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그림자-9

남겨진 것

by 하늘

희미한 국화 향과 향 냄새가 뒤섞여 공기를 스며들 듯 적셨다. 벽에 기대 선 조문객들의 검은 옷자락이 파도처럼 스쳐 갔고, 낮은 위로의 목소리들이 어딘가 먼 데서 울려왔다. 천장의 형광등 불빛은 지나치게 환했지만, 그 속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회색빛이었다.


서연은 영정 앞에 홀로 앉아 있었다. 촛불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연기는 느리게 천장으로 흘러 올랐다. 엄마의 사진 속 얼굴은 낯설도록 고요했다. 술에 취해 무너져 내리던 모습도, 욕설로 가슴을 찢던 얼굴도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


눈을 감으면, 지난날의 소리들이 스쳤다. 비틀거리던 발걸음, 웃음 뒤에 묻혀 있던 흐느낌, 술잔에 가려진 간절한 신호들. 서연은 그 모든 순간을 미워했고, 외면했고, 끝내 끊어내려 했다. 그런데 정작 마지막을 지키고 있는 건 자신이었다.


마음 한편이 차갑게 식어갔다.

엄마의 죽음이 슬프지 않다고 하면 거짓일까. 아니, 솔직히 말해 그리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이 더 크게 밀려왔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자신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혐오스러웠다.


서연은 손끝으로 영정 앞 국화를 만지작거렸다. 무언가를 붙잡듯, 놓아버리듯. 꽃잎은 쉽게 부서졌고, 부서진 조각은 하얀 바닥에 떨어져 흩어졌다. 그 조각들이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상처 같았다.

빈자리가 허전하게 남아 있었지만 애써 채우려 하지 않았다.


서연은 고개를 숙였다.

마치 자신이 마지막 증인처럼, 엄마의 고독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사람처럼.

그 순간 문득, 이 자리는 단지 엄마와 나만의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엄마도 언젠가, 이 자리에 홀로 앉아 있었을까. 무표정한 얼굴로, 혹은 눈물을 삼키며. 그리고 그 엄마, 그러니까 나의 외할머니도 또 그 앞에 홀로 앉아 있지 않았을까.


사람이 남기는 건 다름 아닌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모양을 달리하며 대를 이어 남았다. 웃음도, 울음도, 술 냄새와 눈물도 결국 닮아 있었다.


서연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속으로 말했다.

“나는 똑같이 살지 않을 거야. 미안해, 엄마.”


그때 서연의 눈에는 따뜻한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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