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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May 08. 2017

넌 모범생이었니?

시간표없는 삶을 꿈꾸며

식사를 하던 중 선배가 물었다.
“넌 모범생이었지?”

네 또는 아니오라고 대답하면 될 것을 괜히 5초 이상 질질 끌었다.


그렇게 내 대답은
“어 그게..그러니까요…네, 모범생이었죠”

고등학생때까지 난 진짜 모범생이었다.  그 흔한 지각 한번 하지 않았다. 엄마는 수능치는 그날까지 스스로 일어나는 부지런한 딸을 자랑스러워했다. 모의고사 치는 날마다 치킨시켜달라고 조르는거 말곤 비싼 물건 사달란 소리도 잘 못했다. 유일한 일탈은 기말고사 치고 난 이후에 열댓권 빌려오는 만화책과 친구들과 노래방가는 일. 간혹 술을 마시자 권한 친구도 있었지만 수학여행때 말곤 입에 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런 유혹을 거절하고 금욕적(?)인 삶을 스스로 영위 할 줄 아는 내가 무척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연애에 대한 호기심은 버리지 못했나보다. 반팅이란걸 나가서 남자애랑 연락처를 주고받았고 그 아이랑 영화도 봤다. 싸이월드 일촌명은 뭘로 해야할지 필요 이상으로 고민했다. 진전없는 연락을 이어가다 내가 그 아이 어장 속 물고기였단 걸 알게 된 날 잠을 뒤척이기도 했다.  너무나도 전형적인 짝사랑 이야기지만 어색한 점이 하나있다. 이 아이와 첫 데이트를 하던 날 굳이 엄마에게 실토했다는 것. 여고에 다니며 성적도 상위권이었던 내가 설레는 마음을 안고 남자아이와 서면 길바닥을 누비는게 스스로 부끄러웠나보다. 난 ‘굳이’ 엄마에게 데이트 사실을 알리고, 일탈 면죄부를 받기로 결심했던 것 같다. 되돌아보면 ‘일탈’이라는 말과 발톱의 때만큼도 관련없는 만남이었는데. 그땐 그랬다. 난 ‘모범생’의 표본인, 부모님 한번 속이지 않는 그런 내 모습이 좋았다.

대학 때문에 부산집을 떠나고 엄마 감시망에 벗어 나서야 내 참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감수성이 폭발하는 날엔 밤새 노래를 듣거나 영화를 보다가 새벽에 잠들었고 다음날 수업에 지각하기 일쑤였다. 이성과 데이트를 할때도 엄마에게 일일이 보고하지 않았다. 처음엔 비플러스로 수렴하는 성적과 내 안의 ‘모범생’ 간의 괴리감 때문에 힘들었다. 나는 공부도 보통으로하고 이성에게 특별히 매력도 없는 그냥 그런 사람으로 늙어 죽는게 아닌가 두려웠다. 그래서 꾸준히 누군가에게 사랑받거나 사랑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부끄러운 실수를 저지른 적도 있고 상처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착한 딸’로 굳을 뻔한 역할 놀이로부터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스페인에서 보낸 6개월과 언론고시라는걸 준비했던게 전환점이 됐던 것 같다. 2011년 마드리드를 기점으로 혼자 혹은 친구와 유럽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내 안의 소심함, 금기의 벽을 깨기 위해 아둥바둥 움직였다. 한국에선 꼭 지켜야하는 룰을 무시해도 되는 곳, 한국에선 꼭 숨겨야 하는 것을 드러내도 되는 곳들을 누비며 내가 얼마나 필요 이상으로 조심스럽게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언론고시는 나를 나쁜딸로 만들 수 밖에 없는 아주 못된(!) 녀석이었다. 부모님은 매 전형을 거칠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을게다. PD, 광고회사 AE, 에디터, 기자의 관문을 목전에 두고 고배를 마실때마다 속이 쓰렸을게다. 한번은 면접을 앞두고 아버지와 대판 싸우기도 했다. 아버지가 내게 그토록 소리친적은 처음이었다. 엄마는 ‘네가 고등학교때 만큼만 독해져도 진작에 잘 풀렸을거다’ 혹은 ‘네 이름 때문에 지금 출세 못하는거 아니냐’는 가시돋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상처받거나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흘리지만 내 마음은 한결같다.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좋다. 불현듯 피어오르는 찌질한 감정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게으름을 죄악시 하지 않는.
 
이 기사 속에서 꿀밤을 맞고 울었다는 소녀의 사연에 피식 웃다가도 괜히 마음 한켠이 시리다. 이 소녀가 미친듯이 부럽다. 자신이 한 일이 결코 지탄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린 나이에 잘 알고있는게 질투가 난다. 눈치보고 사느라 너무 돌아온 나는 결국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사회적 나이’보다 2~3년 뒤쳐진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의 삶이 즐겁고 행복하지만 때때로 초조하게 느껴지는건 모범생 증후군의 그림자 때문일거다. 그래서 앞으로 더욱 사랑하고, 나를 보듬어주며 살아갈 계획이다. 그 누구에게도 면죄부를 빌지 않으며.

*참고기사

http://m.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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