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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 Oct 22. 2021

사막에서 죽고 싶지 않아

 처음부터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 먼저 다가가 마음의 문을 열어보자.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은 내 인생에 값진 보석이었다. 꼬였던 인간관계가 풀리기 시작했고 사막 같은 마음에 오아시스가 생겼다. 


 나에게 두 아들이 있다. 아이들도 성장통이 있지만, 초보 아빠에게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나와 아이들은 별개의 삶이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아이의 삶은 곧 나의 삶이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키운다’라는 생각보다 ‘함께 성장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행동과 말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큰아이와 동생과 싸워서 나에게 혼이 났을 때였다. 큰아이는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동생 때문에 혼이 나서인지 억울했던 모양이었다. 동생은 슬퍼서 펑펑 우는데 큰아이는 울음을 참느라 애쓰고 있었다. '꺽꺽' 거리며 가슴만 들썩일 뿐 제대로 울지 못했다. 나는 큰아이가 울음을 참느라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목이 메는 것을 보았다. 아이가 어렸을 때 울지 말라고 야단쳤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 당시 아이의 눈에는 아빠가 얼마나 두려운 존재로 보였을까, 내 머릿속에 ‘처음 아이를 키워서 어쩔 수 없었어’, ‘권위적인 아빠의 영향으로 나 또한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 왔어’라는 구차한 변명들이 함께 떠올랐다. 나는 아이에게 나쁜 아빠였다.


 큰아이에게 다가가 안아주었다. 아이의 거친 심장박동이 나와 같아질 때까지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자 큰아이는 조금씩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가 울음을 다 쏟아낼 때까지 안아주며 기다렸다.


 문득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어릴 적 아버지의 모습은 늘 무서운 존재였다.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기 조차 힘들었다. 아버지도 또한 아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해야할지 몰랐다. 그 누구도 그런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마음의 상처가 많았던 아들은 자라면서 ‘내가 아버지가 되면 저절로 괜찮아 질 거야, 아버지의 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되어서도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았을 때였다. 가족과 함께 병원에 찾아갔고 아버지의 야윈 모습을 보고 나는 말없이 아버지를 안아 드렸다. 큰아이에게 했던 것처럼 아버지를 안고 가슴 뛰는 소리를 들었다. 아주 어렸을 때를 제외하곤 아버지를 안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와 아버지의 사랑 주파수가 맞았을까? 아버지는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큰아이도 다가와서 아버지와 포옹했다. 삼대가 사랑으로 연결되어 마음의 상처가 서서히 치유되었다. 


 아버지와의 화해는 내 삶에 큰 선물이었다. 희미했던 나의 정체성에 대해 확신을 가져다 주었고 그로 인해 모든 인간관계에서 자신감을 회복했다. 사막 같았던 삶이 경이로움 삶으로 도약하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구본형의 ‘깊은 인생’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꿈꿨던 모습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나는 수백 마리의 낙타 중의 하나였다. 짐은 한가득 싣고 인생이라는 사막 한가운데를 걸어가는 낙타. 앞서 걸어가는 낙타를 쳐다보며 묵묵히 따라 걸었다. 내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는 돌볼 겨를이 없이 살아갔다. 시간이 지나 낙타는 자신 위에 올라탄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찾기 위해 머나먼 길을 가고 있는 순례자였다. 


 낙타는 순례자와 함께 걸어가면서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앞서가는 낙타의 발자국만 보였지만 이제는 아름다운 모래 언덕이 보였고 그 너머에 황금빛 사자 한 마리가 보였다. 그 사자는 오래전 나의 아버지 모습이었고 지금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었다. 황금빛 사자가 꼬리를 칠렁이며 지는 해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나는 사자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를 멀리서 지켜봐 주시고 지지해줘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오랜 투병 끝에 아버지의 암은 치유되었다. 이 세상 최고의 명약은 포옹이라고 생각하며 지금도 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먼저 안아드린다.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한 시간은 마음의 상처로 얼룩졌지만, 그 후의 시간은 아버지와 끈끈하게 연결되어 상처의 기억은 흘려보내고 존경과 사랑이 마음 깊이 남았다. 나 또한 아들에게 황금빛 사자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처음부터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 먼저 다가가 마음의 문을 열어보자.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은 내 인생에 값진 보석이었다. 꼬였던 인간관계가 풀리기 시작했고 사막 같은 마음에 오아시스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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