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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in wonderland Sep 18. 2019

내가 다시 서른으로 돌아간다면

취미와 특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재가 아니야. 김연아나 임요환같이 아주 어린나이부터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어디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지를 간파하고 아주 어린나이부터 시작해서 일찍 빛을 보는 사람들은 드물어. 그럼 대부분의 재능있는 사람은 어떤 트랙을 타게 되냐하면..."



  많은 동문 선배들을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타지에서 저를 가장 많이 챙겨주셨던 두분과 싱가폴에서 마지막일지 모르는 동문회에서 하던 도중에 나온 얘기에요. 저보다 20살도 더 많은 까마득한 대선배들이지만, 입담이나 사고는 어찌나 개방적인지, 오픈마인드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저도 깜짝 놀랄 발언들을 하시곤합니다. 개구리 왕자를 찾으려면 모든 개구리에게 다 뽀뽀를 해봐야한다면서 저를 응원(?)해주시곤해요. 전 그래서 꼰대가 되는 건 우물안의 개구리가 되었기 때문이지 결코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아무튼!  


이 두분의 선배들은 커리어의 정점에 섰던 여자들이었어요.


A선배는 음악 산업에 있었어요. 그 옛날 머리를 핫핑크색으로 염색하고, 전 세계 1위의 레코드 회사의 APAC 마케팅 책임자로 지역 마케팅을 총괄하던. 당시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크지 않았을 때, 한국에서 발탁되어서 싱가폴의 가장 비싼 지역에 살면서 화려한 싱글을 누리던 전설같은 존재. A 선배는 일이 재미 없다고 투덜거리는 저에게 "일 당연히 힘들지~ 일은 재밌으라고 하는게 아니야. 일이 재밌으면 회사가 왜 너에게 월급을 주겠니? 로비에서 회사가 너한테 돈을 받아야지."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하셨죠.


B선배는 광고 업계에 있었대요. 세계 3대 광고회사 중 하나의 싱가폴 헤드쿼터에서 큰 기업들의 광고 전략을 담당하며 활약했던 광고 에이전시 베테랑이에요.


무섭게 일했지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하는 고민에서 지금 아니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가정과 육아를 우선해서 커리어의 최전선에서는 떠났고, 지금은 아이들이 어느정도 커서 훨씬 밸런스가 맞춰진 삶을 살고 있죠.


그런 선배들이 제가 무작정 퇴사를 하고 시간을 좀 갖겠다고 하니까 걱정되서 저를 부른건 아니고, 이 소중하고 중요한 시간을 더 의미있게 보냈으면 하는 마음에 얘기를 시작하게 된거에요. 천재가 아닌 그렇지만 충분히 재능이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어떤 트랙을 타게 될까요? 



두분이 요새 느끼기에 이러하대요.


A선배는 5년째 한국 민화를 그리고 있고, B 선배는 연극을 시작한지 7년이 넘었어요. A선배는 원래 손재주가 좋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입문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잘 그린 민화를 소셜미디어에 올리기 시작하더니, 민화로 이름난 스승들을 찾아가서 사사도 받고, 한국으로 민화 투어도 다녀오고 아주 푹 빠져서 5년이 지난 지금 선배는 그림을 판매하고 있어요. B 선배도 숨겨지지 않는 그 끼와 에너지가 연극을 할때면 폭발하고, 연극 표를 팔아서 수익을 내고 있죠.


이런 얘기를 하면서 A선배가 말했어요.


"자기가 즐기는 일을 하면서도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바로 마스터야. 내가 5년 그림을 그리고, 지금 그림을 한 점에 N원을 받고 파는데, 내가 만약 15년을 그렸으면 여기에 0하나가 더 붙었을거란 말이지. 그 일을 한 20년 하잖아? 그정도를 하면 마스터가 돼. 20년을 하면 그런 사람들은 모셔가. 그런데 문제는 20년을 한 사람들이 거기서 멈춰있지 않거든. 내가 7년하면, 그 사람들은 7년 더 위로가는거야. 이건 시간 싸움이야. 그래서 지금 니가 정말 즐거워 할일을 찾는게 중요해. 그리고 그게 회사에서 은퇴를 하고 나면 바로 연결이 되는데, 그걸 빨리 찾고 시작해."   


B선배도 거기에 덧붙였구요.


