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주제는 어릴 적부터 지금껏 변해왔다. 지금의 고민은 어린 시절의 고민과는 다르다. 지금의 고민이 그때는 없었기에 가끔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도 그때만의 불안은 존재했고, 결국 불안이라는 감정은 주제만 달라질 뿐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어릴 적 떠올려보면 내게 불안을 주었던 건 술에 취해 큰소리를 치는 아버지였다. 지금은 술을 많이 줄이셨지만 당시 퇴근 후 들려오던 큰소리는 어린 나를 불안하게 했다. 잠들었다가도 아버지의 인기척과 다투는 소리에 깨던 기억은,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아 있던 불안의 요소였다.
입시 또한 나를 불안하게 했다. 고교 시절, 공부는 이어가고 있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지망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누가 방향을 알려주지도 않을 때였다. 부모님이 성적에 대한 압박을 주신 건 아니었지만, 마치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늘 따라다녔다. 수능이 끝나고 합격 소식을 들은 날 이후 입시 불안은 해소되었지만, 그렇게 불안은 늘 시대에 따라 탈바꿈했다.
가수의 시간에도 불안은 계속되었다. 완성한 앨범이 여러 상황과 얽혀 오랫동안 발매되지 못한 채 기다려야 했던 시기,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그저 매일이 불안의 연속이었다. 그 감정 속에 매몰되어 수많은 시간을 흘려보낸 것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불안을 음악으로 담아낼 수 있었다는 점은 의미라면 의미로 담았다.
불안의 신호에는 누구보다 예민하게 반응하며 살아왔다. 흥미로운 건, 불안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는 크게 당황스럽지 않았다는 점이다. 막상 일어난 날에는 마치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처럼 담담히 해결해 갔던 거 같다.
오히려 더 당황스러웠던 건, 불안으로 미처 감싸지 못한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었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 내게 불안을 주는 일들보다, 아직 불안으로조차 감싸지 못한 일들이 더 두려울 수 있다.
어쩌면 불안이라는 감정이 지금까지 나를 보호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