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비행'

비행은 떠나기 위함이 아니라, 제대로 돌아오기 위함이었다

by 행인

비행기 엔진의 낮은 진동이 발바닥을 간질일 때마다, 우진은 자신이 지상으로부터가 아니라 자신의 생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불과 사흘 전까지만 해도 그는 마을의 모든 문제를 짊어진 해결사여야 했다. 10년째 무급으로 매달려온 마을 신문은 매달 인쇄비 미납 독촉장에 시달렸고, 야심 차게 기획했던 공동체 프로젝트는 주민들 간의 사소한 오해와 이권 다툼으로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선의로 시작한 일들이 비수가 되어 돌아올 때마다 그는 숨이 막혔다. 오후에는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기타를 가르치고 노란 학원 차를 운전하며 생계를 이었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어디로 운전해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음악은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었고, 마을은 거대한 의무감의 늪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지난주 라디오 생방송 중이었다. 희망을 노래해야 할 마이크 앞에서 그는 단 한 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 30초간의 긴 방송 사고를 냈다. 사실 그것은 방송 사고 이전에 인명 사고였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질식'이었다. 질식에서 비롯한 침묵은 비명보다 무거웠다. 그 길로 그는 도망치듯 비행기 표를 끊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전원을 꺼버린 휴대폰 속엔, 차마 읽지 못한 작별과 원망의 문장들만이 얼어붙어 있었다. 구름 위로 솟아오른 창밖은 비현실적으로 푸르렀지만, 우진의 내면은 이미 오래전부터 잿빛 겨울이었다.


목적지인 북쪽 도시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그를 맞이한 것은 폐부를 찌르는 서늘한 공기였다. 우진은 역 근처의 낡은 게스트하우스 '행인서재'에 짐을 풀었다. 오래된 나무 계단을 오를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배정받은 방의 침대 옆 협탁 서랍 속에서, 그는 앞선 여행자가 두고 간 듯한 작은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추위는 사람을 정직하게 만든다. 숨길 수 없는 입김처럼. 나는 이곳에서 내가 버리고 온 것들의 목록을 적어본다.」

일기장의 첫 문장이 우진의 심장을 서늘하게 긁고 지나갔다. 그는 마치 자신의 치부를 들킨 사람처럼 서둘러 수첩을 덮었다.


다음 날, 우진은 마을 외곽의 얼어붙은 호수를 찾았다. 안개가 낮게 깔린 호숫가에는 한 여자가 커다란 카메라를 든 채 서 있었다. 그녀는 셔터를 누르지 않고 그저 가만히 호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우진이 곁을 지나갈 때, 그녀가 나직이 물었다.

"얼음 밑에서도 물고기가 숨을 쉴까요?"

우진은 멈춰 섰다.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쩍쩍 갈라진 얼음 틈 사이로 검푸른 물결이 아주 가끔 일렁였다.

"아마도요. 그래야 봄에 다시 헤엄칠 테니까요."

우진의 말에 그녀는 작게 미소 지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도, 이곳에 온 이유도 묻지 않았다. 다만 각자의 상처가 겨울 호수의 정적 속에 잠시 머물다 흩어질 뿐이었다. 그날 밤, 예보에도 없던 폭설이 쏟아졌다. 마을은 순식간에 고립되었고, 게스트하우스의 전기가 끊겼다. 거실에 모인 여행자들은 촛불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둘러앉았다. 누군가는 잃어버린 꿈을, 누군가는 떠나보낸 연인을 이야기했다. 우진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자신이 도망쳐온 것이 실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실패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마음이었음을 고백했다. 어둠 속에서 나누는 낮은 목소리들은 이상하게도 비행기 안의 엔진 소리보다 따뜻했다.


다음 날 아침, 눈은 그쳤고 세상은 온통 눈부신 흰색이었다. 우진은 다시 호수로 향했다. 여자는 없었지만,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는 작은 눈사람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우진은 일기장에서 보았던 문장을 떠올렸다.

