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프리랜서 도전기 23.
"너 같은 사람은 창작을 해야 해.
그러려고 세상에 태어난 거고.
그렇지 없으면 사회에 위협이 되지."
- 영화 '어디갔어, 버나뎃 中'
일요일 오후, 유튜브에 영상 한 편을 업로드하고 오랜만에 영화를 틀었다. 호빗에서 신비한 캐릭터로 강한 인상을 남긴 케이트 블란챗 주연의 영화. 아무 기대 없이 틀었다가 주인공에게 너무 몰입한 나머지, 눈물로 마무리하고 말았다. 물론 슬픔의 눈물이 아닌 감동의 눈물로.
남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사소한 포인트에 쉽게 감동받고 눈물 흘리는 모습, 내면의 에너지를 아껴 두었다가 창작할 때 발산하며 심장이 뛰는 모습, 오랫동안 고민한 일도 한 번 결정했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추진하는 모습 등등... 대부분의 모습이 나와 닮아 있었다.
그랬던 주인공이 결혼을 하고, 약하게 태어난 아이를 위해 창작 활동을 그만두게 되면서 문제는 시작된다. 그렇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물 흐르듯 흘러가는 순리를 거스를 때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누구를 탓할 문제가 아니다. 그것보다 더 중대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시간이다. 이미 흘러가버린 시간은 누구를 탓한다고 해서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어떻게 다잡은 마음인데 영화 한 편에 또다시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하다니. 직전에 발행했던 글 제목에 최면을 건다는 표현을 쓸 때부터 알아봤다. 역시 사람의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구나. 하마터면 '직장인의 프리랜서 도전기'가 무색해질 뻔했는데 오히려 잘 된 건가?
글을 쓸 때부터 과연 내가 최면에서 깨지 않고 계속 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역시 최면은 잠시 동안의 수단일 뿐이었다.
요즘 나는 매일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 걷기 운동으로 유산소 운동을 하고, 하루에 한두 번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으로 체력을 다지고 있다.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은 예전부터 꾸준히 지켜온 루틴 중 하나이지만, 최근 들어 날씨가 풀리면서 걸어서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 걸음 수를 보면 10,000보는 기본으로 넘어가 있는 걸 볼 수 있다. 볼 때마다 뿌듯하다. 그리고 뿌듯함과 동시에 피곤함이 엄습해 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정신과 몸을 재정비하고 나면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한 부분이더라.
뜬금없이 운동 이야기를 왜 꺼냈는지는 아래 미생 명대사가 대변해줄 것이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네가 종종 후반에 무너지는 이유,
대미지를 입을 후에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 복구가 더딘 이유,
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러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리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 따위는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니 고민을 충분히 견뎌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드라마 미생 中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 안정적인 방법을 선택한 이상, 회사를 다니면서 프리랜서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체력을 길러, 퇴근 후의 시간을 최대한 밀도 있게 쓰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방법을 포함해서 선택지는 두 가지 정도가 되겠다.
첫째, 퇴사라는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내가 가진 시간과 체력을 온전히 투입해서, 최대한 빠른 성과를 만들고 자리를 잡는 것. (약 1년 정도 시간과 체력을 투입해보고 안 되면 재취업 고려.)
둘째,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최대한 안전하게 회사를 다니면서 프리랜서 준비를 하는 것.
이건 안정 지향적 또는 성취 지향적인 성향이 극명하게 갈리는 선택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난 두 가지의 성향 모두를 골고루 갖고 있는 사람이지만, 49%의 성취 지향과 51%의 안정 지향이라 2%의 차이가 무서운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2%쯤이야 지우개 뒤집기만큼이나 쉬울 수도 있는 부분이라 언제 바뀔지 나도차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희망이라면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요동치는 마음이 많이 잠잠해졌고,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마음공부가 조금은 되었는지 오늘을 사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음을 느낀다. 행동하는 오늘이 있다면 내가 꿈꾸는 미래는 반드시 가까이에 있다는 믿음으로, 나는 오늘을 더욱 열심히, 잘 살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