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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KKI May 02. 2021

당신이 F인 이유를 알려드립니다.

<성적표의 김민영>이 남긴 것들

성적표의 김민영 Kim Min-young of the Report Card (2021)

이재은, 임지선 감독


학창 시절에 생활기록부를 받으면 지루하고 뻔한 성적 부분은 건너뛰고 선생님이 직접 적었을 종합의견을 가장 처음 읽었다. 나의 1년을 알 수 있는 것은 성적보다는 그쪽에 더 가까웠다. 모든 선생님이 넘치는 사랑으로 적었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종합의견을 쓸 때면 불가피하게 나를 떠올려야 했을 것이다. 떠올리기 위해서는 관심을 가져야 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한 방울의 사랑이라도 들어갔을 거라 그렇게 믿는다.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표현과 비슷한 문장 속에서 선생님이 봤을 나를 찾아내는 것은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물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적 부분이 더 중요했다. 누구보다 얼마나 더 뛰어났는지, 평균에서 얼마나 웃돌았는지, 어떤 과목에 출중했고 부족했는지. 과정은 쏙 빠진 그 숫자에 당락이 달려있다. 대학에 들어가면 성적표는 더 경제적으로 바뀐다. 오직 알파벳 몇 개뿐이다. '이러저러해서 이런저런 성적을 부여함'따위의 사견은 없다.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기대할 수 있는 성적표는 고등학교 때가 마지막인 것이다. 모든 일에서 그렇듯 열아홉의 내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다. 종합의견을 허허 웃으며 읽고는 결국에는 뻔한 숫자들에 눈에 불을 켠다.


<성적표의 김민영>에서는 이제 받아 보지 못할 줄 알았던 사견이 가득 담긴 성적표가 도착한다. 채점자는 바로 작년까지 동거 동락하다가 스무 살을 이유로 멀어진 친구 정희다. 채점 부문은 경제력부터 한국인의 삶까지 첫 수강신청에서 맞닥뜨렸던 어색한 강좌들처럼 직관적인 동시에 모호하다. 가장 잘 아는 만큼 가장 무서운 채점자답게 성적은 냉철하고 적확하게 매겨져 있다. 동시에 보기 드문 애정이 가득 담긴 의견이 더해져 있다. '이러저러해서 이런저런 성적을 부여함.'을 정확히 제시한 성적표를 앞에 두고 성적 정정 메일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종합의견에 '나 너한테 정말 서운하고 섭섭한데, 그래도 많이 좋아하고 다음에 보자. 푸딩은 내가 먹고 간다.'라고 적혀있을 것 같은 성적표는 열아홉에 두고 온 감정으로 그득하다.


열아홉과 스물은 특별하다. 교복을 벗어서 그렇게 되는  같다.  비슷한 옷에 비슷한 밥을 먹고 비슷한 시간에 잠들었는데 스물은  모든 것을 박살 낸다. 함께 삼행시를 낭독하던 삼행시 클럽은 모두 다른 시차에 사는 사람들처럼 오가는 대화가 반쯤 졸고 있다. 스무 살은 다르다는 혹은 달라져야 한다는 믿음은  특별함에 힘을 보탠다. "스무 살이면 엄연히 성인이야." "스무 살이 무슨 어른이야. 애다 ." 사이에서 부유하는 동안 열아홉이 쏘아 올린 공은 아직 착지하지 않았고,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은  앞으로 다가와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외치고 싶은 순간을 애써 삼키고 영화는 플래시백 속으로 점프한다. 마치 열아홉과 스물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처럼.


아마도 처음 맞는 극변의 시기일 스무 살의 네 친구를 바라보며 진짜 푸하하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팔자 눈썹을 만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어쩌면 나도 경험했을 거리이고 마음이다. 아쉽게도 저렇게 사려 깊은 성적표를 받거나 남겨본 적은 없다. 빗 속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방에 아이스링크를 만들어 보자는 계획은 감히 꿈도 꿔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처음으로 이별이 당연해지는 경험을 나도 그 무렵에 했다. 빈틈없는 서운함과 서운함으로 인한 서운함을 가장 크게 느낀 것도 그즈음이다. 나에게도 정말 사소하고 개인적으로 쏘아 올린 공이 있었고, 그 공을 함께 쏘아 올린 친구도 있었다. <성적표의 김민영>을 보며 그 공과 그 친구를 떠올렸다. 내 공은 아직도 착지하지 못한 듯하고, 친구에게 성적표를 남기기에 이제 나는 그토록 자세하게 친구를 알지 못한다. 정정 기한을 놓쳐버린 성적표를 되돌릴 길이란 없다. 다음 시험에 총력을 다할 수밖에. 귀여운 상상과 추억으로 가득한 이 영화를 보면 적어도 '추억과 반성' 부문에서 A- 정도는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때야말로 그때 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즈음 숲을 찾아온 사람이 될 그때. 운 좋게 캐낸 약초가 될 기회가!


*시인과 촌장의 '숲'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푸르고 푸르던 숲

음- 내 어린 날의 눈물 고인~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느껴지네

외롭고 외롭던 숲

음- 내 어린 날의 숲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푸르고 푸르던 숲

음- 내 어린 날의 슬픔 고인

숲에서 나오니 숲이 느껴지네

어둡고 어둡던 숲

음- 내 젊은 날의 숲


*제 22회 전주 국제 영화제 선정작입니다.

현재 온라인 상영 중으로 <wavve>에서 시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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