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여는 글
하드보일드(Hard-boiled)는 본디 계란 완숙을 뜻하는 형용사다. 계란을 완숙하면 단단해지기 마련이다. 문학가들은 이 사실에 주목했다. 이 단어는 곧 어느 특정한 구성의 소설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발전했다. 하드보일드 소설(Hard-boiled fiction)이라는 용어는 이렇게 탄생했다.
하드보일드 소설의 시작은 볼 품 없었다. 20세기 초부터 중반까지 미국에서 유행한 펄프 매거진(Pulp magazines)들에 연재되던 펄프 픽션(Pulp fiction)들이 기원이었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오늘날의 웹 소설과 비슷하다. 현대의 웹 소설은 쉽게 쓰이고 쉽게 읽힌다. 그리고 작품이 잊히는 시간도 빠르다. 약 100년 전, 펄프 매거진에 연재되던 소설들도 마찬가지였다. 한번 읽고 나면 다시 읽을 일은 어지간하면 없는, 한마디로 쉽게 소비되는 연재소설이었다. 마치 웹 소설의 먼 조상 격인 셈이다. 한편 펄프 매거진은 각종 장르의 실험대이기도 했다. 일반 대중은 저마다 선호하는 장르가 달랐고, 펄프 매거진은 이러한 취향을 적극 반영했다. SF, 판타지, 로맨스 등 현재 통속소설의 주류들도 모두 이 시기에 연재되었다. 물론 개중에는 범죄를 핵심 주제로 다루는 범죄소설들도 있었다. 이윽고 범죄소설들은 일종의 수렴 진화를 거친다. 간결한 문체를 바탕으로 폭력과 성애에 대해서 되도록이면 감정 없이,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하드보일드 소설이 정립되었다.
시작이 이러하다보니 하드보일드 소설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유럽의 추리소설과는 달랐다. 당대 유럽의 추리소설들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퍼즐을 풀어나가며 마지막 반전으로 여운을 주는 형식이었다. 그야말로 철저하게 계획된 소설이다. 또한 모든 요소에 작가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소설들에서 발사되지 않은 ‘체호프의 총’은 발견할 수 없다. 반면 하드보일드는 주인공이 직접 사건을 부딪치며 벌이는 혈투가 주를 이뤘다. 사건의 원인이나 진상 규명에는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주로 주인공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다룬다. 하드보일드를 대표하는 소설 《몰타의 매》에서 이러한 요소는 특히 두드러진다. 중심 사건은 몰타의 매 조각상을 두고 벌어진다. 그러나 결국 몰타의 매가 무엇인지, 그 진상은 밝히지 않고 소설은 마무리된다. 흔히들 영화계 용어로 쓰는 ‘맥거핀’과 유사하다.
기본적으로 하드보일드는 비정(非情) 혹은 냉혹(冷酷)과 같은 맥락을 따른다. 이는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정확히는 관찰자가 세계를 대하는 관점이 그러하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하드보일드 소설은 표현에서 희로애락의 표출을 최대한 절제한다. 철저히 사실적인 사건의 나열로 소설을 풀어나간다. 하지만 절제된 표현이 우리에게 공감의 부재를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여과 없이 묘사된 현실에 대한 저마다의 감상, 허무와 절망의 카타르시스는 하드보일드 소설에 동반되는 주된 공감 요소들이다. 다소 역설적인 이 구성은 미국의 문학비평가 레너드 카수토에 따르면 ‘반감상주의적 감상주의’ 형식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보여주었듯이 ‘이야기에서 감상주의적, 공감주의적 방식을 걸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투쟁을 벌이는 방식으로 공감의 중요성을 고양’하는 형식으로 하드보일드 소설에서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 글은 흥미본위의 소설로 시작한 하드보일드가 어떻게 문학적 지위를 얻었는지를 분석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리고 선정한 소설들을 분석해보면서 실제로 하드보일드 소설이란 어떠한 것인지를 알아보고, 이를 이루는 구성 요소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또한 이 글이 하드보일드에 문외한인 독자들에게는 입문의 계기이자, 마니아층에게는 체계적인 분석 기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