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살의

by 한도담

오후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해진이 식탁에 간단한 상차림을 내놓고 지은의 방문 앞에 서서 그녀를 부르려다 멈칫했다.

아까 들어갈 때는 제인이었지만 지금도 제인일 것이란 보장이 없었으니까.

섣불리 ‘제인’이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

해진은 고민하던 끝에 언제나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지은아.”

대답이 없었다.

“지은아?”

한 번 더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는 건 같았다.

지은이 아닌 걸까?

해진이 조심스레 러디도 불러보았다가 제인도 불러보았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혹시, 자신이 아직 파악하지 못한 그 인격이 다시 나온 것인가 싶어 ‘저기요’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 역시도 안에서 어떠한 반응을 끌어내진 못했다.

여기서 해진이 생각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였다.

자고 있거나 없거나.

불안감이 엄습한 해진은 다급히 문고리를 돌렸지만 일정 부분까지만 돌아가고 그 이상은 돌아가지 않았다.

안에서 문을 잠근 것이었다.

해진은 거실 TV 아래 있는 서랍에서 비상 열쇠를 꺼냈고 문고리 가운데 찔러 넣었다.

철컥─.

문이 열렸고 해진이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에도, 화장대 앞이나 책상 앞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는?

없었다.

창문이 열려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부엌이 지은의 방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었기에 그녀가 방문을 열고 현관으로 나갔다면 해진이 몰랐을 리가 없었다.

분명 이 방에 있다.

해진이 전등을 켜보았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봤던 것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때 탁! 하는 소리가 났다.

작은 소리였지만 그 안이 워낙 조용했기에 선명히 들렸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곳을 찾아야 할 때였다.

책상 아래, 침대 밑 그리고 살짝 열려 있는 장롱 안.

끼이익─.

소리와 함께 장롱문을 열었고 옷들 사이에 손을 넣고 갈랐다.

해진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조심스레 지은을 안아 들어 침대에 눕혔다.

해진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지은을 깨웠다.

일어나서 그를 보며 ‘아줌마’라 불렀으니, 지은이 확실했다.

식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식사하는 둘.

그 사이엔 묘한 공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공기는 해진의 주변에만 밀집되어 있었다.

이를 눈치채지 못할 지은이었던가.

무심한 듯 왜 그러냐고 물었다.

해진은 ‘음….’하고 뜸을 들이다 겨우 입을 열었다.

“오늘 어땠어?”

해진의 말에 잊고 있던 일이 생각난 듯 소리 나게 숟가락을 식탁에 놨다.

해진이 깜짝 놀라 흠칫했다.

“러디사건이 미제로 넘어갔어! 아줌마,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냐? 아무리 단서가 없다고 해도 사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진짜 단서가 없어서야?”

“케, 켁!”

“아, 그리고 나 언제 집에 들어왔어? 블랙아웃 될 만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흔히 필름이 끊겼다고 하는 걸 블랙아웃이라고 하는데 이는 술이 대뇌에 영향을 미쳐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으로…….

뭐, 아무튼.

‘김지은’이라는 이 몸의 원래 주인은 객식구가 되어버린 다른 이들이 나와 있는 동안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진이 매번 요리조리 잘 둘러댔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블랙아웃을 많이 썼었다.

증인으로 지훈을 많이 이용, 했다기보다 지훈도 가담했고.

이번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서에 갔던 것까지가 기억의 끝이라고 한다면.

해진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그의 핸드폰이 요란스레 울렸다.

해진은 전화가 왔다며 제법 능청스럽게 자리를 벗어났다.

핸드폰이 알리는 발신자명은 ‘공씨’.

누가 친구 아니랄까 봐 저장해놓은 것도 똑같았다.

해진이 전화를 받아 신호음이 끊기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가는 태경.

“야, 너 우리 팀 신입이랑 무슨 사이야?!”

“누구. 너희 팀 신입 둘이잖아.”

“아씨! 알면서 묻지 마! 김지은 말이야, 김지은! 너랑 가족이라고 하던데! 너 취향이 그쪽이야? 아니면 너 사고 쳤어?!”

“무슨 개소리야. 친구라는 새끼가 생각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해진이 혀를 차며 비아냥대자, 태경은 그것 말고는 결론이 안 나지 않냐며 버럭 화를 냈다.

해진은 그가 한심하단 투로 말했다.

“지은이가 나랑 가족이라고 했다며. 그럼 그 이상은 알 필요 없는 거 아니야? 거기에 굳이 내가 디테일을 더해줘야 할 필요가 있어? 호구조사 하냐? 그냥 가족이라고.”

해진은 말을 더 얹었다.

“너 지은이 잡고 캐물으면 뒤진다. 술 작작 마시고. 끊어.”

