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병원에서의 생활-퇴원날짜
2/15월요일
아침 6시 기상.
엄마가 뜨거운 물을 드립커피 백에 부어 커피 2잔을 만들었다.
내 손에는 아직 뜨거운 물을 들어올릴 힘이 없었다.
커피를 조금 마시다가 내 안에서 신호를 느꼈다. 곧바로 엄마가 들고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얼른 병실 입구에 주차된 내 휠체어를 끌고 와 침대 곁으로 세웠다. 나는 이불삼아 덮고 있던 침대시트를 다리에 둘둘 말은 채 침대에서 내려오고 종종 걸음으로 걸어서 휠체어 앞에서 몸을 돌려 바로 앉았다. 엄마는 짧게 후진했다가 또 얼른 병실의 공동 화장실로 바로 직행했다. 아직은 내 배에는 조절할 힘이 모자라는 모양이었다.
무사히 일을 보려면 할일이 더 있었다. 좌우에 매달린 쇠봉 손잡이를 반드시 잡고 변기에 앉았다. 어깨와 양손의 힘이 거의 다 돌아왔기에 가능했다. 단단히 붙잡고 느리게 앉았다. 갑자기 신호가 오면 참기 어려운데 필요할 때마다 화장실을 바로바로 다닐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창가에 서서 기다리는 엄마랑 내 변 모양에 대해 웃기는 얘기를 하면서 일처리를 했다. 기저귀에 눌 때하고 변기에 눌 때 모양이 달라진다고 (ㅋ)
다시 돌아와보니 아침6시반. 식사가 도착하기 전 아침잠을 깨우기 위해 간식으로 사과를 먹었다. 7시에는 아침식사가 나왔다. 오전 운동 스케줄은 수치료-물리치료(회진)-전기치료로 이어진다.
수치료 시간에는 수영장에서 걷기를 한다. 수영장 바닥에 손잡이가 달린 런닝머신이 있는데 그 위에서 일정한 속도로 걷는다. 발 뒷꿈치부터 내딛고 바르게 걷는 자세에 집중하면서. 조금만 집중이 안돼도 자세가 금방 흐트러지고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 위로 올라간다. 수중치료사는 내 나쁜 자세를 고쳐주고 뒤에 있는 다른 마비환자들을 운동시켰다.
1.걸음마다 문제가 조금 있었다. 바닥을 밀어내는 발 바깥부분이 계속 밖을 향해 휘었다.(이를 외전된다고 한다.) 되도록이면 안쪽으로 힘을 주어 걸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발이 물살에 힘없이 흔들리는 걸 수중모니터로 관찰할 수 있었다.
2.발목에 힘이 부족해도 물 속에서 정확하게 걸음을 띄도록 노력해야했다. 발 뒷꿈치로 바닥을 정확하게 누른 다음 뒤로 밀어서 걷기를 해야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가끔 힘이 빠지기도 했다. 오늘은 모래주머니를 양 발에 차고 걸어보았다.
2/16화요일
나는 금방이라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다시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예를 들어 손가락 끝에 힘이 필요한 일들---캔 따기, 물병 뚜껑 열기, 주전자 들기 등등은 아직 못했다. 이외에 양손으로 식판들기, 의자 밀어 넣기, 머리 감기, 젖은 빨래 비틀어 짜기도 아직은 어렵다.
상반신으로 가능한 일들을 의욕적으로 찾다보니 나도 모르게 손목에 무리가 가기도 했다.
예전부터 작은 부상이 있었던 오른손목은 벌써부터 무리하지 말라고 따끔따끔 시큰거림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내 양손에 체중 전체가 실리는 동작들이 문제였다. --- 휠체어로 옮겨 탈 때와침대 오르내리기.
퇴원날짜가 오늘 정해졌다. 3월 10일. 두 번째 병원도 졸업을 하게 되다니. 많은 발전을 이루고 나가게 되어서 천만다행이었다. 호흡이 엄청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A병원의 간호사와 또다른 무서운 간호사도 생각났다.
내 몸의 근육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서서히 힘이 빠지고 있을 때 거의 모든 일들, 아니 모든 일 전부를 간호사들의 손에 의탁했었는데. 마비가 풀리기 시작하고 제일 먼저 스스로 할 수 있었던 건 가글이었다. 비록 입술에 힘이 빠져서 잘 다물지 못했지만 입에 물을 머금고 뱉는 것 만으로 대단한 일이었다. 나는 그때 세면대로 갈 수 없어서 침대에 앉은 채 간호사가 들고 있는 일회용 종이컵 2개로 새 물과 뱉을 물을 해결했다.
2/17 수요일
옆집 여사님이 따끈따끈한 요즘 유머를 소리내어 읽고 있다. 아까는 노래 '내 고향'을 소리내서 영상을 따라 불렀다. 커튼 하나 사이에 두고 듣고 싶지 않은 서로의 말소리와 내용들이 너무 잘 들렸다.
C병원이 나의 다음 생활공간이 될 것 같다. 공동 간병은 인기가 많아서 대기해야 하고 그 전에 기다리면서 잠깐 보호자 간병이라도 할 수는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엄마가 많이 지쳐서 3월 10일에 나와 함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집으로 가서 근처 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아야 할 지도 모른다.
집으로 퇴원한다면 아직 혼자 걸어다니지 못해서 걱정이다. 발을 들어올리는 힘과 속도가 많이 부족하다. 발목과 무릎은 감각이 둔해서 움직임이 느리고 균형 잡기가 어렵다. 전체적으로 체력이 모자라 오래 걷지 못한다. 딱 예전의 내가 체력이 방전됐을 때와 같다.
이번 주말에는 슈크림 라떼를 오랜만에 먹어보고 싶다. 하지만 전공의가 며칠 전 간식을 줄이라고 했다. 입원 때보다 3kg 더 쪘다며.
구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하라고 나한테 전화를 했다. 갑자기 뜬금없이 왜…? 소리가 목까지 올라왔다. A병원에서 나온 지 보름이 넘었고 여기에 온 뒤로 매일 하루에 세번씩 체온 측정을 하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정식적인 검사 대상자가 아니었다. (문제가 없었는데!) 잠정적으로 환자가 된 것 같아 억울했다. 연락받은대로 검사를 받았고 음성이 나왔다.
2/18목요일
수치료 때문에 일주일에 세 번밖에 못하던 라파엘을 늦은 오전 11시반으로 조정한 덕분에 매일 일정한 시간에 치료받을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내 스케줄은 월, 목요일이 꽤 빡빡해졌다. 운동 프로그램을 학원다니는 아이들처럼 시간표가 꽉찼다. 스케줄 사이마다 15-20분의 휴식시간이 나면 무조건 쉬었다. 곧바로 다음 치료실로 이동해야 하면 엄마가 부지런히 휠체어를 밀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신경과에 있을 때에는 가만히 침대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서 손이 불편해도 노트에 글을 쓸 수 있었지만, 재활병원으로 와서는 몸은 더 회복됐지만 치료를 받으러 다니느라 앉아서 글을 쓸 시간이 오히려 부족했다.
지난 주말 설 연휴에는 병원에 사람들도 많이 없겠다, 환자의 신분을 잠시 내려놓고 싶었다. 환자복을 벗어던지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엄마하고 본관 구석구석을 휠체어로 돌아다녔다.
2/19금요일
아무런 잡념없이 신체회복에 전념하던 때보다 왜 더욱 심란하고 마음이 힘들까.
(다음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