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카페의 파수꾼

우울의 전염

by 작은손


우중충한 날씨에 짱박혀 있는게 어쩐지 우울해 홍대로 나왔다. 기억을 더듬어 커피가 맛있던 카페를 찾았다. 대로에 있는 곳이 아니라 손님은 나와 한 커플, 두 명의 여자 분 뿐이었다. 나는 두 여자들과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가지고 온 책을 펼쳐 홀든과 가상의 대화를 시도하려는데 ‘곧 서른’이란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아 저 두 사람 나랑 비슷한 나이구나. 대화 내용은 더 흥미롭다. 20대에 만났던 남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인물 품평이 아니라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남은 것, 잃은 것들을 논한다. 수위 높고 은밀한 소재도 테이블에 올랐다. 앞으론 이래야겠다는 다짐도 오간다. 나는 홀든에게 집중하는 척 그들의 대화를 훔쳐들었다. 어쩐지 나와 내 친구들을 보는 것 같아 낯선 이에게 심리적 친밀함을 느꼈다.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거, 사실 크게 와 닿지도 않고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나를 비롯해 주변 상당수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시기라는 건 알겠다. 결혼했거나 결혼을 약속한다. 혹자는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줄 알았던 고유 명사들과 작별을 고했다. 누군가는 진급하거나 이직했다. 혹은 주변의 기대나 경제적 이유로 놓고 있던 학구열을 다시 불태운다. 불확실함을 떨쳐 내거나 불확실함과 마주하거나.

나의 경우는 후자인 것 같다. 준비 없이 갑자기 관성의 궤도에서 벗어나니 미친 듯 불안하다. 수년 전 친구가 내 장점으로 기복없는 성격을 꼽았는데 그게 무색할 정도로 요새는 하루에도 몇 번 롤러코스터를 탄다. ‘이것이 삶의 다이내믹스!!’라며 허세부릴 힘도 동이 났다. 내 능력과 역량에 취할 시기라는데 그런 것보다 당장 힘이 되는 건 대화나 체온이다. 의존적이고 약해빠진 나를 마주하는 건 고역이지만 이것마저 인정하지 않으면 마음이 엉망진창이 될 것 같다.

그녀들이 가고 나서 책에 다시 집중했다. 시종일관 우울하다고 투덜거리는 홀든의 독백에 기분이 더 칙칙해져 곧 책을 덮었다. 나를 보는 주변 사람들도 이런 기분일까? 으악. 그렇다고 생각하니 또 울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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