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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 Oct 22. 2021

너와 나의 연결고리

  차를 타고 갈 때 창문 넘어 바삐 흘러가는 세상을 보기 보다, 잠시 창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고요히 들여다 보자.

 

 멀리 출장을 갈 때면 기차를 주로 이용한다. 기차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데 편하다. 그날도 고객을 만나기 위해 목포행 KTX 기차를 탔다. 열차에 올라타서 자리에 앉았다. 가방 속에 책을 꺼내 작은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창문 밖 풍경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순간 유리창에 투명하게 비친 나의 모습이 보였다. 오래전부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 경우가 많았다. 마치 내 영혼이 잠시 나의 몸을 빌려서 있는 느낌이었다. 서른 살이 지나서도 영혼은 적응하지 못한 채 살았다. 그러다 마흔 살이 지나서야 거울 속 나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적응하느라 고생한 흔적이 얼굴 곳곳에 남아 있었다. 특히 웃으면 보이는 눈가의 주름살이 정겨웠다. 그동안 너의 몸을 빌려 웃고 울고 했던 추억들이 떠올랐다. 거울 속 나에게 위로받는 동안 나는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대전역이었다. 건너편 옆자리에 노부부가 짐을 풀고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부인은 가방에서 책과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무언가를 찾기 위해 가방을 한참 뒤적거리더니, 지나가는 승무원을 불렀다.


 “혹시 연필 있나요?” 노부인이 말하자

 “볼펜은 있는데, 연필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승무원이 대답했다.


 나는 책 속에 끼워져 있던 연필을 빼내 손을 흔들었다. 노부인에게 연필을 건네주자 그녀는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옆에 앉아 있던 남편도 고맙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읽고 있던 책을 덮어 두고, 노부인이 글 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영감이 떠오르면 노트에 글을 적었다. 가을 풍경과 공감하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소설 속 한 장면같았다.


 ‘어떤 풍경을 보고 영감을 떠올린 것일까?’ 나는 궁금했다.


 자신이 쓴 글을 지우고 쓰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노부인이 쓰고 있는 것은 분명, 시(詩)라고 생각했다. 옆에 앉아있던 남편은 커피와 음식을 틈틈이 챙겨주었다. 오랫동안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노부부의 모습에서 나의 미래를 상상했다. 광주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노부부는 옷과 짐을 정리했다. 노부인은 나에게 다가와 연필을 돌려주었다.


 “고맙습니다.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라는 말과 함께였다.

 “혹시 작가분 이세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웃음으로 대신했다. 기분이 좋았다. 목포역까지 남은 시간 동안 시집을 꺼내 보았다. 김기택 시인의 ‘틈’이라는 제목의 시가 눈에 들어왔다. 시를 읽으면서 오늘 저녁에 만나는 고객의 마음속에 작은 틈이 생기길 바랐다. 고객 마음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틈은 무엇일까?




 고객 집에 도착했다. 초인 벨을 누르기 전에 잠시 몸을 풀었다. 기지개도 켜고 얼굴과 입을 최대한 찡그리고 다시 펴보았다. 벨을 누르자 문이 열렸다.

 “들어 오세요.”

 짧게 자른 머리에 몸집이 크고 어깨와 팔 근육이 눈에 띄었다. 실컷 풀었던 몸 근육들이 다시 움츠러들었다. 거실 가운데 있는 탁자를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앉았다. 탁자 위에는 제품이 올려져 있었다.

 

 “저희가 제품을 먹고 문제가 있으면, 만드신 분도 먹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네, 맞습니다.”

 

 먹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될 상황이었다.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제품을 입으로 가져갔다.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제품 너머 멀리 작은 틈이 보였다.

방문 고리를 잡고 빼꼼 얼굴을 내민 어린 딸과 눈이 마주쳤다. 고객은 어린 딸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아내에게 문을 닫으라고 말했다. 고객은 헛기침을 한 뒤에 나에게 말했다.


 “그만, 됐어요. 그래도 당신은 마음의 자세가 됐네요. 이전에 방문한 사람하고는 다르네요.”

 “아닙니다. 고객님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도 아이가 있는 아빠여서 고객님 마음을 이해합니다. 딸아이가 이쁘네요.”


 가방 속에 작은 인형을 꺼냈다. 불빛이 나오는 열쇠고리 인형이었다. 기차를 타기 전에 용산역에서 둘째 아이에게 주려고 샀던 인형이었다. 방문 고리를 잡은 아이에게 인형을 흔들었다.


 “아저씨가 예쁜 인형을 사 왔단다. 이리 오세요.”

아이는 쪼르르 뛰어서 나에게 왔다. 그리고, 인형을 들고는 아빠 무릎에 앉았다. 고객은 화난 표정 대신 미소를 지었다.

“저는 딸 아이가 없어서 딸 있는 분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부럽습니다.” 고객의 미소는 웃음으로 바뀌었다.

“저의 아내는 두 아들 때문에 목소리가 갈수록 커져서, 제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예요.”

“여보, 손님 오셨는데 맛있는 거라도 준비해야지.” 고객의 아내는 조금 전 모습과는 다른 남편의 목소리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 키우시기 많이 힘드시죠?”

“아닙니다. 저는 딸 아이 하나라 괜찮습니다. 그쪽은 아들이 둘이라 힘드시겠어요?”


 고객의 아내가 가지고 온 과일을 앞에 두고 우리는 아이 키우는 이야기, 직업에 대한 이야기, 목포에서 세발낙지가 어디가 제일 맛있는지에 대한 사소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사이 같았다. 그 이야기 속에 제품에 대한 불만은 끼어둘 틈이 없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기차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제가 괜히 이 먼 곳까지 오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고객님. 클레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고객님이 가족처럼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몇 번의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고객에게 명함을 건넸다. 고객은 명함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목포에 다시 오게 되면 꼭 연락하세요.”

 “아, 네 고객님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우리 목포 사람은 그냥 실없이 말하지 않아요. 꼭 연락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고객님, 제품 불만에 대해서는 어떻게…”

 “아이고, 됐습니다. 다 잊어버려서라.”


 고객은 아파트 정문까지 내려와 나를 배웅했다. 막차 시간에 맞춰 KTX 기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올라가는 기차 안은 평온했다. 자리에 앉아 한숨 돌리고 있을 때였다. 조금 전 헤어진 고객에게 전화가 왔다. 불안한 마음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고객님, 혹시 무슨 일이라도?”

 “말 놓으세요. 저보다 나이 많으신데, 제가 형님이라도 불러도 되죠?”

 “아니에요. 아닙니다.”

 “우리 아이가 뜻밖의 선물을 받아서 너무 좋아해서요. 고맙다는 말을 잊은 것 같아서 연락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목포에 오면 꼭 연락해주세요.”

 “고객님, 제가 오히려 감사드려요. 목포에 내려오면 꼭 연락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고객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은 무엇일까? 열린 방문으로 얼굴을 내민 아이였을까? 기차 안에서 내가 건네 연필이 행운으로 이어진 걸까?, 아니면 기차역에 샀던 인형이 행운을 가져다준 것일까?

기차 유리창에 비친 나를 다시 보았다. 뭔가 나누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오래전부터 나와 함께 있어서 고마웠다. 내 영혼이 나를 떠나기 전까지 더 많이 나를 사랑하고 싶었다. 그때까지 사람들과 나눌수록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지는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빨리 흘러가는 시냇물에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없고, 고요한 연못에 가야만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려는 평온한 마음이 있을 때 비로서 진정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차를 타고 갈 때 창문 넘어 바삐 흘러가는 세상을 보기 보다, 잠시 창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고요히 들여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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