태경이 뒤에 빽 소리를 지르면서 뭐라 하는 게 들려오는 듯했지만, 해진은 가차 없이 통화를 종료했다.

해진은 식탁으로 가 제자리에 앉았다.

“누구야?”

지은의 목소리에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단지 이런 느낌만 가지고 아무것도 모르는 지은에게 자신이 이상하다는 것에 대한 의심의 여지를 주어선 안 됐다.

“공씨.”

해진은 간단히 대답을 해주고 그 뒤 그녀가 하는 말만 들으며 간간이 고개만 끄덕였다.

해진이 마지막 밥 한술을 떠서 입에 넣었을 때 식탁 유리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은은 수저를 웬만하면 식탁에 놓지 않았다.

숟가락은 국에 담가 두었고 젓가락은 손에 쥐고 놓지 않았다.

소리 뒤에 이은 말이 그가 느꼈던 이질감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결론적으로 내 사건을 빼돌리셨다? 너, 날 잡아넣을 생각이 아예 없는 거지?”

빼돌렸다.

잡아넣다.

내 사건.

러디였다.

지은에게 가장 해가 되고 이 나라 질서에도 해가 되는.

하지만 지은에게 있어 자신이 없어선 안 될 것이라 주장하는.

“이렇게 보는 건 세 번째 이후로 처음인가? 반갑지, 박해진 프로파일러님?”

비아냥거리는 저 말투는 여전했다.

러디는 반응이 없는 해진이 심기에 거슬렸는지 눈살을 잠시 찌푸렸다.

이내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며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이는 해진의 반응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해진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바로 러디, 자신이라는 걸 그 누구보다 러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눈높이가 변해 러디가 약간 삐딱한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보는 세상처럼.

“미제로 넘어갔어. 그 사건은 묻어. 그 이상은 안 바라. 경찰이 된 지은이의 숨통을 더 이상 죄이지 말란 말이야.”

애원하는 듯한 해진의 목소리. 하지만 러디는 그를 비웃었다.

“얘 숨통이 아니라 네 숨통을 죄이는 거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애 숨통을 어떻게 죄여? 안 그래? 아, 그렇게 노려보지 마. 아직은 간 보는 중이니까.”

러디가 여유롭게 다시 자리에 앉았고 해진도 그녀를 위에서 태울 듯 노려보다 자리에 앉았다.

러디는 지은에게 있어 가장 가까운 존재임과 동시에 가장 이질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은가.

RUDDY THE RIPPER라는 쪽지를 남긴 연쇄살인마가 그를 쫓은 강력계 형사와 한 몸인 것이었으니까.

러디가 물었다.

“넌 나에 대해 언제까지 비밀로 할 생각이지?”

“될 수 있으면 평생. 그러니까 제발 아무 짓도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러디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다리를 꼬았다.

“이번엔 뭐라고 둘러댈 생각이셨나?”

러디는 뭔가 생각난 듯 픽 웃었다.

“처음에 뭐라 그랬더라? 술을 마셨다고? 학생한테 술이 가당키나 해? 요즘 애들은 술, 담배를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하는 것 같긴 하다만 넌 경찰이 돼 가지고. 옆에 붙은 그놈이랑 죽이 척척 맞더라?”

지은에게 했던 말인데.

아까도 그렇고….

저것을 어떻게 러디가 알고 있는 것일까?

배제할 수 없었던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해진은 순간적인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러디는 본격적으로 그를 비웃기 시작했다.

해진은 표정을 싸늘하게 굳히며 물었다.

“지은이가 네 존재를 알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날 없애려 들겠지? 하지만 너 또한 편하게 넘어갈 순 없을 거야.”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해진에게 답을 주었다.

“10년 동안 함묵하고 있었던 이유를 물을 텐데. 넌 뭐라고 답할 생각이지?”

자신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만 잘근잘근 씹어대는 해진의 모습이 웃겼는지 러디는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 네가 그런 표정 지을 때가 제일 웃기더라!”

러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은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기 직전, 얼굴만 빼꼼 내밀어 해진이 아직 알아내지 못했던 마지막 이의 이름을 던져주었다.

“김지성. 얘 동생이라고 하던데, 남동생.”

러디답지 않게 친절한 부연 설명까지 더해서.

지은의 탈을 잠시 덮어쓴 것 같던 러디가 방으로 완전히 들어가 버리고 혼자가 되어버린 해진은 한동안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생각이 많은 얼굴이었다.

해진은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 뜨고 러디의 말 한마디로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머릿속을 정리하듯 빈 그릇을 차곡차곡 쌓고 싱크대로 향했다.

해진은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했다. 그의 얼굴이 벌게졌다.

언제나처럼 삼키는 침이 바늘인 듯 목을 따갑게 했다.

짧은 시간에 극도로 쌓여버린 감정이 서재에 들어가 문을 닫음과 동시에 터져버리고 말았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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