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ESI May 25. 2022

때로는 풀소유로 살아보기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만드는 것, 욕망

 법정스님은 말씀하셨다. 무소유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나는 그 말에 조그맣게 반기를 내밀어 본다. 때론 풀소유의 정신도 필요한 법이라고.




 무소유, 아무것도 소유하지도 욕망하지도 않는 삶. 언뜻 듣기에는 안온하고 평온하게 들린다. 하지만 파랑이 일지 않은 호수는 썩기 마련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욕망하지 않는다는 건, 그의 삶이 고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나는 갖고 싶은 것이 없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본의 아니게 무소유를 실천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먹고 싶은 것은 끊이질 않아 착실하게 살을 찌울 수 있었지만 그 외에는 도통 관심이 붙질 않았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도 거슬려 버리는 판이니 말 다했다. 처음엔 좋은 변화라고 생각했다. 다들 입을 모아 말하지 않는가? 무소유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무소유와 욕망하지 않는 것은 염연히 다르단 사실을.





 나는 갖고 싶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노력할 필요가 없었고, 하고 싶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도전할 필요가 없었다. 


 어느새 나의 삶은 고장 난 시계태엽처럼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사람들은 내게 ‘한창 일하고 활동해야 할 나이에 왜 집에만 있냐’ ‘하고 싶은 게 정말 하나도 없냐, 그래도 하나쯤은 있지 않겠냐’라고 물었지만, 나는 정말 하고 싶은 게 없었다. 내 삶은 온통 물음표였고 나는 그 답을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한 겨울 사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학생을 본 적 있다. 중학생쯤 되었을까? 도로 한편에 우두커니 서서 전단지를 들고 안절부절못하는 폼이 처음 해보는 듯했다. 저 아이는 어쩌다 이 추운 겨울 거리에 나오게 되었을까? 아마 무언가 갖고 싶은 것이 있었리라.


 나는 그 아이가 부러웠다. 나에겐 무언가를 갖고 싶다는 열망도, 그걸 쟁취하기 위해 노력할 에너지도 없었기 때문에. 그때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의지가 성공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성공 경험이 의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즉, 무언가를 성취하고 이뤄냈을 때의 뿌듯함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게 하는 발판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걸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십 수년을 기다린 대학 합격도, 국토대장정 완주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유럽 여행도, 고가의 물건도 내게 큰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반복된 무감각은 ‘성공해봤자 아무것도 없다’는 뇌내 알고리즘을 형성했다.





 욕망하지 않는 삶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나는 길을 잃고 떠다니는 배처럼 되는 대로 살았다. 목적이 없는 삶에게 시간은 영겁과 같은 족쇄였고, 생生은 그 자체로 고통이었다. 그게 너무 힘들었다.


 분명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그걸 견디기 어려웠다.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어, 변해야 해.'


 욕망을 되찾아야 했다. 도전하고, 노력하고, 실패해야 텅 빈 삶을 다시 채울 수 있을 테니까.






 내 안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동요도 귀 기울였다.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긴다면 지체 없이 달려들었다. 무엇이 실마리가 될지 모르니까. 그렇게 작은 파동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나는 다시 욕망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자면, 꿈꾸고 노력하는 삶을 되찾은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인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욕망하고 질투하며 본능적이고 원초적으로 행동하는 게 인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나는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꾸준히 욕망하는 사람만이 비로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도 한 번씩 그런 날을 갖는다. 평소라면 거들떠보지 않았을 옷을 입고, 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망설였던 것들에 도전해본다. 그날만큼은 ‘나’를 버리고, 온전히 새로운 기류에 몸을 맡긴다.


 기대했던 것에 실망하기도 하고, 예기치 않은 곳에서 취향을 발견할 때도 있다. 아무 소득 없이 지나가는 날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했으니까.





 전문가들은 말한다. 청년 세대에게 더 이상 '미래에 대한 기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만 나는 너져 가는 세상 속에서 여러분이 욕망하길 바란다. 원하는 걸 갖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길 바란다.


 저성장 사회가 당신을 무기력하게 만들지라도, 그 속에서 당신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감각을 예리하게 세우길 바란다. 그래서 여러분이 더 다채롭고 생동감 넘치게 살았으면 한다.

이전 07화 이불정리를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