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자들과 완성되지 못한 공간

by 시야

15개의 별고을 촛불이야기

이글은 성주의 글쓰기 모임인 ‘다정(多情)’ 회원들이 성주의 사드배치 반대투쟁을 직접 체험하며 느낀 소감을 쓴 것입니다. 11월 21일 현재 성주의 촛불은 132일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에 시작된 촛불의 광장에는 이제 난로가 등장했습니다. 난로 주위에는 할매들의 삼삼오오 모여, 시린 발들을 녹이며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글쓰기 실력은 부족하지만 마음을 담았습니다.


쫓겨난 자들과 완성되지 못하는 공간

류동인


느끼지는 못하지만 ‘쫓겨남’이란 어쩌면 항상적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엔 그것이 동짓달 덥히지 않은 세숫물처럼 시리게 와 닿았다. 싸움이 시작된 지 두어 달이 지나갈 무렵 지자체 대표들과의 연합이 깨어졌다. ‘주권적 신체’가 된 민중의 집회로 정지되어 있던 지방정부의 집행권은 서서히 작동되었고, 그들에게는 ‘혐오의 대상’이던 민중의 집회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공유재산권’, ‘행정 대집행’ 같은 법들이 예리하게 벼려진 칼로 다가왔다.

쫓겨나기 싫었다. 하지만 혁명의 점령군이 아니었다. 그렇게 ‘평화나비광장’이라 부르던 군청 마당에서 밀려난 채 거리의 인도에 길게 늘어서야만 하였다. 감각된 쫓겨남, 무감해진 내쳐짐은 애써 외면되었을 뿐 새로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농촌이란 산업화에서 이미 내쳐진 공간이었었다. 이곳은 칼을 휘두르지 않고 돌봄을 포기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실존이 위협되는 곳이다. 그러기에 지자체의 지원 사업과 보조금 중단에 대한 협박을 통해 많은 이들이 광장을 떠나갔거나 다가오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거린다.

비극이지만 성산에 사드를 배치한다고 하던 결정은 사라졌거나 무뎌진 감각을 깨우는 자극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피할 수 없는 ‘차가운 현실’에 놓이도록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냉혹함이 두려워 비켜서버린 자들도 있다. ‘제3부지’란 저항할 수 없었던 자들이 위안 삼으며 피해 간 자기위로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내쳐지기 때문에 매달리고 매달리기 때문에 내쳐진다.” 그들은 국가의 내쳐짐을 ‘제3부지’를 통해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위안도 마음의 영역에서 이루어질 뿐 현실은 아닌 것이다.

쫓겨남은 고통과 슬픔의 사건이지만 거기에는 쾌락과 기쁨의 역설이 잠재되어 있다. 쫓겨난 이들은 ‘법적 권리를 잃어버린 단순한 생명체’가 되어버린다. 고대 로마에서 죽여도 처벌받지 않던 ‘벌거벗은 인간’들처럼 성주 주민들은 전쟁의 위험과 안전의 위협에 몰려도 상관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법의 보호로부터 내쳐졌다고 법의 통제가 사라진 것은 아닌 비극의 아이러니만 남게 된 것이다. 이런 분리를 통해 마주한 안보의 영역에 속한 안전한 이들이 만들어지며 국가의 통치는 작동된다. 안보의 영역에 속한 이들 또한 안전의 실효성과는 상관이 없이 생성된다. 그것은 일종의 안전하다는 신앙에 근거할 뿐이다.

쫓겨남에 대한 부정은 두 갈래의 길을 노정한다. 하나는 매달리기 위해 쫓겨남을 부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친 자와의 단절을 위해 부정하는 길이다. 후자는 ‘다이쇼 퇴직동맹’처럼 쫓겨남의 긍정을 통해 추방의 구조가 부정되는 방법이다. 긍정을 통한 부정은 역설적으로 추방된 자들에게 자유로움을 선물한다. 억압의 구조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또한 ‘자아의 구조화된 무의식’으로 부터의 해방이기도 하다.

자유로움과 해방은 응축된 ‘주체’를 만들어 내었다. 그들이 머무는 장소가 바로 ‘평화나비광장’이 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 반하는 가치를 생성하는 장소’,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모든 장소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공간’이 바로 그곳인 것이다. 완성되지 못했던 푸코의 ‘헤테로토피아’는 바로 이런 주체들의 응축과 해체 속에서 존재하는 공간일 것이다. 그의 ‘미완’은 당연했다. 그것은 개념으로 완성되는 공간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양자들의 흐름처럼 생성과 소멸의 시간과 장소를 알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추방한 세상을 부정하고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실재하는 장소, ‘평화나비광장-되기’가 매일 성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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