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카페 안은 오후 햇살로 가득했다.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빛이 먼지를 작은 별처럼 떠다니게 했고, 테이블마다 놓인 머그잔에서는 김이 천천히 피어올랐다. 바깥 풍경은 여전히 분주했지만, 이곳만은 물속처럼 고요했다.
나는 맞은편에 앉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빨대로 각얼음을 휘휘 저으며 창밖을 오래 바라보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기는 이 카페가 왜 좋아?”
그녀가 물었다.
나는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여기 있으면 짝사랑하는 기분이야.”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짝사랑?”
“응. 투명인간이 돼서 남몰래 세상을 훔쳐보는 거지. 내가 보고 싶은 사람, 내가 보고 싶은 풍경, 나만 알 수 있는 순간들.”
그녀는 한 박자 늦게 웃었다. 웃음소리와 함께 긴장이 풀리자, 나는 괜히 허세 섞인 표정으로 그녀의 컵을 들어 올려 향을 맡았다.
“근데 여기 커피는 진짜 별로야. 이건 동네 자판기 수준인데.”
“그러니까 자기가 나랑 여기 자꾸 오는 거지. 맛은 별로라도 풍경은 괜찮으니까.”
“아니, 나는 네 얼굴 보러 오는 건데?”
그녀는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더니, 내 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 넘겼다. 그 순간, 창가에 떠다니던 먼지들이 순간 한쪽으로 쏠렸다. 그녀가 웃자 공기가 살짝 기울었다. 지금만큼은 세상이 내 쪽으로 기울었다는 믿음이 들었다.
해가 기울자, 우리는 카페를 나와 골목길을 걸었다. 작은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나눠 먹으며 취향을 끝없이 늘어놓았다. 음악, 영화, 여행지, 심지어 편의점에서 고르는 삼각김밥까지.
“나는 참치마요가 최고야.”
“난 불고기.”
“에이, 불고기는 달아서 싫어.”
“그래도 나랑 반반 먹을 거잖아?”
그녀의 말에 나는 괜히 투덜거렸지만, 결국 반은 빼앗겼다.
입에서 빠져나온 숨이 차갑게 식을 때까지 대화가 이어졌다. 가로등 불빛이 켜질 즈음, 그녀의 손이 내 팔을 스치고, 나는 그 사소한 접촉마저 마음 깊숙이 새겨 넣었다.
밤이 되자 우리는 버스 정류장에 나란히 앉았다. 낡은 노선표를 보며 엉뚱한 상상을 했다. 저 노선 끝까지 가면 어떤 동네일까. 혹시 낯선 바다가 있을까. 버스가 도착할 때마다 우리 둘이 아무 데로나 올라타 사라지는 장면을 떠올리며 아이처럼 웃었다.
그녀가 갑자기 물었다.
“자기는 진짜 도망치고 싶을 때 없어?”
나는 잠시 망설였다.
“너만 같이 간다면.”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그 웃음은, 내겐 세상을 도망칠 이유이자 남아 있을 이유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