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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Nov 21. 2018

작두콩차를 마시며

작두콩차     

현철이가 떠나기 전 마지막 소성리 수요집회에서 박형선교무님이 내게 작두콩차를 한봉다리 주셨다. 뜨거운 물에 우려마시라고 했고, 비염이나 축농증에 효과 있어서 인기 짱이라는 상업적인 멘트를 날리는 순간 옆에서 듣고 있던 현철이가 “내가 먹어야겠네, 나 비염 심한데” 하는거다. 작두콩차 봉다리는 내게로 와서 현철이에게 전해졌다. 내가 받은 선물이지만, 필요한 사람이 현철이기도 했고, 또 내가 좋아하는 음료가 아니다보니 선뜻 내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작두콩차 봉다리를 들고 룰루난나 회관으로 들어가서는 물을 끓여 나온다고 하더니, 어느새 집회는 마쳤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사라졌다. 테이블 위에 작두콩차가 뜯긴 채 그대로 올려져있었다. 이 자슥 봐라.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현철이한테 전화를 걸어 잔소리 아닌 목소리로 “작두콩차는 왜 안 챙겼어?” 하니 “기지 앞으로 올라간다고 놔두고 갔어요” 하는거다. 천주교상황실에 넣어둘테니 꼭 챙겨 마시라고 신신당부하고는 넣어두었다. 

현철이의 갑작스런 죽음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친하던 친하지 않던, 말을 한 두 번 쯤 섞었던 안 섞었던, 소성리에서 매주 한 두 번은 얼굴을 마주했었을 모든 이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현철이는 급하게 떠나버렸다. 

마지막이 될 거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그날 작두콩차를 선선히 내어준 건 참 잘한 일이라고 두고두고 스스로 위안 삼았다. 그러나 여전히 후회스러운 일은 한 두가지 생각이 난다. 

우리 단체티와 후드집업 제작할 때, 반팔티 제작할 때, 5XL 사이즈가 없어서 유일하게 옷을 입지 못했던 현철이, 대형티셔츠 하나 장만해줘야지 하는 마음만 먹고는 구하지 않았다. 

서문시장의 도매사장님도 대형사이즈가 없다고 해서 발로 뛰어야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생각만 하다가 지나치고 말았다. 남들 다 입은 뚜벅이 티셔츠와 후드집업을 입지는 못해도, 자신을 위해서 신경 쓰고 애쓰는 사람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현철이 마음이 섭섭했을까봐 걱정도 된다. 내게는 후회로 남는다. 

그러고 보면 현철이가 입을 롱패딩 사이즈가 없어서 강교무님이 미국에서 직수입한 털패딩도 현철이에게 작아서 내가 입었다. 내가 무척 아낀 패딩인데, 어디갔는지 찾아도 안보인다. 오늘  이 글을 쓰게 된건 털패딩을 찾다가 안 보여서 더 생각이 난다. 

지난 일요일 소성리주민 소야훈님과 찬수선배와 소성리평화지킴이 들과 함께 소성저수지를 한바뀌 돌았다. 현철이 뼈가루를 아주 조금 소성저수지 못뚝 아래로 뿌려주었다고 한다. 저수지 못뚝에서 소성리 마을이 다 내려다보인다. 찬수선배가 소성저수지 위로 날아다니는 새는 현철이란다. 현철이가 저수지로 와서 물질하는 물고기 잡아먹고 배부르면 못 위에서 마을까지, 달마산위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면서 소성리를 지켜보고 있을거니까 나쁜 마음 먹지 말고, 사드뽑는데 열심히 하자고 한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성리 하늘 위로 마음껏 날아다닐 현철이를 상상하니 우습기도 하고, 갑자기 현철이가 부러웠다. 배고프면 저수지에서 노니는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드를 몰고온 미군이 마을길을 다니는 것도 감시하고, 할매들 들일 나갈 때 곁에서 지켜봐주고, 달마산 위까지 자유롭게 날아다닐 현철이가 우리 곁에 늘 함께 할거라고 상상하니 든든하다.  

우리는 소성저수지로 걷고, 성주사드기지의 철조망을 싸인 산길을 걸을거다. 달마산 위로 올라서 사드발사대를 내려다볼거다. 현철이가 날아다니는 길을 우리는 걸어 다녀야겠다. 

먼저 가신 용각어른을 만났을까? 용각어른 모시고 다니면 더 든든할거 같은데, 설마 용각어른이 고향인 소성리를 내버려두지는 않겠지. 

작두콩차를 마셨다. 팔팔 끓인 물에 작두콩차 5조각을 넣었더니 서서히 붉은 갈빛으로 변한다. 색이 진한만큼 많이 우려나온 것이렷다. 구수한 작두콩차를 마실 때마다 현철이가 기억날거 같다. 

섭섭한 일 있었걸랑 다 잊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너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껏 날아가거라. 

현철아. 이제 웃으면서 너를 떠나보내주마. 

네가 기억날 때는 웃으면서 이야기 할 날이 더 많을거다.  

「열매의 글쓰기 2018년 11월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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