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빗소리는 오래된 기억을 두드리듯 창을 치고 있었다.
나는 자꾸 그 아이를 떠올린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모습, 두 딸 앞에서 무너져 내리던 얼굴. 그래도 나는 끝내 다가가 품어주지 못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애가 그렇게 변해갈 거라는 걸.
아직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아이 둘을 안고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그래도 나는 막지 않았다.
내 딸을, 나는 그렇게밖에 키우지 못했다.
그 애는 늘 웃으려 했다. 애써 씩씩한 척하며 남들 앞에서 고개 숙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망가진 얼굴로 나를 원망했다.
“왜 나를 이렇게 살게 했어.”
그 목소리를 나는 잊지 못한다.
그 아이는 사랑받아야 할 나이에, 나를 원망하며 커버렸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했다.
밥상을 차려주었지만 따뜻함은 없었고, 학교에 보내주었지만 응원은 없었다.
나는 늘 무뚝뚝했고, 사랑한다는 말 한 번 건네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딸은 술에 기대어야만 숨을 쉴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고개를 돌렸다. 내가 모른 척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아니, 사실은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 뿐이다.
그 애가 알코올에 젖어 가장 소중한 존재에게 상처를 남길 때조차, 나는 끼어들지 못했다.
그 애의 고통도, 그 애의 죄도, 사실은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는데.
지금에서야 나는 깨닫는다.
내가 주지 못한 사랑이, 불행의 대물림이 될지.
나는 그 애가 몸으로 왜 술을 붙들 수밖에 없었는지 안다. 그 작은 몸으로 독하디 독한 술로 채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제는 안다.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탈출이었다. 집안의 가난과, 나의 무심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선택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남편은 책임도, 의지도 없었고, 결국 빚만 남겼다.
그 애는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아 아이 둘을 안았다.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도, 식당 설거지통 앞에 서 있었다. 손이 갈라지고, 몸이 부서져도 버텼다. 그 애는 늘 씩씩한 척하며 말했다.
“애들만큼은 나처럼 살게 안 할 거야. ”
나는 그런 딸을 도와주지 않았다.
도와줄 형편이 없었다는 변명 뒤에 숨어서, 그저 몇 번의 위로로 내 몫을 다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사실은 무서웠다. 내 잘못이 다시 눈앞에 드러나는 게.
서른도 되기 전에, 그 애는 이미 늙어 있었다. 손은 습진으로 인해 갈라져 피가 나고 주름은 더욱 깊어져 갔다.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몸을 갈아 넣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집에 들어오면 늘 술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두 잔으로 버티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술잔 속에서만 웃을 수 있었고, 술기운 속에서만 자신을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내 딸을 붙잡지 못했다.
“괜찮다, 다 지나간다.”
그 말밖에는 해줄 수 없었다. 그 애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너 고생 많다, 사랑한다”는 끝내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허무하게 내 딸의 곁을 떠났다.
떠나고 나서야 내 딸의 뒷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 애가 엄마로서 무너진 순간마다, 사실은 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내가 주지 못한 사랑이, 내 무심함이,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