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그림자-8

고백

by 하늘

병원 대기실의 공기는 눅눅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서윤은 손끝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며 진료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차례가 되자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들어갔지만, 의사의 목소리는 금세 공기를 얼려버렸다.


“췌장암 말기입니다. 간과 림프절로 이미 전이돼서… 치료를 해도 쉽지 않습니다.”


순간 서윤의 귀가 먹먹해졌다. 술로 망가진 줄 알았다. 그래서 야위고 기침이 잦아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엄마의 몸은 오래전부터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몰랐다는 사실이 서윤을 덮쳤다. 엄마를 지켜본다는 게 결국 아무 의미도 없었음을, 그는 온몸으로 자책했다.


병원 밖으로 나왔을 때, 서윤은 한참을 울다가 겨우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는 젖어 있었고, 단어는 자꾸 끊어졌다.


“언니… 엄마, 암이래. 췌장암… 말기래.”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 모든 것이 무너져 있었다.


서연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핸드폰을 쥔 손이 식어갔다. 마음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슬픔과 동시에 이상한 해방감이 몰려왔다. 끝났다. 이제 더는 흔들리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서연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엄마가 죽어도 슬프지 않을 것 같아.”


그 말은 누구도 듣지 못했지만, 칼날처럼 날카로워 스스로의 가슴을 깊게 찔렀다. 심장은 경멸로 쪼개지고, 숨조차 더럽게 느껴졌다.


서연은 휴대폰을 내려놓은 채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마음속 어딘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껏 나만 아픈 줄 알았다. 그러나 누구보다 아픈 건 엄마였다. 죽음이 가까워질 때까지 내색하지 않았고, 어쩌면 수백 번, 수천 번을 우리에게 구해 달라 외쳤을지도 모른다. 술잔을 비워내며, 울음 대신 알코올로 몸을 채우며.


그 순간 서연은 자신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깨달았다. 엄마의 술 취한 모습만을 미워하며, 그 뒤에 감춰진 신호들을 끝내 보지 않았다.


속으로 그렇게 반복하면서, 서연은 처음으로 자기 안에 도사린 어둠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 어둠은, 어쩌면 엄마가 술에 기댔던 이유와 다르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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