「도망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돌아갈 힘을 비축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는 천천히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 전원을 켰다. 쏟아지는 알림 소리가 더 이상 소음으로 들리지 않았다. 우진은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에서 확인한 휴대폰에는 고향 전주의 지인들로부터 온 메시지가 가득했다. 마을 신문을 함께 만들던 동료들, 노래 교실과 그림동아리, 피아노 교실에 웃으며 드나들던 회원들, 그리고 지난가을 함께 김치를 담갔던 명인의 안부 전화까지. 우진은 그 메시지들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며, 자신이 '고립'을 선택했다고 믿었지만 실은 수많은 '연결' 속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돌아가기 전, 우진은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 주인에게 일기장의 정체를 물었다. 3년 전 누군가 두고 간 수첩에 여행자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덧붙여왔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진은 펜을 들어 마지막 빈칸에 자신의 진심을 적어 넣었다.

「비행은 떠나기 위함이 아니라, 제대로 돌아오기 위함이었다.」


비행기가 공항에 내려앉기 전 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지형의 느낌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구름 사이로 내려다본 대지는, 누군가가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삶의 터전으로 다가왔다. 전주역에 발을 내디뎠을 때, 가장 먼저 우진의 코끝을 스친 것은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섞인 구수한 장 냄새와 알싸한 생강 향이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냄새였다.

우진은 먼저 한옥마을의 작은 작업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엔 전주의 자부심이자 우진이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명인 누님이 갓 버무린 김장독을 살피고 있었다. 명인은 붉은 양념이 묻은 앞치마를 질끈 동여맨 채, 돌아온 우진을 덤덤히 맞이했다.


"다녀왔냐? 얼굴이 좀 핼쑥해졌네. 속이 비어서 그래, 속이."

명인은 두툼한 손으로 잘 익은 배추김치 한 조각을 쭉 찢어 우진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 맵싸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이 혀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김치라는 게 말이다, 배추가 소금에 절여져서 숨이 완전히 죽어야 비로소 양념을 받아들이는 법이야. 사람 마음도 고집이 좀 꺾이고 죽어야 진짜 사람 냄새가 배는 법이지. 너도 이제 맛이 좀 들었겠구나."

명인의 투박한 위로에 우진은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도망치듯 떠났던 비행의 끝에서 만난 것은, 화려한 풍경이 아니라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발효의 시간을 견뎌온 이의 넉넉한 품이었다. 명인이 건네준 김치 한 통을 받아들고 돌아오는, 우진의 발걸음은 여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저녁이 오기 전, 우진은 자신의 아지트와도 같은 라디오 스튜디오에 앉았다. 헤드셋을 쓰고 마이크 앞에 앉자, 붉은색 'ON AIR' 등이 켜졌다. '노래가 있는 마을'의 오프닝 시그널이 흐르고, 그는 떨리는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혹시 저를 기다리셨나요? 조금 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제 안의 겨울을 견디지 못해 멀리 비행을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돌아와 보니, 저를 기다려준 건 차가운 얼음이 아니라 따뜻한 김치 한 조각과 여러분의 안부였습니다. 겨울은 춥지만, 그 추위 덕분에 우리는 서로의 온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죠."


우진은 준비한 LP판 위로 바늘을 올렸다.

「긴 겨울밤을 지나온 저 나무처럼 우리도 시린 바람 끝에 서 있네 하지만 잊지 말아요, 얼어붙은 땅속엔 이미 봄의 노래가 흐르고 있다는 걸」

노래가 흐르는 동안 우진은 믹서의 페이더를 천천히 올렸다. Yamaha MG16XU 믹서의 레벨 미터가 마치 살아있는 심장박동처럼 규칙적으로 깜빡였다. 그는 이제 안다. 자신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마을 가게 매장으로, 공원 벤치에서 라디오를 듣는 어르신들 가슴으로, 어느 외로운 이의 방 안으로 흘러 들어가 작은 온기가 될 것임을.


방송을 마치고 스튜디오를 나서자, 길가에 쌓인 눈이 녹아 처마 끝에서 낙수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전주천 너머 서쪽 하늘에 드리운 노을이 유난히 붉었다. 우진은 로컬푸드 매장 앞 벤치에 김치통을 내려놓고 앉았다. '행인(行人)'.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뜻의 그 이름이 이제는 정처 없는 방랑이 아니라, 돌아올 곳이 있는 이의 당당한 칭호처럼 느껴졌다.

"나 이제 도망치지 않는다." 그는 외투 깃을 세우며 당당히 자신의 마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겨울비행의 끝은, 진정한 '나'에게로의 착륙이었다. 비행은 끝났다. 비로소, 진정한 노래가 시작되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이번 역에서 내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