서 약간의 떡고물을 얻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국가폭력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테니까. 

분노가 사회를 변혁시키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체제를 뛰어넘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가 아닐까? 체제를 뛰어넘기 위해 투쟁하지 않으면 지금의 비극을 멈추게 할 방법이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아니 답안지를 작성하지 못했다. 

「열매의 글쓰기 2018년7월26 새벽」     

구미공단 4차 단지에 위치한 아사히글라스 공장앞 해고복직 천막농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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