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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in wonderland Jun 01. 2018

결혼에 대하여

함께 있으라 그러나 거리를 두라

작년 9월, 필립과 저는 산토리니 바다 위 요트의 그물에 누워 석양을 보며 누워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지난 3년간 많은 노래를 같이 불렀지만, 필립이는 한번도 부른적 없는 노래를 불렀어요.


Close your eyes and I'll kiss you
Tomorrow I'll miss you
Remember I'll always be true 
And then while I'm away
I'll write home everyday
And I'll send all my loving to you

All my loving, I will send to you
All my loving, darling I'll be true


그리고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런 다음에 자기가 울었죠. (아니 니가 더 감동하면 오또케...) 지난 3년간 얘가 우는건 이때 딱 한번 본 것 같아요. 본인도 이때 프로포즈를 할 줄 몰랐기에 반지도, 풍선도 아무것도 준비가 안된 상태였죠. 그 순간 이 모든게 너무나 맞다는 확신이 들었대요. 그런데 뭐 그 후 지금까지도, 2000만원짜리 반지보다는 그 돈으로 세계를 여행하고 싶어서 지금도 반지는 없지만요. 별 의미없잖아요? 보석반지. 



제가 길에서 갑자기 춤추면, 같이 춰주고 같이 노래를 해주는 똘끼 말고도 필립이가 좋은 것은 우리가 서로의 자유를 많이 존중해준다는 점이에요. 어제 출근하는 길, 미친것 같아서 더 좋은 니키 미나즈의 'Pound the alarm' 뮤직비디오를 유튜브로 보면서 가고 있었어요. 근데 열정 터지는 쌈바축제의 현장이 너무 가고 싶은거에요! 그래서 베프들을 태그하며 우리는 2019년 3월 1일 - 6일까지 브라질 삼바축제를 간다고 선포했죠. 우린 정말 갈거에요. 그리고 진짜 니키 미나즈처럼 입고 돌아다닐거에요. 우린 그게 가능한 애들이거든요. 


그러면 저는 브라질에서 저 멀리 싱가폴에서 있는 필립이에게 화려한 쌈바 비키니 사진과 우리가 오늘 얼마나 미친듯 놀 것인지를 알려줄거에요. 그러면 필립이는 "You look gorgeous babe! Have a great time with your friends xxx"라고 답변해줄거에요. 늘 그랬던 것처럼. 



삶이 주는 우연성과 즉흥적인 이벤트들을 너무 좋아하는 저는 정말 말그대로 앨리스처럼 세상의 모든 토끼들을 쫓아가요. 출장가서 혼자 칵테일을 마시러갔을 때, 다른 테이블의 초대를 받아서 가서 새벽 4시까지 모르는 사람들과 4차를 간다거나, 암스테르담에서 혼자 섹스쇼를 보러갔다가 처음만난 게이 아저씨를 따라서 게이클럽 투어를 다닌다거나, 뉴욕에서 친구와 캬바레/스트립 클럽을 가서 턱 떨어지게 구경한다거나, 그리고 그런일이 있으면 저는 항상 필립이에게 신나서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해요. 얘는 단 한번도 점잖게라도 저를 타이른 적이 없어요. 얘가 잔소리를 한다면 집 청소를 너무 안한다는것 정도? 그런건 사람의 기본적인 예의니까요. 회사에서도 제일 더러운 책상 찾으면 제 책상이라, 저는 이건 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무튼 필립이는 걱정과 질투를 하기보다는 저를 믿어주고, 세상 그 무엇보다 저의 행복이 자기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해줘요. 


세계여행을 둘이서 계획하면서도 이런 얘기를 했어요. 대부분의 장소를 같이가되, 가끔은 서로 다른 나라를 각자 여행하다가 다시 만나자고. 둘이서 여행하면 둘만 있게되지만, 혼자 여행할 때는 다른 사람들과 우연이 더 쉽게 끼여들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게 되니까요.




저는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라는 시집을 좋아해요. 예언자에게 마을 사람들이 삶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하고 예언자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는 식으로 구성된 시집인데, 그 중 '결혼에 대하여'라는 시가 있어요. 


결혼에 대하여 - 칼릴지브란     
사람들은 또다시 물었다.

그러면 스승이여 결혼이란 무엇입니까?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은 함께 태어났으며, 또 영원히 함께 있으리라.
죽음의 흰 날개가 그대들의 생애를 흩어 사라지게 할 때까지 함께 있으리라.
아, 그대들은 함께 있으리라,
신의 말없는 기억 속에서까지도.
허나 그대들의 공존에는 거리를 두라, 
천공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도록.

서로 사랑하라, 허나 사랑에 속박되지는 말라.
차라리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엔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 두라.
서로의 잔을 채우되 어느 한 편의 잔만을 마시지는 말라.
서로 저희의 빵을 주되, 어느 한 편 빵만을 먹지는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그대들 각자는 고독하게 하라.
비록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외로운 키타줄들처럼.
서로 가슴을 주라, 허나 간직하지는 말라.
오직 삶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허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는 것을,
참나무, 사이푸러스 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저는 저 시에서 '참나무, 사이프러스 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라는 말을 좋아해요. 우리는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있을거에요. 아끼고 서로가 하고 싶은 일을 서포트할거에요. 그렇지만 서로를 자신의 취향에 맞게 바꾸진 않을거에요. 나와 그가 타고난 본질을, 본성을 더 그 나답게 그답게 살면서 빛날 수 있도록. 


필립이는 처음부터 이게 가능했던 사람이에요. 저는 이게 적응이 안되고 너무 이해가 안되었어요. 연애 초반에 

'내가 세상 이쁘게 최선을 다해서 차려입고 친구랑 클럽에 놀러간다는데, 어찌 넌 그리 태연하게 안녕을 하고 새벽이 되도록 독촉전화 한번 안하며, '베이비! having fun? I will go to bed first. sleep tight xxx'라는 문자 띡 남기고 내가 답변없어도 쿨쿨 잘자는거야?' 그래서 저는 얘가 저에게 푹빠져 있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푹빠져있으면 집착하고 질투하고 걱정하는게 모든 사람의 본성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원하는 그 집착을 필립이는 끝까지 안줬어요. 저는 그게 못내 섭했고 헷갈렸는데, 2년이 지나고 알게되었죠. 


이 사람은 날 정말 사랑하는 동시에 나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해주고 있다는것을요. 아마 제가 원하는 질투와 열정과 감정의 업 앤 다운을 필립이가 줬다면 우리는 오래 갈 수 없었을거에요. 저는 결국에는 저의 자유를 다시 간절히 원하게 될테니까요. 그게 없이 저는 살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관계를 오래지속하려면, 상대방의 행복을 진심으로 원하는 마음과 동시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이거라고 생각해요. 


아, 그대들은 함께 있으리라, 
신의 말없는 기억 속에서까지도. 
허나 그대들의 공존에는 거리를 두라, 
천공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도록. 


우리 둘 사이에 있는 바람이 춤출 수 있는 적당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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