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 펄프 픽션에서 문학으로

02. 대실 해밋 - 몰타의 매

by 박종혁

하드보일드 소설은 미국 문학의 한 갈래로 시작했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부터 뻗어나간 미국 현대소설들 중 가장 통속적인 방향이었다. 이러한 배경에 힘입어, 미국 문학계에서 최초의 하드보일드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대개 문체의 원형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서 찾고, 모험소설적인 구성은 마크 트웨인에게서 찾는다. 그러나 하드보일드 소설의 ‘정형성(Stereotype)’을 최초로 수립한 작가로는 대실 해밋을 꼽는다. 특히 인물의 정형성에 대한 기여가, 그의 소설이 주목받는 이유다.

cf23f32992e527e5c8bbe929f53482b2.jpg 대실 해밋. 최초의 하드보일드적 인물, 샘 스페이드를 창조했다. (출처 : Wikipedia)

대실 해밋은 《몰타의 매》에서 최초의 하드보일드적 인물을 제시했다. 주인공 샘 스페이드는 하드보일드 소설하면 으레 떠오르는 거칠고 남성성이 부각되는 인물의 원형이다. 법보다는 주먹이 앞서고, 도덕보다는 자신이 먼저다. 이는 후대의 레이먼드 챈들러와 미키 스필레인이 자신들의 소설에서 각각 필립 말로와 마이크 해머를 등장시키는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샘 스페이드는 다른 추리소설의 주인공과는 확연히 달랐다. 유럽의 ‘셜록 홈즈’나 ‘에르퀼 푸아로’ 같은 신사적 탐정과는 정반대다. 사건 해결을 위해서라면 폭력 행사에도 거리낌이 없다. 그리고 복잡한 이성 관계로 온갖 갈등을 일으킨다. 동료 아처의 아내와 저지르는 불륜이 그의 부도덕성을 가잘 잘 보여준다. 더군다나 아처의 최후에 대한 스페이드의 태도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관련된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만 좀 다그치게.” 스페이드는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이만 가서 마일스의 아내에게 부음을 전해야겠네.”
스페이드가 돌아섰다.
톰은 인상을 찌푸린 채 입을 달싹였다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닫아 버렸다. 이윽고 헛기침을 한번 하고 찌푸린 얼굴을 부드럽게 펴고는 쉰 목소리로 더없이 다정하게 말했다.
“너무하군. 저렇게 비참하게 가다니. 마일스 역시 우리처럼 결점도 있지만, 좋은 점도 많았는데 말이야.”
“그야 그렇지.”
스페이드는 건성으로 대꾸한 뒤 골목을 나섰다.


마일즈 아처는 샘 스페이드의 유일한 동료 탐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이드는 아처의 죽음에 대해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감정 중에서도 특히 연민은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이후 탐정 사무소 이름에서 아처의 이름을 지우고 태연하게 영업을 계속한다. 반면 모든 일의 원흉인 브리지드가 부탁한 의뢰를 맡는 것은 동료의 죽음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MAL002AG-1600x900-c-default.jpg 미국 최초의 하드보일드 탐정, 샘 스페이드. 1941년작 영화에서 험프리 보가트가 연기했다.


얼핏 보기에 스페이드의 행동들은 상호 모순적이다. 이런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상식과 도덕을 어느 정도 벗어나야만 한다. 소설이 쓰인 방식과 같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샘 스페이드는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행동들에 대해 거부감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법을 어겨도 처벌받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어길 수 있다. 그리고 주변 인물과의 인간관계도 언제까지나 이해타산을 앞세운 관계다. 브리지드의 매력에 빠져서 마지막까지 그녀를 도울 것 같이 행동하다가도, 막상 자신이 위험을 부담할 상황이 되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사법기관에 넘겨버린다. 결과적으로 샘 스페이드에게 상식이나 도덕이란 어디까지나 자신의 안위와 관련되었을 뿐, 그 이상의 가치는 없다.


샘 스페이드의 등장은 하드보일드 소설의 시작 이상의 의미가 있다. 몰타의 매가 출간 되었을 때, 미국은 경제 대공황을 맞이했다.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은 현실의 독자도 마찬가지였다. 이 시기에 스페이드는 혜성처럼 등장했고, 독자들은 열광했다. 덧붙여서 대실 해밋의 소설들은 모두, 작가 본인의 핑커튼 탐정사무소 근무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 시기 미국인들은 와일드 번치 사건 등을 통해서 탐정이 마냥 선하지 않음을 잘 알았다. 이러한 사실성도 스페이드의 인기를 견인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이후 하드보일드는 가장 미국적인 장르로 발돋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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