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 30대 버전
20대까지의 나는, 자존심은 강하지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강해 보였지만 매일 사소한 공격에도 쉽게 상처 받고 아파했다. 하지만 30대가 된 지금의 나는, 매일 예고도 없이 들어오는 공격에 긁히긴 해도 금방 딱지가 앉아 쉽게 낫는 편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매일 자아 성찰을 한다. 발전한 점과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중간 지점마다 멈춰서 점검한다.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가 벽에 부딪혀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속도보다 방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20대의 나는 남들이 가는 방향에 휩쓸려 살았다면, 30대의 나는 그 무리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길을 택했다. 조금은 외롭고 낯설지만 괜찮다. 적어도 내가 가는 방향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사는 것보다는, 조금은 외롭고 낯설더라도 내가 어느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지 아는 것, 도착지에는 무엇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사는 편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 아니다.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하려고 애쓰지 말자.' 이 말은 해석하기 나름일 텐데, 사람들이 정해놓은 나이의 틀 안에 갇히지 말자는 의미이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당장 해보자.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다. 물론 내 나이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의미로 30대의 좋은 점 6가지를 꼽아 보겠다.
1. 취향이 뚜렷해진다.
삶이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거기에 조금 더 보태자면 사람과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이리라. 그렇다면 나를 나타내는 것은 무엇일까? '나'라는 존재는 '취향'의 집합체이다.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날씨, 좋아하는 색깔, 좋아하는 분위기, 좋아하는 음식 등등. 취향이 모여 내가 된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의 취향까지 100% 좋아할 수는 없다. 그 취향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취향은 말 그대로 나에게 최적화되어 있다.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 기준은 대부분 30대부터 뚜렷해진다. 그리고 자신의 취향을 알게 되면 매사의 선택이 수월해진다.
2. 사람 보는 눈이 생긴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인간관계에 익숙한 것 같지만 사실 익숙하지 않다. 겉으로 익숙한 척할 뿐, 인간관계라는 것은 아주 복합적인 데다 변수가 많아서 정답이 없다. 그래서 늘 어렵다. 하지만 나이 30을 넘기면서 적어도 어떤 사람이 나와 안 맞는지 정도는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잘 맞는 성향 또한 잘 알고 있다.
첫 만남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하고 집에 돌아와서까지 찝찝한 사람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보아 대부분 끝이 좋지 않았다. 그런 사람은 처음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오랜 시간을 투자했고 마음의 생채기를 스스로 치유해가며 얻은 깨달음이라 더욱 값지고 귀하다.
반면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한 사람이 있다. 별 말 하지 않아도 같은 공간 안에서 숨 막히지 않는 사람, 내게 먼저 묻지 않아도 내가 먼저 알려주고 싶도록 만드는 사람이 있다. 다소 방어적인 성향의 나를 무장해제 시키는 그런 사람이라면, 천천히 깊어져도 괜찮다. 급하게 마시는 물이 체하는 법이니까.
3. 사람에게 휘둘리는 일이 줄어든다.
자기 주관이 없는 사람은 귀가 얇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사실 요즘 이런 사람들이 아주 많다. 심지어 나 또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사람이었다. 아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고 싶은 일과 좋아하는 일을 알고는 있었지만 행동할 용기가 없었다는 말이 맞겠다. 수년 동안 애써 내 마음을 외면해왔다.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것들과 거리를 두면서 점점 고유의 색깔을 잃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불평 불만이 늘었다. 주위 사람 또한 쉽게 미워하게 되었다. 그렇게 서서히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누군가 별 의미 없이 한 말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만들어냈다.
다행히도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달라졌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별 의미 없이 말을 하고, 그 말로 인해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있다. 내 마음이 약해져 있으면 날 향해 있는 모든 것이 날카롭고 아프다. 하지만 내 마음이 건강한 상태라면 의도적인 도발에도 여유 있게 웃어넘길 수 있다.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과 말에도 쉽게 상처 받지 않을 수 있고, 털어내는 속도도 빨라진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난 이것을 연습하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자연스럽게 해결해주었다. 상처 받고 치유하기를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에도 근력이 생긴 것일까? 나는 마음 근력을 키우는데 책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힘들 때일수록 사람보다는 책에 의지하는 편인데 그 시기에 인식의 전환이나 마음 가짐이 격변하는 걸 느꼈다. 아마도 그때였지 싶다. 자존감이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했던 때. '위기는 기회다.' 그리고 하나 더, '경험보다 값진 공부는 없다.'
4. 시간의 소중함을 안다.
10대의 시간은 느리다. 지긋지긋한 시험도 싫고, 빨리 20대 성인이 되고 싶다.
20대의 시간은 제2의 질풍노도의 시기이다. 막상 어른이 되었는데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30대의 시간은 빠르다. 20대에 한 살씩 먹는 속도와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한 살의 무게가 꽤나 무겁게 느껴진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허비하지 않으려 노력하게 된다. 나태하게 보낸 하루가 쌓이면 그저 그런 인생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나태할 수 없다.
5. 외로움을 받아들이며 즐길 줄 안다.
예전에는 혼자 있는 것이 그냥 싫었다. '함께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어떻게든 옆에 누군가를 두었다. 하지만 그 행위는 내 취향을 발견해낼 수 없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내 취향보다 상대의 기분이나 선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배려'라는 포장지에 싸여 진짜 '나'를 찾는 것에 관심조차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점점 타인과 거리를 두게 되었고 서서히 홀로 서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기나긴 연습 끝에 드디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순간이 찾아왔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게 되어 그동안 무시해왔던 마음의 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나를 소중히 여기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인생의 패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익숙한 패턴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변화'는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순간부터 찾아온다. 그리고 '변화'는 퇴보가 아닌 '발전'이어야 한다. 발전으로 향하는 길에 동반자가 없다 하여도 괜찮다. 외로움을 자양분으로 한층 성장한 나를 발견하는 순간, 짜릿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6. 이성이 곁에 없어도 개의치 않는다.
요즘 나의 솔직한 심정은 이왕 늦은 결혼, 서두를 것 없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혼자 살다가 마음 맞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결혼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굳이 상대를 찾아 나서고 싶은 마음은 없다.
'말하는 대로'라는 노래가 있다. 그리고 그 노래처럼 어릴 때부터 습관처럼 해오던 말이 현실이 되었다. "난 결혼 최대한 늦게 할 거야."라고. (결혼이란 걸 과연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깟 결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크게 자리 잡은 요즘이다. 연애도 해볼 만큼 해봤고, 이제 쉬어도 크게 미련이 없달까? (너무 솔직했나?) 이제는 연애에 쏟는 시간과 감정이 아깝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 것 같다. 이 생각을 깨부술 만큼의 운명적인 상대가 나타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삶을 지속할 듯하다.
내면의 깊이가 나날이 깊어지고, 외면 또한 꾸준히 가꾸며, 화려하진 않아도 나름 여유 있는 30대의 삶. 드디어 '인생 2막'이 시작되었음을 자축하는 요즘이다.
30대가 되어서야 나에 대해 조금씩 알기 시작했고, 불안감에서 해방되어 '여유'를 갖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