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손 Oct 03. 2017

홍대 카페의 파수꾼

우울의 전염


우중충한 날씨에 짱박혀 있는게 어쩐지 우울해 홍대로 나왔다. 기억을 더듬어 커피가 맛있던 카페를 찾았다. 대로에 있는 곳이 아니라 손님은 나와 한 커플, 두 명의 여자 분 뿐이었다. 나는 두 여자들과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가지고 온 책을 펼쳐 홀든과 가상의 대화를 시도하려는데 ‘곧 서른’이란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아 저 두 사람 나랑 비슷한 나이구나. 대화 내용은 더 흥미롭다. 20대에 만났던 남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인물 품평이 아니라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남은 것, 잃은 것들을 논한다. 수위 높고 은밀한 소재도 테이블에 올랐다. 앞으론 이래야겠다는 다짐도 오간다. 나는 홀든에게 집중하는 척 그들의 대화를 훔쳐들었다. 어쩐지 나와 내 친구들을 보는 것 같아 낯선 이에게 심리적 친밀함을 느꼈다.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거, 사실 크게 와 닿지도 않고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나를 비롯해 주변 상당수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시기라는 건 알겠다. 결혼했거나 결혼을 약속한다. 혹자는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줄 알았던 고유 명사들과 작별을 고했다. 누군가는 진급하거나 이직했다. 혹은 주변의 기대나 경제적 이유로 놓고 있던 학구열을 다시 불태운다. 불확실함을 떨쳐 내거나 불확실함과 마주하거나.

나의 경우는 후자인 것 같다. 준비 없이 갑자기 관성의 궤도에서 벗어나니 미친 듯 불안하다. 수년 전 친구가 내 장점으로 기복없는 성격을 꼽았는데 그게 무색할 정도로 요새는 하루에도 몇 번 롤러코스터를 탄다. ‘이것이 삶의 다이내믹스!!’라며 허세부릴 힘도 동이 났다. 내 능력과 역량에 취할 시기라는데 그런 것보다 당장 힘이 되는 건 대화나 체온이다. 의존적이고 약해빠진 나를 마주하는 건 고역이지만 이것마저 인정하지 않으면 마음이 엉망진창이 될 것 같다.

그녀들이 가고 나서 책에 다시 집중했다. 시종일관 우울하다고 투덜거리는 홀든의 독백에 기분이 더 칙칙해져 곧 책을 덮었다. 나를 보는 주변 사람들도 이런 기분일까? 으악. 그렇다고 생각하니 또 울적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졸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