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음력 1월 1일, 설이었다. 다들 떡국도 먹고 나이도 먹었는지 궁금하다. 나는 집에 떡이 없는 관계로 만둣국을 먹었다. 안타깝게도 나이는 못(?) 먹게 되었다. 하하하
오늘은 설 연휴를 맞아, 설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설 연휴에도 글을 올리는 건가요?' 하며 궁금해하시는 분이 계실 것 같다. 당연히 올린다. 오늘은 설 당일도 아니고 연휴에 불과한 날 아닌가. 물론 당일이 수요일이었어도 글은 올렸을 것이다. 수요일이니까.
서론이 길었다. 이 글을 다 읽으면 왜 내가 설 연휴에도 글을 쓰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내가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그날도 설 연휴였는데, 나는 학원에 가야 했다. 자습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내 의지는 아니었다. 학원 선생님께서는 수업이 없으니 학원에 와서 자습하라고 엄명을 내리셨다. 연휴 전 마지막 수업에서 선생님은 학생들을 한 명씩 붙잡고 물어보셨다. "너 설날에 학원 올 거지? 학원 와서 공부하고 가라." 친구들은 전부 온다고 했다. 당연히 나도 학원에 오겠다고 답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집에 안 보내줄 기세였으니까.
약속한 날, 나는 학원에 갔다. 학원에는 학생들이 몇 명 없었다. 나와 함께 오기로 약속한 친구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다들 핸드폰을 끄고 잠수 탔다고 했다. 하긴, 누가 설날에 학원에 와 공부를 하고 싶겠는가. 하루쯤은 집에서 쉬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 억울했다.
갑자기 선생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했다. 학원에 문제가 생겨 공사를 해야 하는데, 연휴 때 일하는 업체가 하나도 없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한 업체에서 가능하다고 해서, 그곳에서 웃돈 주고 공사를 했다는 거다. 그런데 왜 그 얘길 우리에게 하시는 거지?
선생님께서 툴툴거리며 말씀하셨다.
“얘들아, 생각해봐. 어느 가게가 장사하는 날 공사를 하겠어? 당연히 문 닫을 때 공사하지 않을까? 네가 수리 업체를 운영하면 어떻게 해야겠어? 이렇게 다 같이 문 닫는 날, 공사를 해야 돈이 벌릴 거 아니야. 너도 나도 공사하려고 할 텐데. 아무도 안 하니까 부르는 게 값이지, 빨간 날 일하니까 추가 수당도 받지. 이렇게 일해야 돈 버는 거야. 근데 다들 돈 벌 생각이 없는 건지, 원.”
설날에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남들 쉴 때 안 쉬면 억울하잖아. 지금 나처럼. 나는 선생님 말씀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은 계속 말하셨다.
“남들 놀 때 일해야 부자가 되는 거야. 남들 놀 때 놀고 일할 때 일하면 그저 그런 삶을 사는 거야. 공부도 마찬가지야. 생각해봐, 대한민국 고3들 다 열심히 공부해. 아침부터 밤까지 매일 공부하잖아. 근데 왜 성적은 다른 걸까? 남들 공부할 때 공부하고 놀 때 공부하니까 그러는 거야. 좋은 대학 가는 거 별거 없다. 설, 추석 때 공부하는 애들이 대학 가는 거야.”
결국 설날에 학원 왔다고 툴툴거리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였다.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다 그렇지 뭐. 나는 다시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말을 잊어버렸다.
올해 설은 그야말로 '황금연휴'이다. 이번 주 목금만 쉬면, 무려 9일을 연달아 쉴 수 있다. 평소라면 해외라도 갔다 왔을 텐데, 코로나가 몽땅 망쳤다. 하필 연휴에 맞춰 기가 막히게 확진자가 늘어난 덕분에 어디 가지도 못하고 집에만 있었다. 연휴 전에는 이 기나긴 휴가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꿈에 부풀었지만, 막상 닥치니 별 거 없었다. 계획한 것들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열심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노는 것도 3일 천하였다.
너무 답답해, 결국 가방을 싸들고 스터디 카페로 갔다. 스터디 카페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전 국민이 기다린 황금연휴에도 공부하러 온 사람들. 나만 온 게 아니라는 놀라움, 그리고 연휴에도 일하는 사람이 나뿐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동질감.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세상에는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 많구나.' 지난 3일 간 시간을 헛되이 쓴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자리를 잡고, 라운지에 들어가 담요를 챙겼다. 아메리카노를 뽑으려는데 탁자 위에 처음 보는 커피가 놓여 있었다. ‘행운 가득한 새해 되세요.’ 상냥한 쪽지와 함께 놓인 카페라테들. 스터디 카페 사장님이 마련한 것이었다. 사장님께서 세심하게 관리하신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이벤트를 준비하셨을 줄이야.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
달콤한 카페라테를 마시는데 문득 학원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설 연휴에도 스터디 카페에 나와 공부하는 사람들. 그리고 설 연휴에 스터디 카페에 올 사람들을 생각해 커피를 마련해 놓은 사장님. 누구에게나 설 연휴는 공평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가 다른 결과를 만든다. 나는 올해 어떤 연휴를 보냈는가? 지난 며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