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비정규직!!
우리는 소수로 남겨지고 싶지 않다.
#1 공장 출근
삶이 보이는 창 109호 / 차헌호. 초희(공동작업)
#1 공장 출근
정규직으로 10년을 다닌 공장이 문을 닫았다. 마지막까지 고용의 책임을 요구하며 싸웠다. 결국 투쟁은 패배했고, 감옥에 다녀왔다.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당장은 전에 다녔던 공장에서 노조활동 경력에 구속 경력까지 가고 싶은 곳에 취직을 할 수가 없었다. 갈 수 있는 곳도 없었다. 중장비 자격증이라도 따야겠다는 생각에 학원에 등록을 하고 학원장에게 취업을 부탁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학원을 다녔다. 학원에서 벼슬 한자리 맡아서 남들보다 일찍 등교하고 남들보다 늦게 하교하면서 청소며 허드렛일을 거들었다. 학원장이 잘 봐주었는지 자격증을 따자마자 취직자리를 바로 알선해주었다. 구미에선 꽤나 큰 대기업의 하청이었는데 주간 근무에 월급도 꽤 좋은 조건이었다. 정규직이 대부분이었고, 나 같은 하청 비정규직은 소수였다. 2년 동안 근무했다.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될 바에야 비정규직이 많은 대공장을 다시 알아보기로 했다.
2009년 9월 어느 화창한 가을 날로 기억한다. 교차로 구직광고를 보고 아사히글라스에서 사원 모집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면접을 봤다. 공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한번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사히글라스는 1천 명이 넘는 대공장이었다. 옛날 어른들 말씀에 “머슴을 살아도 부잣집 머슴을 살아라”라고 했듯이 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로 들어가게 되면 이곳에서 노조도 만들고 평생 일하면서 먹고살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사히글라스 경비실에서 면접을 봤다. 하청업체 관리자가 나와서 근무 형태가 어떤지 간단히 설명했다.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눈길이 경비실을 오가는 직원들에게 쏠렸다.
며칠 뒤에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다. 목에 걸고 다녀야 하는 사원증을 받았는데 출입증이라고 찍혀있었다. 공장 안에 자가용이 들어갈 수 있도록 허용하는 차량용 스티커도 받았다. 정규직은 파란색, 하청은 노란색이었다. 왠지 노란색이 가볍게 느껴졌다.
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로 출근을 했다. 인정받기 위해서 정말 쉬는 날 외에는 휴가 한번 쓰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일도 잘했는지 회사에서 주는 상도 몇 개나 받았고 나름 현장에서 반장 직책으로 진급도 했다. 업무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장의 타 부서 동료가 잠시 잠깐 졸다가 하청 관리자에게 들켰다. 하청 관리자는 그에게 징벌 조끼를 입으라고 명령했고 그는 징벌 조끼 입는 것을 거부하고 회사를 나가버렸다. 관리자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도 모두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충격이었다. 사람을 내쫓는 방식이 너무나 치졸했고, 직장을 그만두고 나가는 사람을 붙잡는 동료 하나 없는 것도 놀라웠다. 징벌 조끼에 대한 현장 사람들의 불만이 가득했다. 징계 절차를 거칠 것도 없이 원청 관리자나 하청 관리자가 현장 노동자를 벌세우는 방법이다. 현장을 점검하던 원청 관리자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태도나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청 관리자에게 그를 지목하고 하청 관리자는 곧바로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동안 징벌 조끼를 입힌다.
아사히글라스가 하청노동자 벌세우는 징벌 조끼는 정규직 노동자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정규직 노동자의 연줄로 취업했거나 친하게 지내는 튼튼한 동아줄을 쥐고 있는 하청노동자는 징벌 조끼를 피할 수 있었다. 현대판 주홍글씨는 노동자의 자존감을 쓰러뜨린다.
사람들이 공장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규직이 될 희망이나 기대 따위가 없는 공장은 언제든 떠나갈 곳이지 정착해서 평생을 의지할 곳은 아니었다. 더 나은 직장을 찾거나, 장사를 하거나 언젠가는 떠나갈 곳, 잠시 머물 곳에 불과한 공장이라 큰 애착심도 없다. 일도 그렇지만 사람 관계도 그랬다. 직장 동료랍시고 애틋할 시간도 관계를 맺을 일도 없다. 하루아침에 사람이 떠나가도 이런 공장 더 다닐 필요 없다는 생각이 반, 붙잡아봐야 공장에서 봐주지 않는다는 게 반이었을 거다.
<회사는 일방적으로 규정을 정해 놓고 그것이 마치 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시를 한다. 경위서를 쓸 일도 아닌 것을 조끼를 입힌다. 조끼 입히기 같은 처벌은 어느 사업장에서도 볼 수 없는 짓이다. 이것은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는 행위다. 인권 침해 사례를 보면 직장 상사가 욕설이나 모욕적인 언사를 반복하는 행위, CCTV를 통해서 직원을 감시하는 행위,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직원을 사찰하는 행위 등이 있다. 조끼 입히기 또한 이런 사례와 동일하다. 이런 쓰레기 같은 관리 방식은 박살내야 한다. 우리는 인간답게 일할 권리와 차별받지 않은 권리가 있다. 단결의 힘으로 비인간적인 대우에 맞서서 싸우자.>
-차헌호 씨의 SNS 토막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