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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Nov 14. 2018

오늘 하루

오랜만에 옥술엄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매주 수요일 소성리에서 집회를 한다는 걸 잊은 적 없어 보인다. 수요일 올라갈 때 집에 들렀다 가라는 당부다. 무슨 일일까? 

오늘 수요일 2시 소성리집회를 참석하기 위해서 부랴부랴 올라가는 길에 길가에 나와 있는 옥술엄니 집에 들렀다. 얼마 전 허리를 다쳐서 운신하기 어려웠다고 하더니, 허리는 괜찮은데, 갈비쪽과 앞 가슴 통증이 있어서 다시 병원을 가봐야 한단다. 암은 전이되지 않아서 이제 살았구나 싶었는데, 몸은 자꾸 골골한다고 푸념하신다. 암투병 중에도 농사일에 손을 놓지 못하고, 밤도 까고, 깨도 털어서 참기름도 짜고, 고구마도 캐고, 사부작사부작 움직일 수 있는 만큼 농사를 지어서 조금씩 소출을 냈다. 오늘은 내게 단감을 한 상자 건네주신다. 나 먹으라고 단감 한봉지도 주고, 박수규선생네 어른 계시다는 걸 어찌 기억하시고는 홍시를 전해달라고 하신다.

한보따리 얻어서 차에 실고 소성리로 향했다. 철철이 부탁할 거 있으면 부탁도 하는 반면에 챙길 것도 잊지 않고 챙겨주시니 고맙다. 암투병 중이라 마음껏 나다닐 수 없는 갑갑한 마음 한켠에도 소성리가 늘 잊혀지지 않나보다.

못 생긴 단감 한 박스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현철이도 떠나서 먹을 사람도 없는데, 그냥 두면 다 곯아버릴텐데, 에라이 깎자. 깎아서 나눠먹자. 

수요집회를 준비할 때 나는 단감을 씻고 커다란 스텐대야에 담아서 밖으로 들고 나왔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할 때부터 단감을 깎기 시작했다. 모양 없이 깎아 썰은 단감을 접시에 담아놓으니 지나가면서 하나씩 집어먹는다. 처음엔 깎는 속도가 빨랐지만, 조금 후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하자 단감의 속도는 줄어들었다. 

결국 혼자서 해낼 일을 우정순여사까지 과도를 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더 웃긴 건 우정순여사가 단감을 깎아서 써니까 나랑 비교가 되는거다. 나는 그냥 쭈욱 깎아서 싹뚝싹둑 잘랐는데, 우정순여사는 단감을 4등분으로 나눠 잘라 놓고는 껍질을 깎으니까 접시위에 놓인 감의 모양이 훨씬 감각 있어 보인다. 

이런젠장. 살림 20년 했다고 어디서 명함을 내밀 수가 없다.     

수요집회도 현철이를 추모했다. 슬픔이 길어지는 게 조금 힘들게 느껴졌다. 저녁에 있을 장례식장 추모제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패감독님이 어제 새벽에 편집을 하다가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한다. 늦은 밤에 들어간 참새집에는 아직도 현철의 흔적이 고스란히 있을테니까, 그립기도 하고,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컸을까? 

영상을 돌려 보니까 유류차 막고 있을 때, 내가 음료수를 먹는데 내 옆에서 현철이가 내게 누나 나랑 나눠먹자고 하는 모습이 딱 잡히더란다. 그 말을 들으니까 상상이 돼서 큰 소리로 웃었다. 나는 과연 현철이랑 음료수를 나눠먹었을까?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안 나눠먹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내가 먹는 걸 남에게 나눠주지 않는 성격이걸랑.

그래도 과수원하는 태환언니가 나 먹으라고 준 사과즙을 부엌에 두고는 냉장고 과일칸에 넣을까? 현철이에게 줄까 한참을 고민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고민끝에 현철이에게 전화를 걸어 마실래? 물었더니 냉큼 엉 하고 대답을 하는 현철이를 외면할 수가 없어서 소성리로 올려준 적도 있었다. 

좀 유치하네.  

슬픔이 길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일이면 발인을 하고, 현철이는 성주사드기지 바로 아래 진밭에 뿌려질 예정이란다. 우리는 헤어지지 않는거지. 늘 진밭에서 만나게 될테니까. 슬픔이 오래가지 않았으면 좋겠네.      

수요집회를 끝내고 참새방앗간으로 달려갔다. 지난 월요일 날 들깨를 4말 받아서 이고지고 참새방앗간에 맡겼다. 모사철에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는 참새아저씨는 기름을 짤 시간이 없다고 툴툴 거렸지만, 나는 밀린 예약을 처리해야할 판이라서 수요일까지는 무조건 짜달라고 부탁했다. 참새아저씨가 기름은 우리돈 벌이도 안되는데 하자, 옆에 듣고 있던 방앗간 사장님이 

“우리 참새방앗간 전국에 알려지자나. 그럼 돈 많이 버는 거지. 소성리평화장터 덕분에 참새방앗간 모르는 사람 없을거 아니요? 이 들기름이 전국에 여기저기 다 나간다는데” 하는거다. 

순간 내가 뜨끔해졌다. 

아니 참새방앗간이 전국에 알려질 리도 없지만, 알려진다고 해도 참새방앗간으로 떡주문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뭘 알려져여? 하면서 나는 말끝을 흐렸다. 

참새아저씨와 방앗간사장님은 부부이고, 소성리 주민이다. 소성리가 고향이고, 소성리에 논밭이 있다. 연대자들이 머물 수 있도록 집을 내주셨고, 소성리 주민으로서 사드반대활동에 열렬히 참여하시는 분들이다. 소성리평화장터가 돈도 안되는 장사한다고 여기저기 주문받아서 택배보내고 하니까 늘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다. 무엇보다 사드반대하는 연대자들이 주문한 물품이라서 더욱 신경 쓰고 알뜰살뜰하게 챙겨주신다. 

나는 들기름병에 가득 넣지 말라고 해도 참새아저씨는 무슨 장화로 꾹꾹 밟아 담듯이 가득 채워주신다. 350ml 유리병에 비해서 플라스틱 병이 더 작아 보인다고 하신다. 내눈에는 유리병이 더 작은 거 같은데 말이다.  

참새방앗간은 워낙 깔끔하고 철저하게 일을 해내는 가게라서 손님이 늘 붐빈다. 일이 많아 밀린다. 내가 소성리평화장터 하면서 참새아저씨 말마따나 돈을 벌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귀찮게 하는 게 더 많을거다. 신경만 쓰이고 말이다. 돈벌이 안 되도 부대껴 가면서 함께 일을 해나가는 게 좋은 거 같다. 

괜히 소성리가 잊혀지지 않을 거 같아서 말이다. 

현철이가 떠난 자리는 현철이 덩치 만큼 클테고, 그 자리를 채우려면 우리는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 할테지. 

「열매의 글쓰기 2018년11월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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