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 작가의 신작 ‘우리들의 블루스’에는 제주도에 사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그중 민선아(신민아)는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인물이다. 선아의 집은 겉보기엔 괜찮아 보이나 그 문을 열면 애써 감춘 이면이 드러난다. 드럼세탁기는 입을 벌리고 세탁물을 토해내고 있으며, 방에는 정리되지 못한 짐이 아슬아슬하게 쌓여있다.
선아의 얼굴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녀의 머리는 항상 떡져있다. 당장 아이를 등원시켜야 하는데 잠옷을 갈아입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제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 남편은 그녀를 재촉하지만 선아는 도통 바뀌지 않는다. 그녀에게 지친 남편은 이별을 고하고, 혼자가 된 선아는 제주도로 돌아간다.
많은 이들이 그녀의 정돈되지 않은 방, 뒤죽박죽인 시간 감각, 변하고 싶어도 변하지 않는 몸뚱아리에 공감했다. 아마 지금도 많은 이들이 자신의 방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으리라.
어렸을 때는 방 정리를 잘하지 않았다. 방이 아무리 더러워도 학교만 다녀오면 말끔히 정리되어 있으니 ‘이건 내가 안 해도 되는 일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나를 잘못 키웠다.- 나이를 먹은 뒤론 방 정리를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니 손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내가 방을 정리하기 시작한 건 백수 생활을 하면서부터였다. 백수가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하루 종일 방에 처박혀 뒹굴거리는 게 일상이었다. 방에만 있으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늘 널브러져 있던 물건들이 처음으로 눈에 거슬렸다. 내가 물건에게 깔려 있다는 답답함까지 느껴졌다. 그때 처음으로 방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시작은 이불 정리였다. 자기계발서의 첫 장은 항상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자마자 이불 정리를 한다.’로 시작하지 않나. '세계적인 부자가 굳이 자기 이부자리를 정리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속는 셈 치고 해 보기로 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까.
침대에서 일어나 베개를 정리하고, 이불을 가지런히 편다. 1분도 안 걸렸다. 1분이 뭐야, 30초면 되는 일이었다. ‘왜 그동안 이걸 안 했을까?’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고작 30초였지만 효과는 굉장했다. 이불 정리를 하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가지런히 정리된 이불을 흩트려 뜨리기 싫어 그 위에 눕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였다.
이불 정리는 시작이었다. 방을 둘러보니, 정리된 침대와 더러운 방이 대비되어 어울리지 않았다. '이왕 시작한 거 나머지도 다 정리할까?' 그때부터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즈음에는 방 정리에 관한 책과 영상을 자주 보았다. 특히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보았는데, 쉽게만 생각했던 방 정리의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정리의 시작은 비움입니다.’
방 안에 있는 물건을 모두 꺼냈다. 세상에. 이 좁은 방에 이렇게 많은 물건이 있었다고? 사람이 물건들 속에 얹혀사는 수준이었다. 나오지도 않은 볼펜은 왜 모아둔 것이며, 몇 장 쓰다 만 공책은 왜 이리 많은 건지. 구석구석에 알뜰하게도 끼워 넣었더라. 나중에 쓸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막연히 모은 것들이었다. 개중에는 너무 귀해 아껴둔 것들도 있었다. 그 귀한 물건이 철 지나 먼지를 먹어 버린 건 알지 못하고. 결국 물건도 ‘지금’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날을 기점으로 매년 12월이면 방을 비운다. 몇 년 동안 물건을 버리기만 했는데 여전히 버릴 물건이 한가득이다. 분명 쓸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남겨두었는데, 그다음 해가 되면 어김없이 버리게 되었다. 버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제껏 너무 많은 것들에 둘러 쌓여 살았으며, 쓸모없는 것들에 집착하고 있었단 걸.
공간은 그 사람의 내면을 보여준다
방을 사람의 내면에 비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현준 건축과 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을 소유하고 지배하기를 욕망한다고 한다. 부동산 시장의 열기도 이러한 욕망을 반영된 것일 터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집, 방, 보금자리를 갖길 원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공간의 소유에 비해 그 관리에는 소홀한 감이 있다. 자신의 공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쩌면 이는 사회생활을 하느라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세태를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방을 정리한다는 건 내 라이프스타일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물건을 정리하려면 물건의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이 물건을 언제 어디서 주로 쓰는 지를 알아야 했다. 다시 말해, 물건의 자리를 만드는 건 나의 행동 양상을 바꾸는 일이기도 했다.
이불 정리를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아직 나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성공해야 할 텐데. 하하하.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불 정리를 하면 방을 정리하고, 자신의 삶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 정리를 하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먼저 30초 동안 이불 정리를 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