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ESI Dec 29. 2021

'그 대학원생은 왜 교수를 죽였을까?'

첫 문학 공모전 후기 (1)

 몇 년 전 겨울, 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독서실에 짱 박혀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몇 달이 지나니 좀쑤셨다. 그러던 와중 -왜인지 모르겠지만- 한 대학원생이 지도 교수를 죽였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왜 그 기사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서 반쯤 돌았나? 여하튼 나는 그 기사에 골히 빠져들었다. '그 대학원생,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왜 자기 지도 교수를 죽일 수밖에 없었을까?' 그러자 재미있는 제목이 떠올랐다. '그 대학원생이 교수를 죽인 건에 관하여'. 일부러 라노벨(라이트노벨) 같은 제목으로 지었다.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대신 재밌게 풀어내고 싶었다. 블랙코미디처럼. 제목을 지으니 그럴듯해 보였다. 대학원생이 교수를 괴롭히고 죽이는 방식에 대해 우스꽝스럽게 면 어떨까? 그 대학원생 지금 고통받고 있는 다른 대학원생에게도 카타르시스가 될 것 같았다. 정작 나는 대학원 근처도 못 가봤지만. 그런 소설이 있으면 재밌을 것 같았다.


 행정학 노트 뒷장을 펼쳐 소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대사도 묘사도 없는 줄거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시놉시스였지만, 그때는 그게 시놉인 줄도 몰랐다. 그냥 '줄거리'였을 뿐.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자잘한 글씨로 노트 2페이지를 가득 채워나갔다. 대학원생이 교수를 죽이는 블랙코미디 단편소설, 그게 내 시작이었다.


 결국 나는 공무원 시험을 포기했다. 그리고 남은 학기를 다니기 위해 복학했다. 승부를 보지 못하고 포기했다는 패배감이 나를 짓눌렀다. 방 한편에는 기본서와 문제집들이 쌓여 있었다. 큰맘 먹고 방을 치우는데 노트 한 권이 나왔다. 무슨 노트지? 휘리릭 넘겨보는데 마지막 장에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 대학원생이 교수를 죽인 건에 관하여.' 언젠가 독서실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썼던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완성시키고 싶다.' 무언가 완성하고 싶다, 성취하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미처 치우지 못한 짐을 한 구석으로 밀어 두고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소설은 완전 달라졌다. 제목, 주인공, 줄거리, 모두 바뀌었다. 당시 내 마음이 많이 우울해서였을까? 아주 진지하고 우울한 이야기가 되었다. 고시원에 사는 군필 작가 지망생이 주인공인 이야기였다. 쓰면서도 웃겼다. 나는 군필도 아니고, 고시원에 살아본 적도 없고, 작가 지망생도 아닌데 왜 이런 인물에 대해 쓰고 있는 거지? -공시생이 주인공이었다면 쓸 말이 많았을 텐데 말이지.- 말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주인공이 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 대신 그의 옆방에 원래 주인공이었던 대학원생을 입주시켰다. 그리고 그 대학원생은 기어코 교수를 죽이고 말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완성시켰지만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보여줄 사람도, 써먹을 데도 없었으니까. 그냥 내 머릿속에 있던 이야기를 하나의 글로 완성시켰다는 정도, 딱 그 정도의 의미였다. 그래도 좋았다. 무언가를 완성시켜본 게 아주 오랜만이었으니까.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이전 04화 요즘 뭐하냐?에 대한 대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