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주말 오전, 우리는 약속한 대로 웨딩홀을 보러 갔다. 날씨는 맑았고, 지하철역에서 내려 나란히 걸으며 어색한 설렘에 휩싸였다. 길가의 꽃집에서는 붉은 장미가 흘러넘쳤고, 신호등 앞에서는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재잘거렸다. 평범한 풍경이, 다가올 우리의 미래처럼 유난히 반짝였다.
“자기는 식장은 크면 좋겠어, 작으면 좋겠어?” 내가 물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나는 작았으면 해. 꼭 필요한 사람들만 불러서 따뜻하게 하는 게 좋아.”
“나는… 부모님 지인들까지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커질 것 같아.”
그녀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결혼은 우리 둘이 하는 거잖아. 왜 부모님 눈치를 봐야 돼?”
나는 순간 말이 막혔다. 하지만 이내 웃으며 둘러댔다. “아니, 그냥 현실적인 얘기지. 나도 사실 네 말이 더 좋아. 조용하고 예쁘게 하는 게 좋지.”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지만, 걸음을 옮기는 동안 다시 손을 잡아주었다. 그 온기가 내 마음에 안도처럼 번졌다.
웨딩홀 로비에 들어서자 흰 장식과 조명이 반짝였다. 플래너가 미소로 인사하며 우리를 안내했다. 드레스를 입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모습은 이미 하얀빛 속에서 부각되었다. 나는 괜히 가슴이 뛰었다.
시식용 케이크를 맛보던 그녀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자기는 초코냐 딸기냐.”
“무조건 초코지.”
“역시… 평생 달달한 거만 찾을 거네.”
“네가 옆에 있으면 단 거 필요 없는데?”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젓가락으로 내 손등을 툭 쳤다. 그 순간, 세상이 제자리를 찾은 듯했다.
작은 보석점 쇼윈도 안에서 반짝이는 반지들을 그녀는 하나하나 껴보며 오래 고민했다.
“이거 어때?” 그녀가 작은 다이아가 박힌 반지를 보여주었다.
“예쁘긴 한데… 좀 비싸지 않아?”
“그럼 자기 인생에서 나라는 게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말이었겠지만, 나는 순간 움찔했다.
“그런 뜻 아니잖아. 그냥 우리가 앞으로 살아야 하니까… 아끼자는 거지.”
그녀는 대답 대신 반지를 빼내고 웃었다. “알았어. 그냥 장난한 거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마음 한쪽에는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남았다. 그 순간은 웃음으로 덮였지만, 돌이켜보면 작은 균열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저녁, 우리는 식장을 돌아본 뒤 작은 식당에 들렀다. 메뉴판을 두고 사소한 신경전이 오갔지만, 결국 서로 좋아하는 걸 시켜 함께 나눠 먹으며 화해했다.
그녀는 소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내게 몸을 기댔다.
“나, 진짜 결혼하는 거 맞지?”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맞아. 우리, 진짜 하게 될 거야.”
“자기야 나는 아직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무슨 생각?”
“이렇게 행복한 우리가 갑자기 어느 날 헤어지면 어떡하지, 이렇게 좋은데 무슨 이유가 있길래 우리가 헤어질까?”
“에이 무슨 그런 걱정을 해.”
“그래도 오래도록 함께하면 좋잖아. 너무 빨리 이별하는 건 슬프잖아.”
나는 그녀의 말에 골똘히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그건 모르겠지만 이별이란 게, 시기보다는 대상이 중요한 거 아닐까? 결국 누구나 죽음이라는 이별을 마주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