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있는 동안이라도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시간 가는줄 모르고 놀아보자.
어느 날,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큰 애가 서랍 속에 돈을 가져갔는데 거짓말까지 해요. 속상해 죽겠어요. 집에 오면 호되게 야단을 쳐야겠어요.”
아내는 화가 나서 목소리가 떨렸지만, 차츰 진정되었다. 말없이 돈을 가져간 것도 문제인데 거짓말까지 해서 나도 화가 났다. 처음엔 버릇이 들기 전에 단단히 혼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랐다. 문구점에서 물건을 훔친 나의 기억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다. 지인은 아이가 처음 거짓말을 했을 때, 버릇을 단단히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회초리를 들어서라도 야단을 쳐야 해. 정신이 번쩍 들게 말이야.”
어릴 적, 내가 처음 거짓말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소중히 아끼던 카메라를 부서뜨렸는데, 혼이 날까 봐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거짓말을 했다. 결국, 옷장 속에 발견된 부서진 카메라를 앞에 두고, 아버지에게 회초리를 맞았다. 집에 가는 동안, 나는 아빠로서 아이에게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집 문을 여는 순간까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평상시 문이 열리면 아내의 환한 웃음과 아이의 목소리가 반겨 주었는데, 조용하다 못해 싸늘한 분위기가 나를 맞이했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화’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큰아이 방문을 열었다.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범벅이었다. 입가에는 울먹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문득 회초리 앞에서 떨고 있던 어린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아이를 감싸 안았다. 두근거리는 아이의 심장이 느껴졌다. 이미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아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안아 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내가 다가와 아이 손과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아내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도 아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슬픈 눈물이 아니라 행복의 눈물이었다.
1년이 지나 큰아이가 중학생이 되었다. 아내의 추천으로 ‘행복한 부모 자녀 학교’라는 교육 프로그램에 큰아이와 함께 참여했다. 중학생이 된 큰아이는 가기 싫다고 망설였지만, 엄마의 눈치에 못 이겨 가게 되었다. 첫 수업이 시작되자,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했다. 한창 사춘기인 큰아이는 쭈뼛거리며 마지못해 일어섰다. 시선은 아래로 낯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귓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머리를 긁적거리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어릴 적 나의 모습을 꼭 빼닮았다.
첫 번째 수업 시간, 평상시 아이가 부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평가하는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를 평가하고 가르쳤는데, 입장이 바뀌었다. 앉아 있는 엄마, 아빠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입이 바짝 마르고 손바닥에 땀이 났다. 반면에 아이들의 모습은 더없이 편안해 보였다. 나는 평상시보다 더 친절한 말투와 행동으로 큰아이에게 평가 종이와 연필을 건네주었다.
‘아, 미리 수업 내용을 알았더라면, 조금 전 차 안에서 그렇게 잔소리를 하지 않았을걸’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다. 강사는 결과를 말하기에 앞서, 아이의 평가 결과는 대부분 50~60점대 라고 말했다. 모두 마음을 비우라는 이야기였다. 강사가 말한 대로 대부분 50~60점이 나왔다. 간혹 70점을 간신히 받은 부모도 있었다. 어떤 부모는 30점을 받고 아이를 바라보며 연신 헛기침을 했다. ‘가나다’ 순서여서 나의 이름은 제일 마지막이었다. ‘아이’라는 선생님 앞에서 내 인생의 점수가 얼마인지 대학 입시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학생이 된 것 같았다. 드디어 나의 차례가 되었다.
“혹시 ‘6’ 자를 아드님이 잘못 쓴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점수가 이상한 것 같은데요. 지금까지 이렇게 높게 나온 적이 없었는데, 95점입니다.”
나도 예상치 못한 점수여서 당황했다. 표정 관리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나는 그저 아이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큰아이도 쑥스러웠는지, 얼굴에 옅은 미소가 흘렀다. 지금까지 학교나 회사에서 주는 평가 점수에 기대어 살아왔는데, 이렇게 아이에게 내 인생에 대한 평가를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강사가 큰아이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제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이렇게 높은 점수가 나온 것은 처음인데요. 평소에 아빠가 어떤 사람이었어요?”
“우리 아빠는 좋은 아빠예요.”
아이가 나에게 준 점수와 칭찬은 그 어떤 것보다 특별했다. 마음 한편엔 그렇게 잘해주지 못했는데 칭찬을 해줘서 아이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어쩌면 아이가 나에게 준 점수는 그런 좋은 아빠가 되길 바래서이지 않을까?
문득 나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에게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고 말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아이는 높은 점수를 바라는 아빠보다 좋은 아빠가 되어주길 바란다. 해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더 흥미로울 수 있다. 아이와 함께 있는 동안이라도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시간 가는줄 모르고 놀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