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다카히로는 과거로 연결해준 우물을 찾아갔다. 걸어가면서 그는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도쿄에서 첫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낯선 곳에 외근을 나와 길을 잃어버렸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렸다. 그는 우산이 없어 비를 피해 건물 입구로 들어왔다. 그때 다른 사람도 비를 피해 들어와 있었다. 다카히로는 옆 사람에게 근처 지하철 역을 물었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지하철 역이 어디예요?"
그가 한 말과 똑같이 말한 낯선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 환하게 웃었다. 한 날 한 시에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말을 한 것이다. 소나기가 지나가자 그가 건물 밖으로 나오려고 했을 때, 그녀는 노란 우산을 꺼내 그의 머리 위에 펼쳤다. 다카히로는 그녀와 함께 걸어가면서 그녀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 집이 보였다. 끔찍했던 그 날의 기억이 반복해서 떠올랐다. 우물 속에서 누군가 나올 것만 같았다. 천천히 우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아내 유끼의 얼굴이 떠올랐다. 힘들게 딸을 키우면서 살아가는 아내의 모습이었다.
아내 유끼는 이 예스를 출산한 직후 몸이 좋지 않아 중환자실에 있었다. 늦은 저녁, 회사 일을 끝내고 동료들과 술을 마신 뒤 그는 병원에 도착했다. 지친 몸으로 중환자실에 들어가 아내 얼굴을 보았다. 고비를 넘겨서 인지 아내의 몸은 회복되고 있었다.
그는 아이 얼굴을 보기 위해 신생아실로 갔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간호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다. 그는 열린 문틈으로 들어가 자신의 아이를 찾았다. 아내 이름인 '유끼'와 아이 이름인 '이예스' 가 적힌 명찰을 보았다. 그는 이예스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밝은 불빛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아이 얼굴을 보려고 할 때였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우유병을 밟고 그는 넘어지고 말았다. 차가운 바닥에 아이를 떨어뜨렸고 그의 몸도 아이 몸 위로 넘어졌다. 아이의 두개골은 금이 갈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그도 이마와 무릎을 다쳤지만 순식간에 아이를 안고 일어섰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주변을 살피고 그는 아이를 제자리에 놓았다.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아이는 머리를 다쳐 뇌손상이 왔고, 그 뒤로 아이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는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가족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고 숨기고 살아왔다. 그는 아이에게 다가가지 못했고 그 사실을 모르는 아내는 자신의 책임이라고 늘 말했다. 다카히로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어떠한 반성도 하지 않고 그저 잊으려고만 했다. 죄의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가벼워졌고, 자기기만으로 변해갔다.
잠시 뒤 우물 속 잔잔한 수면 위로 달빛이 비쳤다. 달빛은 아내 유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치 우물 속 수면이 스크린이 되어 아내 유끼의 모습을 비추어주었다. 다카히로가 아이를 떨어뜨린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서 아내 유끼의 모습이 보였다. 다카히로는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 참혹한 장면을 아내 유끼가 보고 있었다. 신생아실 창문 너머에 어둠 속에서 아내 유끼는 다카히로가 아이를 안고 넘어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가 잘못을 뉘우치고 가족에게 다가오리라고 생각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이 숨겨질 거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자신의 잘못을 매 순간 합리화하며 자신을 속이며 진실을 피해 다녔다. 그는 아내에게 첫 만남에서 죽을 때도 한 날 한 시 함께 죽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아내가 보고 싶었다.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유끼, 죽기 딱 좋은 순간이야.”
그는 아내 모습이 비치는 우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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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링이 집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저녁 7시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우물가에는 노인이 류원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그 뒤로 장천이 서 있었다. 장후이는 방망이를 손에 들었다.
"모두 왜 이래요, 그 노인은 우리 집에 온 손님이에요."
엄마는 링링에게 말했다.
"내 엄마를 죽인 살인자야. 바로 이 곳에서 말이야."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노인은 서툰 중국어로 말했다.
링링이 다가오자 노인은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그는 몸의 균형을 잃었다. 옆에 있던 누름돌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넘어진 곳은 우물을 덮어 놓았던 나무판자 위였다. 나무판자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졌고 노인은 깊은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누름돌은 원래의 회색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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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링의 집에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은 우물 안에 긴 사다리를 내렸다. 우물 밑까지 내려간 경찰은 떨어진 사람을 발견하고 밧줄에 몸을 묶었다. 그리고, 들어 올리라는 신호를 보내며 말했다.
"천천히 올리세요"
밧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물 밖으로 얼굴이 드러났다. 링링과 그의 가족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방금 전에 빠진 사람은 노인이었는데, 실종되었던 다카히로가 올라왔다. 류원은 다카히로 목에 걸린 목걸이를 쳐다보았다. 오랜 전 그녀가 다카히로에게 걸어준 목걸이였다. 그들은 다카히로가 낯설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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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디에 가든 누구와 만나든 과거와 미래, 삶과 죽음, 모든 존재들이 함께 공존한다. 우리 삶도 역사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려고 몸 부리 치는 대신 사실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미래가 만들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