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고자 한 건 아니었다. 사실 되고자 한다고 무조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월요일부터 금요일
6시 20분. 알람이 울린다. 20초쯤 후 잠결에 알람을 끄고.
6시 30분. 알람이 울린다. 10초쯤 후 반은 깬 채로 알람을 끄고.
6시 35분. 알람이 울린다. 반사적으로 알람시계를 끔과 동시에 던지고 그제야 일어난다.
이불을 걷어차고 나오면 엄마가 먼저부터 상을 차리고 있다. 나는 아직도 독립하지 못했다. 그리고 출근 준비를 한다.
지켜지든 지켜지지 않든 새해가 되면 늘 처음 맞는 해에 가장 하고 싶은 일과 이루고 싶은 일을 종이에 적어내려갔다. 열여섯 살에도, 열아홉 살에도, 스무 살에도, 스물아홉 살에도. 지금이야 그놈의 꿈, 꿈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하냐고 말하는 시대지만 그간 나에겐 꿈이란 것이 몹시도 중요했다. 쥐고 있는 것이 없어서였는지, 완성되지 못한다 해도 내 머릿속에서 비직비직 새어나와 어떤 형태를 조금이라도 이루며 비로소 내 것이 되어가는 그 꿈이라는 것은 팍팍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힘이 됐다. 언젠가부터 꿈을 말하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세상의 변화도 변화거니와 성격도 기분도 널을 뛰는 나 자신의 변화 탓도 있었을 것이다.
서른, 새해를 맞는 나의 수첩에 처음으로 아무 계획이, 꿈이 적히지 않았다.
적지 않았다. 적기 망설여졌다. 언제고 마음이 내키면 언제나 하던 대로 수첩을 채워야지 생각했지만 서른 살의 끝자락에 선 지금도 수첩이 비어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나보다.
어느 나이대나 고민이 있고 혼란이 있고 그 나이대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겠으나 서른이라는 나이는 나에게 영 적응되지 않는 묘한 감정선을 안겨줬다. 지금도 그 감정선을 당해내지 못하고 휘둘리고 있지만 서른한 살이 되면 또 조금 다른 길을 향해 감정이 나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위안 삼기도, 억지로 아쉬워하기도 하며 부리나케 지나가는 가을을 보내는 중이다.
부끄러워 종이에 적지는 못했지만 습관적으로, 조금은 강박적으로 머릿속에 그렸던 바람 하나를 시도한 덕에 월요일부터 금요일, 같은 시간에 알람을 듣고, 출근을 하고, 일을 한다. 20대에는 출퇴근 시간이 제각각인 방송작가 일을 했기 때문에 ‘나인 투 식스’의 삶을 살아보는 것이 처음인데, 게다가 일 역시도 그동안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일인지라 서른을 맞이하던 때처럼 낯설다.
출근길, 사람으로 꽉 들어찬 지하철 문 쪽에 서면 이런 장관을 종종 마주한다
올 초에는 잡지를 잠깐 만들었고, 여름부터는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만들고 있다는 말이야말로 부끄럽다. 사실 거의 배워가며 더듬더듬 다른 편집자 선배들을 따라하는 수준이다. 책을 읽고 쓰는 일만 생각했지, 글을 직접 다듬어 책으로 만들어내는 일을 하게 되리라곤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입버릇처럼 주변에 정말이지 자주 “난 꼼꼼치가 못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만큼 나를 잘 믿지 못하는 편이고, 그래서 은연중에 책 한 권이 세상 빛 보는 귀한 일을 나는 못할 것이라, 내가 해선 안 될 것이라 여겼다. 세심과 꼼꼼. 떠올리기만 해도 손에 조금 땀이 나는 듯한 조건. 그 덕에 평생 고장 한 번 난적 없는 위장에 탈이 났다. 스트레스성 위장장애를 얻었다.
그래서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서라도 열심히 일하는 바람직한 어른이된 걸까. 어지간히 자란 줄 알았는데 다시 걸음마도 못 뗀 0살이 된 기분일 뿐이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돈을 버는 것만이, 현실적인 내가 되는 것만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유연하고 깔끔한 것만이 어른은 아닌 것 같다.멈춰서서 난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며 오늘을 맞이했는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펼쳐진 수첩에 적을 꿈을 꿔보기로 한다. 어려워보이지만의외로 담담하게 쥘 수 있을지 모를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