"자기가 지금 30세인데, 지금이 뭘 시작하기 너무 좋은 나이야. 지금 좋아하는 걸 시작해. 그게 없으면 시간을 들여서라도 찾아. 내가 마흔살까지 일하면서 느낀게 뭐냐면, 일을 서른 두살에 그만 뒀어야 했단거야. 그걸 통해서 지금 당장 돈을 벌 필요는 없어. 오히려 돈을 받지 않고도 할만큼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꾸준히 20년 하면, 돈이 돼."



20대는 아름답죠. 아직 실수를 해도 만회가 가능할 나이인것 같고. 그런데 전 20대 때 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라는 말이 이상적이긴 하지만 꽤나 스트레스로 다가왔어요. 그건 마치 제가 처음 이탈리아에 와서 젤라또 샵에 갔는데, 30가지나 되는 다양한 젤라또들 앞에서 선택 장애를 겪으며 점원에게 "어떤 젤라또가 제일 맛있나요?" 라고 물어봤는데 점원이 "그건 니가 어떤 맛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달려있지!"라고 대답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에요. 아니, 내가 다 먹어보지도 않았는데, 무슨 맛을 좋아할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좋아하는 일이 경제적 보상을 가져다주는 일과 일치하는 것은 또 다른 행운이 필요하죠. 어차피 좋아하는 것은 잘 모르겠고, 그러니까 '이집에서 제일 유명한 젤라또'를 추구하다가, 결국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은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될거에요. 어떤 사람들은 그 일을 좋아하고 만족할것이지만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열정과 냉정사이에서 고민을 하겠죠.


30대는 좀 달라요. 20대 때 열심히 일한 덕분에 번 돈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그 경험들을 통해 어느정도 나만의 필터가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내가 즐거워 하는 일이 아주 명확하지 않을지 언정 그게 업무 안에서든 업무 밖에서든 조금씩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들이 예전보단 더 편안하게 추구할 수 있게 되요.


그런데 여기서 좋아하는 일을 해서 내 본업을 대체할 수 있겠느냐, 이걸로 먹고 살 수 있겠냐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 갑자기 불편해져요.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취미와 관심사, 취향, 특기'라는 작은 새싹에 너무 많은걸 요구하는 거에요. 이제 묘목이 자랐는데, 거기에다가 그네를 매달고 나무집을 짓겠다고 하는것처럼요. 어느정도 시간과 실력이 쌓이기 전에 취미나 좋아하는 일로 섣불리 돈을 벌려고 하면 그게 그 좋아하는 마음과 열정을 죽이기 쉬워요. 그러니까 정말 좋은 마음가짐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뭐지? 그걸로 내가 어떻게 하면 먹고 살 수 있지? 그래서 이 거지같은 회사를 때려치게 해줄 그게 뭐지?' 보다는, '아무도 나에게 돈을 주지 않아도 내가 몇시간이고 그냥 하고 싶은 재밌는 일이 뭐지?'가 더 좋지 않을까해요.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면서 그걸로 돈을 벌려는 하는게 아니고, 돈과 상관없이 그 일을 좋아해서 10년이고 20년을 꾸준히 하다보면, 그 열정을 희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그게 내 은퇴 플랜이 되지 않을까요? 시간이 축적되는 것의 힘을 무시한채 지금 당장을 원하면서 가치도 있는 그런 편한 솔루션은 인생에 없죠. 평범한 음식점도 20 - 30년의 세월이 축적되면 역사가 있는 음식점이 되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가 좋아하는 일 먹고 살기위해 가장 필요한 건 좋아하는 일을 순수하게 열정으로 간직한 시간의 축적인지도 몰라요.


저에게는 글쓰기가 좋아하는 일의 묘목이에요. 글 쓰기를 시작한지 3 - 4년정도 되었는데, 저는 이걸 계속 취미이자 특기로 가볍게 생각하려합니다. 브런치에 그냥 글을 썼을 때는 가볍고 즐거운 마음이었는데, 막상 이걸 묶어서 책으로 출간하려고 하니 갑자기 글쓰기가 일로 느껴져서 힘들었었거든요. 그리고 누가 저에게 의뢰를 해서 그 주제로 꼭 써야한다면 그것도 너무나 싫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쓰고 싶은 것을 쓰고싶을 때 쓰며,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본업과 맞바꿀 정도가 되면  일것 같아요. 어차피 찡하게 오래살것인데, 멀리봐야죠.


그러니까 30은 이제 진짜 취미를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 당장 이걸 유용하게 해보려는 고민보다는 그걸 오랜 세월 잘 투자하며 소중히 잘 가꾸자가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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