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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 Seoy Oct 23. 2021

[ 8-5 ] 그리고 다시 걷다

다시는 받고 싶지 않아 근전도검사

2/21일요일

어제의 일과는 오전에 두 가지-전기치료, 작업치료를 받고 오후에는 산책시간을 가졌다. 작업치료사는 내 아킬레스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서 스트레칭을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침대 발치에 쿠션을 놔서 발목 뒤 근육을 늘릴까 하고 알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병원에 있는 것만큼 크고 제대로 된 쿠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전 병원처럼 이곳에서도 빌려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인터넷 쇼핑 검색어를 ‘의료용 베개’ 아니면 ‘의료용 사각쿠션’과 같은 단어로 검색했는데 필요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여러 시도 끝에 포기하고 그냥 병원이불을 두껍고 길쭉하게 말아서 발바닥에 덧대었다.


어릴 때부터 항상 열이 많았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병원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측정해보니, 나는 간호사들의 주시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특이 체온 환자가 되어 있었다. 덥지 않으면 36~36.9도, 조금만 후덥지근하면 37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었다. 지난 금요일에 코로나 검사를 받지 않았으면 계속 마음도 몸도 불편했을 뻔했다. 검사 결과가 음성인데도 어제 잠들기 전 체온이 37.2~37.4 여서 엄마도 간호사도 황당해 하면서 드디어 내 체온의 평균수치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높은 편이라고 결론 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몸 전체가 마비풀림으로 인한 미열이 간헐적으로 왔다 간 것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 날씨는 하루 종일 맑고 영상17도다. 불과 며칠 전만해도 영하 9도였는데 일교차가 심해진 것 같다. 병실 난방도 일교차의 영향을 받아 갑자기 날씨가 풀리다가 추워진 날 하루는 손발이 살짝 시려웠던 적이 있었다. 난방은 적절했지만 오늘 저녁은 유난히 병실이 너무 소란스러워서 다른 층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거기에 있다보면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입원환자라는 사실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다보니 언성이 높아지는 사람도 있었고 어린 아이들이 뛰어다니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귀가 따갑도록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들 해졌는지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 조용해졌다.


어제 점심은 떡볶이, 순대, 어묵.

오늘 점심은 햄버거와 감자튀김.


(맙소사) 병원A에는 또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했다. 어제 토요일 기준 201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병원A에서는 내 몸의 회복진도가 지금만큼 빠르지 않았다. 여사님의 힘이 턱없이 부족해서 그리고 낙상방지를 위해서 휠체어를 거의 타지 않았다. (내가 겁이 많은게 아니다 절대로 - 안전제일. 그곳을 떠날 무렵 서너번 정도 타봤다.)

침대생활은 운동다닐 때 말고는 늘 단조롭고 똑같았다. 그나마 즐거웠던 건 겨우 일어나 앉아서 손을 담그고 세수를 하거나 침대에서 발을 씻거나 머리 감기. 아니면 이웃 간병인이 나눠주는 간식을 받아먹고 우리 간식도 조금씩 나눠주는 것… 간병인, 보호자들이 나누는 대화 듣기 등등.


병원B에서 내 몸이 드디어 걷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처음엔 편의점, 그 다음은 강당의 조용한 복도, 전망대로 점점 멀리 진출했다.

며칠 전부터는 휠체어에 엄마가 앉고 대신에 내가 밀면서 걷기를 시도했다.


어제 오전 치료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15분 정도 혼자서 왔다갔다 걸었다. 엄마가 영상으로 촬영해줘서 자세가 어떤 상태로 걷는지를 확인했다.



2/25목요일

지난 월요일부터 걷기가 급격히 발전했다. 아래 그림은 내가 멀리 앞을 보면서 쭉쭉 걷도록 치료사가 인간 지지대 역할을 해주었다. 무기력한 몸을 강제로 걷게 하니까 정말로 걸을 수 있었다. 이전에는 바닥에 내 발을 쳐다보면서 걷느라 앞을 볼 수 없었다.



계단 오르고 내리는 연습 반복하기.

(발판에 한 쪽 발 올리고 발의 위치가 올바른지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2/26금요일

새 학기를 맞이하는 학교처럼 이곳의 몇몇 치료사들은 퇴사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3월 2일부터 새로운 치료사들이 와서 인수인계를 받아 치료해 줄 거라고 한다. 나를 담당하던 치료사 두 명과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즐거운 치료시간이 되려고 먼저 마음의 문을 열었는데 친해지고 나니 퇴사 소식이 아쉬웠다.


오늘의 물리치료는 앉거나 서서 받을 수 있는 간단한 치료들을 위주로 했다. 상체 스트레칭, 손목 근력을 마사지로 풀고 이완 수축을 도왔다. 발목이 좋지 못해서 특히 오른쪽 발목과 뒷꿈치, 아킬레스를 지압했다. 종아리가 항상 뭉쳐 있을 것이기 때문에 공 같은 둥근 물건을 종아리 근육 위로 굴려서 살살 풀어주라고 했다. 손목부터 팔꿈치 쪽에도 공을 굴리는 마사지를 하라고 했다.


근전도 검사


점심을 먹고 2시에 근전도 검사를 두 가지 받았다. 첫 번째 검사방식은 줄이 달린 둥근 스티커 3개를 검사부위에 붙이고 전기를 주입하는 기계를 골고루 갖다 대면서 적으면 한 번, 많으면 네 번을 작동시켰다. 부위마다 아픈 정도가 달랐다. 둥근 스티커는 노랑, 빨강, 검정 전깃줄이 달려있었다. 아픈 부위 중 양팔 안쪽과 무릎 뒤에 여린 피부 쪽 근육이 가장 아팠다.


두번째 검사는 다른 의사 선생이 와서 좀더 전문적이고 어려운 방식으로 하는 것 같았다.

전깃줄이 달린 검정색 무광 침을 형식적으로 또는 대략적으로 정해진 자리마다 꽂고 전기를 넣는데 전기 때문에 아프진 않지만 찔러 넣고 다양하게 여러 각도로 꺼내고 찌르기를 한 부위에서 반복하니까 눈물이 핑 돌기도. 서러워지는 걸 꾹 참고 언제 또 제대로 검사해보겠냐는 생각에 포기하지 못하고 끝까지 검사를 이어갔다.


지금은 내 좌우 팔과 다리에 정체모를 캐릭터가 그려진 작고 둥근 반창고 스물 여덟 개 정도가 붙어 있다. 다시는 절대 받고 싶지 않은 비인간적인 검사였다. 너무 아팠다.



(다음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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