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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장 Oct 31. 2019

젊은 의사는 중년의 병을 모른다

2019. 03.

스타벅스의 사이렌 간판이 눈에 든 건 그날이다. 스벅에서 아침식사용 모닝박스 5종을 출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눈에 들었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기는 한다. 녹색의 사이렌 간판은 어디에나 있고, 자주 내 눈에 들었으니까. 

2017년 12월에 스타벅스 더 종로 리저브 매장이 개장했다. 1100호점이었다. 지금은 더 늘었다. 스타벅스는 정말 어디에나 있다. “여의도 IFC몰에 있는 스벅에서 보자”며 약속을 잡을 때도, 지하 1층 리저브 매장에서 볼지, 지하 3층의 일반 매장에서 볼지 정해야 한다. 

  

스타벅스 더 종로의 기념 머그컵. 1100이라는 숫자가 보인다.

  

이런 약속과는 무관한 날이었다. 내 발로 스타벅스의 문턱을 넘는 건 몰라도, 거꾸로 내 삶에 스타벅스가 끼어들 일은 없었다. 그 당연한 규칙, 일상의 흐름이 깨진 날이었다. 비유를 들자면, 런던의 킹스크로스역에 9와 4/3 승강장으로 난 통로가 열렸다고나 할까. 

나는 해리 포터가 호그와트 행 급행열차에 오르듯, 템즈강에 정박된 날렵한 범선에 몸을 실었다. 바람이 돛을 부풀리자 배가 전진했다. 마스트의 꼭대기에서 사이렌의 얼굴을 한 초록 깃발이 펄럭거렸고, 나는 누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잠이 오지 않았다. 간밤에 미룬 일을 마무리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이 시간에 누가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는 것도 아닌데,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긴장을 풀려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클릭했다. 리버풀의 붉은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공을 앞세우고 달렸다. 나는 그 공이 되어 토끼몰이를 당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발에 채여 그물이 늘어진 골대를 향해 굴렀다. 

가슴이 아팠다. 오른손으로 왼 가슴을 꽉 부여잡자 어지러울 정도로 숨이 막혀왔다. 육각렌치를 들고 달그락거리는 나사의 볼트를 꼭 죄어야 했지만, 렌치를 향해 팔을 뻗을 수조차 없었다. 

AED란 글자가 머릿속에서 점멸했다. 나는 침대로 기어가 아내의 팔을 잡았다.

이내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나는 바지 지퍼를 내 손으로 올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한 손에 차트를 든 구급대원이 빌라 현관에 막 들어서던 참이었다. 

“어디가 어떻게 안 좋으세요?”

“가슴이 좀….”

나는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해서 말을 얼버무렸다.

“지병은 없으세요? 병원에 다닌다거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머리 위에서 번뜩이는 녹색 경광등에 남자의 얼굴이 비쳤다. 각진 턱을 한, 삼십대 중반의 남자였다. 그 덤덤한 표정을 보자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앰뷸런스는 과속하지 않았다. 사이렌을 울리지도 않았다. 

“심전도는 정상입니다.” 

옆에 앉은 젊은 대원이 말했다. 내 귀에는 그 말이 꾸중으로 들렸다. “기계는 거짓말 안 해요” 같은.

형광등 간판이 환한 응급의료센터 앞에 차가 멈춰 섰다. 각진 턱을 한 남자가 차트를 들고 앞장을 섰다. 나는 제 발로 걸어 그 뒤를 따랐다. 

의사 하나에 간호사 둘이 응급실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새벽의 끝 무렵이라 조금 지쳐 보였고, 나는 내가 너무 멀쩡해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단발의 간호사가 안내하는 침상에 누웠다. 커튼의 레일이 몬드리안의 선처럼 천장의 석고보드를 가로질렀다. 응급실은 제법 추웠다. 나는 심전도 검사용 케이블을 주렁주렁 단 채 혈관에 굵은 바늘을 찔렸다.  

응급실에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침상 둘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누워 있었다. 커튼에 가려 안을 볼 순 없지만, 누가 누워 있는 건 확실했다. 

잠시 후 가죽재킷과 패딩점퍼를 입은 두 남자가 커튼 속으로 사라졌다. 가죽재킷의 오른손에는 플래시를 단 카메라를 들려 있었다.

“이쪽은 별 게 없는데.”

“머리를 옆으로 돌려봐.”

플래시가 팡팡 터지며 커튼을 하얗게 물들였다. 두 남자는 사체 검안을 나온 형사였다. 사망자의 몸에 어떤 상흔이 있는지 살피는 중이었다. 

“귀 밑에 있는 피는 뭐죠?” 

커튼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CPR 할 때 난 거예요. 닦느라 닦았는데….” 

처음 보는 간호사가 말했다. 이제 보니 의사 하나에 간호사 셋이 한 팀이었다.

누워 있는 사람은 나보다 앞서 응급실에 실려 왔다. 그는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소생하지 못했다.

바퀴 구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턱을 당겨 머리를 들자, 침상에 놓인 묵직한 관이 눈에 들었다. 나는 얼결에 왼손을 들었다. 나라도 배웅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막내 간호사가 서둘러 침대 시트를 갈았다. 커튼을 활짝 걷자 응급실의 조도가 4럭스 정도 밝아졌다. 

가슴에 붙은 케이블이 떨어져나갔다. 나는 엑스레이를 찍고 작은 통에 오줌을 받아 막내 간호사에게 건넸다. 

검사 결과가 나왔다. 혈압이나 심전도는 정상이었다. 삼십대로 보이는 의사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은 증상이 반복되면 큰 병원에서 심장 초음파를 받아보세요. 그래도 이상이 없으면 신경정신과 쪽으로도 한번 알아보시고.” 

‘심장 초음파’보다는 ‘신경정신과’란 말에 신경이 쓰였다. 젊은 의사는 중년의 병을 모른다. 부양할 가족이 있는 중년은 끝내 아프지 말아야 한다. 응당 그래야 한다. 

나는 이 말을 하려다 마른침을 삼켰다. 

         

    


병원 앞 스타벅스는 아침 일찍 문을 연다. 스타벅스의 사이렌 간판이 눈에 익다. 흰 건물을 배경으로 초록 스탬프 같은 둥근 간판이 툭 불거져 있다. 

그늘에 물든 통유리 안에서 밤색 스웨터를 입은 젊은 친구가 타닥타닥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그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리 없다. 뱃사람을 유혹하는 사이렌의 노래일까? 모닥불에서 불티 튀는 소리 같은 것이 타닥타닥, 환청처럼 울린다. 

  

   

지하철 입구로 난 길에는 출근의 활기가 돈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차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낸다. 

아내에게 문자가 와 있다. ‘괜찮아?’

나는 답장을 보낸다. ‘응, 정상이래.’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의 길을 걸으며, 이번에 새로 나온 스타벅스의 모닝박스 5종을 떠올려본다. 

“햄에그 크레페, 베이컨 치즈 치아바타, 멕시칸 브리또, 바질 펜네, 잉글리쉬 머핀.” 

잉글리쉬 머핀에서 식욕이 돈다. 

나는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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