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 비어있지만 가득한 것

by 행부

고요함 속엔 움직임도 없고 소리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상태'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머무는 연습을 해보며 알게 됐습니다.

고요함은 비어있지만 가득하다는 걸요.


"지금 여기, 고요히 있으라."


이 문장은 제게 마법을 부립니다. 가만히 되뇌며 명상하면 더 깊이, 더 고요히 현재에 머물게 해 주거든요. 천천히 호흡하며 정수리에서 발 끝까지 몸을 감각해 봅니다. 그럼 새삼 놀랄 때가 있어요.


‘내 몸이 이렇게 긴장하고 있다니?!’ 알게 되거든요.

굳어있는 어깨, 긴장하고 있는 허벅지, 미세하게 찌푸리고 있는 미간과 이마까지.

부위 부위를 차분히 느끼며 편하게 놓아줍니다.

마치 나뭇가지 위에서 나른하게 팔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 쉬고 있는 고양이처럼.


'아, 이대로 참 좋구나. 이대로 충분하구나.'


생각으로만 맴돌던 그 문장이 몸으로 와닿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슬며시 마음으로 스며듭니다. 무언가를 쫓으려 애쓰던 마음을 토닥여주면서요.



달리는 몸, 머무는 마음


한동안 저는 이런 고요함이 '멈춰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조용한 공간, 지그시 감은 눈, 느슨하게 이완된 몸.

그런 조건이 갖춰져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상태라고 여겼죠.


그런데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어제는 확실해졌는데, 성큼 다가온 봄 햇살을 맞으며 거북이처럼 달리던 중이었어요. 슬슬 땀으로 옷이 축축해질 즈음, 몸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마음은 차분했습니다.


곁을 스치는 사람들의 다정한 얼굴,

바람에 흔들리는 가로수의 마른 가지와 푸른 하늘, 몇 점의 흰 구름.

그리고 허공에 콕콕콕 점을 찍듯 천천히 날아가던 세 마리 새.


마치 내 두 다리가 나를 가마에 태워 세상을 구경시켜 주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발을 내딛는 게 아니라 걸음이 나를 데려가는 것처럼.

나는 걸음 위에서 편안히 세상을 바라봤습니다.

몸은 달리고 마음은 머무르고 있었어요.


그때 알았습니다.

고요함은 '멈춤'이 아니라는 걸요.



스며드는 감각


우리는 자주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지, 어떻게 더 가질 수 있을지를요.


그 질문이 우리를 밀어주는 힘이 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삶 전체가 떠밀려 버리기도 하죠.

때론 지금 여기, 이미 주어진 것들을 가만히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기 다 있어. 이미 충분해.'

마음이 들려주는 섬세한 목소리를 들어보는 시간.


'충분함'은 무언가를 다 이룬 뒤 주어지는 보상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허락할 때 내 안으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감각이니까요.


행복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데 있지 않고, 이미 가진 것에 만족하는 데 있다.
- 에픽테토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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