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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 Apr 19. 2024

인생의 마지막 사춘기, 20대 초반

개화를 기다리며

 상담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한 건 3월이었다. 매년 반복되는 똑같은 패턴에 스스로 변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서 평소와는 다른 선택을 한 거다. 올해는 나답지 않은 선택의 연속이지만, 그 선택의 결과들로 나를 찾아가는 중이라는 점이 참 오묘하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상담을 받으면서 내가 많이 무너져 있고, 그 상태를 몇 년간 방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 사실을 전부터 알았을지도 모른다. 외면하고 싶었을 뿐이다. 검사 결과는 사람이 아니라 성능이 별로인 로봇을 수치화한 것 같았다. 책임감 지수가 다른 것들보다 높게 나왔으나 그것조차도 평균치에 비하면 낮았다. 이런 식으로 모든 역량뿐만 아니라 흥미 지수도 백분율의 한자리 수에 수렴했다. 어떤 재미로 삶을 지속했나 싶었다.

 난 당장의 할 일을 미루면서 하는 고민만 수천 개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계절을 탔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명언을 반대로 하면 내 삶이 될 것이다. 인생에 끊임없이 권태를 느끼더라도 현실을 살아야 하는데 결국 모든 엔딩이 도피로 끝나는 내 발자취가 지긋지긋했다. 겉과 다르게 완숙하지 못한 아이가 늘 나와 함께했다.

 선생님은 충격에 할 말을 잃은 나에게, 긍정적인 면을 보자면서 이십 대 초반이 인생의 마지막 사춘기라는 말을 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인 만큼 이전에 겪은 사춘기와는 달리 내가 원하는 많은 것들을 나의 힘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도. 매년 애를 썼지만 결국 도돌이표처럼 돌아올 뿐이었던 삶을 이번에는 변화시킬 수 있으려나, 작은 희망을 품었다.

 지금의 나는 중고등학생 시절의 내 하루들이 모여 도출한 결괏값이고, 또 오늘은 내 미래를 결정할 변인들 중 하나일 것이다. 자유롭지만 겁 많고, 욕심 많지만 나태한 내 속성. 자유롭고 용감하며, 욕심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성실한 삶을 통해 욕망을 성취해 나가는 삶은 내가 추구하는 것. 추구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나를 이루었던 것들과 오랫동안 등져야 함을 안다. 그래서 요즘 일상이 자꾸 버겁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안 해도, 뭔가를 열심히 해도 인생이 무겁다니 이상한 일이다. 가장 어려운 건 자기 객관화고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관성을 누르는 일이다.

 그런 와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고, 나를 먹여 살릴 준비를 해야 한다니, 인생은 올랐다 싶으면 추락하고, 다시 오를 때마다 다른 길로 헤매게 된다. 그 과정은 흥미로울 때도 있지만, 지겹고 권태로울 때가 참 많은 것 같다.

 봄이 오면 단단히 닫혀 있던 봉오리가 거짓말처럼 터져 꽃이 여린 속살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여리지만 계절의 만물 중 가장 정교하게 세공된 형태이다. 사람의 마지막 사춘기도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영원히 완전무결해질 수 없는 인간의 속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습을 최선을 다해 다듬어 있는 그대로 세상에 내보이기 위해 겪는 마지막 투쟁의 시절인 것이다. 꽃은 녹음이 짙어지며 하나 둘 진다. 마지막 사춘기가 끝나도 인생에 시련은 있겠지. 하지만 보다 유려하고 능글맞게 넘기는 나를 기대한다. 갓 스물이 된 많은 동료들과 함께, 길고 긴 이 길의 끝이 결국은 개화이길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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