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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 Mar 22. 2021

나만의 방

나는 애써 망각하나 온라인은 결코 망각하지 않는다

IBM과 맥킨토시 컴퓨터 한 대씩을, 인터넷에 연결하지 않은 채 쓰고 있다. 가끔씩 전원을 켜서 문서를 작성하고 편집하기에 딱이다. 누가 일부러 하드를 훔쳐가거나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와서 압수해가지 않는 한 유출될 일이 없다.
순전히 내 필요 때문에 따로 저장해서 온라인에 업로드하지 않고서는, 이 두 컴퓨터에 담긴 문서들은 오롯이 내 것이다.

온라인 세계에 나만의 방은 없다. 스마트폰이건 컴퓨터건 온라인에 연결된 것들은, 켜기만 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온라인으로 잡아 이끈다. 정기적으로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프로그램과 돈 안 내고 쓰는 대신에 쏟아지는 광고를 감수해야 하는 프로그램들이 여지없이 나타나서 마치 제 집 안방처럼 내 방을 드나든다.  

나는 애써 망각하나 온라인은 결코 망각하지 않는다. 내가 찍었다가 지워버린 사진을 제멋대로 백업해서 갖고 있지를 않나? 내가 지나친 길목과 들었던 음악과 미처 자각못한 취미까지도 데이터로 보관하고 있지를 않나? 갈까말까 망설이며 뒤져본 유럽의 어느 작은 산길까지도 온라인은 기억하고 있다가 수시로 되새겨 준다.


유용한 기능만을 생각한다면야 참 편리한 노릇이지만, 그 대가를 어떤 형태로든 지불하지 않을 수는 없겠다. 그러나 그 대가가 내 방 열쇠를 내어주는 것이라니, 슬프다. 온라인에 접속한 대가로, 내 방의 가림막과 창문을 떼내고 벽까지 허물어 내밀한 구석까지도 다 보여줘야 한다는 현실이, 나는 참담하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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